소설리스트

라이프 크라이-264화 (26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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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엔

레나가 허리춤에 검을 차고서 사뿐사뿐 걸어와 내 옆에 섰다. 그리고는 스릉 하고 검을 빼들었다.

쉭! 쐐엑!

검을 수련하는 레나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물끄러미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검왕 칼츠가 생각이 난다.

레나의 검은 부드럽게 원을 그리다가도 갑자기 홱! 하고 꺽이며 Z자를 그리듯이 움직였다.

검에 마나 블레이드가 생성되며 실처럼 뿜어져 나왔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들을 보면 저것을 검사(劍絲)라고 부르지.

검기로 만들어진 실이라는 뜻이다. 저것의 무서움은 공격의 범위가 넓고, 저 검기의 실에 걸리면 웬만한 것은 다 갈라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 같은 건 그대로 동강을 낸다. 검기의 실 하나하나는 막기가 쉽지만, 여러 가닥으로 뽑아내 그물처럼 던지면 사지가 조각나버릴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인 녀석이다.

예전에 무협류의 가상현실 게임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춘추전국-환상서기’에서 칼츠와 맞붙을 때 저 검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칼츠에게 목을 잃었고, 칼츠는 내 손도끼에 심장이 갈라졌었지.

“물건 수복.”

레나의 수련을 슬쩍슬쩍 보면서 담장을 수리했다. 그러다 보니 새벽이 다 가고,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나는 담장의 수리를 멈추고, 방으로 돌아와 아리엔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깨어날 기색이 없군.”

녀석들이 뭔가 수를 썼다는 이야기인데. 으음, 아린과 아란 그 쌍둥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 나타나지를 않는단 말이야.

현실로 가서 정보를 얻어 가지고 올까? 아니면, 이대로 기다릴까? 둘 다 장단점은 있는데······.

“기다린다.”

방어적 이점을 생각하면 기다리는 쪽이 낫다. 여기 시간으로 일주일. 현실로는 하루. 그동안 기다려 보고 아무도 연락을 주지 않는다면 그때 현실로 가서 정보를 수집해보도록 해야지.

뒤적.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아리엔의 입에 조금씩 흘려 넣었다.

포션 한 병을 전부 먹이고 나서 아리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포션을 먹이기만 하면 죽지는 않는다. 물론 이 라이프 크라이에서만 가능하다.

그녀의 정신은 어떻게 된 것일까?

잠시 생각을 해보던 나는 방을 나왔다.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니 각자 수련이나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콰쾅! 하고 폭음이 나기도 하는 걸로 보아 꽤 격하게 하는 듯했다.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난 고개를 한 번 내젓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레나는 아직도 검술 수련의 삼매경에 빠져 있다. 대단한 집중력이군.

“물건 수복.”

다시 담장을 고치며 마법을 부여하는 내 귀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이그젝션? 아니면 크리에이트? 그것도 아니면 스승님이 보낸 사자? 그게 아니라면 왕궁에서의 출두 명령?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라 마법 몇 개를 내 몸에 걸고서야 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꾀죄죄한 몰골의 사람들이 몇 명 서 있었다.

“누구요?”

내 질문에 그중 앞에 선 한 명이 당황한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담장을 고치러 왔습니다. 그런데 저기··· 안주인께서는 안 계십니까?

순간적으로 기력이 쭈욱 빠진다.

마법까지 걸고 꽤 긴장했건만, 이게 뭐야? 그들은 어제 담장을 고치다가 돌아간 인부들이었던 것이다.

***

벌써 3일이나 흘렀다. 담장은 모두 보수 완료. 마법도 문제없이 착착 걸고 있는 중이다. 레나는 담장에 마법을 거는 내 옆에서 늘 검무를 추면서 수련을 했다.

검사를 쓸 정도면 라이프 크라이 기준으로 볼 때 하이 마스터, 즉 마스터 중에서도 상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레나에게는 내가 만들어준 마갑이 있으니, 그걸 사용하면 능력은 순식간에 배가된다. 그렇게 되면 하이 마스터를 뛰어넘는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지닐 수 있다.

그 정도면 이 라이프 크라이의 세계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라고는 해도, 드래곤이나 저번의 그 펜톤의 가디언처럼 최종 보스 취급을 받는 녀석들이 하도 많아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합!”

채챙! 채챙!

레나와 헬라가 검격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둘은 현재 수련 중이다.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담장에 마지막 마법진과 마정석을 설치했다.

위웅!

집에 걸린 마법과 담장에 걸린 마법이 연동하며 소리를 냈다. 결계는 순식간에 거대해져서 담장의 위로 결계가 쳐졌다.

이제부터는 허락 받지 않은 자는 내 땅에 침입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결계는 집을 매개체로 하고, 담장으로 그 힘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지. 부수려면 정말로 엄청난 위력의 파괴 마법이나, 강맹한 위력의 스킬을 다수 사용해야 할 걸?

이걸로 준비는 끝이로군. 언제든지 덤벼 보라고.

결계는 사람들의 눈에 띌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물론 저것만으로 모든 방어를 다 할 생각은 없다.

방패를 준비했으면, 창도 준비해야겠지.

“후욱! 후욱! 완성한 거야?”

“완성했지. 하지만 다른 것도 준비할 게 있어.”

“뭔데?”

“정원이 조금 썰렁하잖아. 석상이라도 조금 세우려고.”

“웬 석상?”

레나의 질문에 나는 그저 웃었다.

“멋진 석상이지.”

레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바로 그 ‘석상’을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석상’들에게 여러 가지 마법을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하이네와 이론드가 어느새 다가와 내 작업을 관찰했다.

“이야, 이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연산이 힘들겠는데.”

둘 다 아직 애로군.

“질릴 때까지 보도록 하세요. 그래야 공부가 되니까.”

“예!”

둘이 동시에 대답하는 걸 보며 난 빙긋 웃어주었다.

띵동!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또 왔나 보군. 이번에도 저번처럼 별거 아닌 사람들 아냐?

“누구요?”

소리를 지르며 나가 문을 열었다.

내 예상은 확실하게 빗나갔다. 그 자리에는 2명의 귀여운 미소녀가 있었으니까.

“아리엔은 무사한가?”

“안에 아리엔 있나?”

“너희들은 사람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냐?”

이 녀석들도 참 특이하다니까. 디자인 휴먼치고 특이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는 건 사실이지만.

내 말에 둘은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미안하다.”

“감사의 인사를 먼저 했어야 했다.”

“도움에 감사한다.”

“아리엔을 구해주어 고맙다.”

“그런 인사치레 받자고 한 소리가 아니라고. 후우! 뭐, 됐다. 그럼 들어가자.”

난 결계의 일부를 열어 둘을 들여보냈다. 두 꼬맹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에게는 2층에 누워 있는 아리엔의 가족이라고 설명하고는, 둘을 데리고서 아리엔이 잠든 내 방으로 왔다.

두 녀석은 뭐가 급한지 아리엔을 보자마자 달려가서는 옆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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