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 크라이-273화 (27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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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물러가는군.”

공간의 문이 열리고, 크리에이트 길드 놈들이 후퇴하는 것이 보였다. 하긴 왕궁 근위군과 사령 마법사 조합의 주 전력이 움직였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는 해도 일개 길드 따위가 한 국가의 전력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기에 물러가는 거겠지.

“무사한가, 길드 마스터?”

“고마워요, 둔저 님.”

“길드의 간부 중 한 명으로, 마스터를 구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 신경 쓰지 마라.”

둔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협력에 감사하오, 라임.”

둔저. 강한 사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둔저라는 이름의 게이머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어. 라이프 크라이에서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사내인 건가?

그러고 보면 이그젝션 길드는 모두 디자인 휴먼이었지? 그렇다면 둔저라는 이 사내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간다. 아마도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거겠지. 디자인 휴먼들은 모두 나이가 어리니까.

“이야기는 들었소. 우리보다 먼저 태어난 퍼스트 디자인 휴먼이라지?”

“제 이야기가 꽤 많이 퍼진 모양이군요.”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야.

“아무래도 이번 사태가 사태이다 보니 그렇소.”

“아라한 컴퍼니가 움직였나 보군요.”

“맞소. 그것도 꽤 크게.”

빌어먹을 아라한 컴퍼니. 대체 녀석들이 원하는 게 뭐지? 불로불사를 원했다면 왜 저 유령이 된 놈들을 다시 리셉티클로 다운로드해주지 않는 거지?

아리엔이 아까 깨어나서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아라한 컴퍼니는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라이프 크라이에 들어온 유저의 정신을 다시 리셉티클에 집어넣는 일 말이다.

아사크의 말대로라면 유령 중에는 상상을 불허하는 거대 재벌의 자손들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라한 컴퍼니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터. 그런데 그들은 굳이 아리엔을 노리고 있었다.

왜지?

모르겠군. 점점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알고 싶소?”

“글쎄요······.”

나는 아라한 컴퍼니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모든 걸 바쳐서 아라한 컴퍼니를 부수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제 와서는 아라한 컴퍼니가 어찌 되든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지금의 내 삶이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은 거겠지.

“제가 없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타인과 손발을 맞추지 않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번 일에 끼어들어야겠다.

“알겠소. 그렇다면 더 알려 하지 않기를 바라오.”

둔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리엔에게 다가가 내게 안 들리게 뭐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곧 아리엔은 아린과 아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라임, 고맙다.”

“다음에 사례하겠어.”

아린과 아란 두 꼬맹이의 말에 난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사례 따위 필요 없어. 난 너희 둘에게 대가를 바라고 도와준 게 아냐.”

“그럼 왜?”

“우리를 왜 도왔지?”

“글쎄다······.”

흐음, 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너희를 돕고 싶어서. 그래서 도왔지.”

내 말에 두 녀석은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아리엔을 부축하며 이동했다.

“저를··· 구한 게 라임이군요.”

“그래.”

아리엔이 내 말에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마워요, 라임. 이 보답은 다음에······. 하지만 이 일에 라임을 끌어들이지는 않기로 결심했어요.”

“왜지?”

고마운 말이기는 한데.

“이건··· 퍼스트 디자인 휴먼인 당신과 관계된 일이지만, 사실 관계없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나와 관계된 일이지만 관계없는 일이다?

“나중에··· 모든 일이 정리된다면 그때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이제 간다 YO!”

공간의 문이 열리고 그 너머로 이그젝션 길드의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

“후우······.”

뭐 하나 확실하게 정리된 것 없이 떠나가 버렸군. 나와 관계가 없지만 관계가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뛰어들어 파헤치느냐, 물러나서 관망하느냐.

나는 방금 둔저에게 물러나서 관망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리엔도 내가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일전에는 이그젝션 길드 차원에서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사이에 심정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겠군.

“후후후후후.”

그래, 나는 관망하겠다고 대답했지. 하지만 말이야, 조금이라도 나와 관계 있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끼어들어야 하지 않겠어?

“내 후배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 따위는 보고 싶지 않거든.”

오랜만에 현실로 가야겠군.

@행동

행동은 빠르게.

그리고 그 내심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누군가의 조언-

부서진 집 안을 정리하고, 돈을 대량으로 풀어 실력 있는 NPC를 고용해 집의 경비를 맡기기로 했다.

이 기회에 아예 하인과 하녀들도 들이고, 다시 손을 본 저택은 이제 정말 귀족의 저택처럼 변했다.

데글을 비롯한 사령 마법사 몇몇이 내 밑에서 일하기를 원했고, 나는 그들에게 한 달에 약 일주일간 마법을 전수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저택의 경비를 맡겼다.

저택의 땅 밑에 그들의 연구실을 만들어주었기에, 그들은 그곳에서 마법 연구와 더불어 저택을 지킬 것이다. 데글을 포함해 총 25명의 사령 마법사가 내 휘하가 되었다.

레나와 하이네를 비롯한 모두는 그날의 격전으로 꽤 큰 충격을 받은 듯, 각자의 수련에 모든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다.

엘린과 아이린만이 그 격전의 날 상단의 일 때문에 저택에 없었다는 게 다행이랄까?

“로그아웃.”

푸쉭!

플레인 워커의 뚜껑이 열렸다. 나는 호흡기를 떼어내고, 플레인 워커의 수면에서 몸을 일으켰다.

촤악!

“후우.”

사바세계의 공기는 오랜만이로군.

확실히 저쪽과는 공기의 느낌이 다르다.

“레나는··· 저쪽에 있군.”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왔다. 그러니까 레나는 내가 없어도 저쪽에서 수련을 계속하겠지.

하지만 시간차를 생각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

내가 현실로 되돌아온 이유는 아라한 컴퍼니 녀석들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크리에이트 길드 녀석들이 어쩌고 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그걸 꺼내야겠군.

“쯧.”

내 집에는 방이 총 3개다. 30평의 제법 넓은 나의 집. 그중 한 방은 잡동사니를 쌓아놓은 창고로 쓰이고 있다. 하나는 내 방, 다른 하나는 레나가 쓰는 방.

집 안 유지 프로그램에 의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거실을 지나 나는 세 번째 방에 들어갔다.

상자를 몇 개 치우고 작은 철궤를 몇 개 꺼내, 다이얼을 맞춰 잠금장치를 풀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이걸 다시 쓸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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