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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슬픔
그것은 충격이었다.
무리에 끼지 않음에도 외로움 따위를 느끼지 않는 그 모습이 단단한 강철처럼 강인하게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멍하니 그 아이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라고 생각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 아이와 비교한다면, 모든 아이들은 ‘우리’라는 것에 속하게 된다.
그것은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상대성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각인하게 된 날이었다.
깜박깜박.
전구가 깜박인다.
“전구가······.”
현명한 아이는 평소답지 않게 전구를 멍하니 보았다. 그사이에 그 아이는 학급 뒤쪽의 공구함에서 전구를 꺼내고는 현명한 아이에게 건네었다.
현명한 아이가 멍하니 그걸 받아들자, 그 특별한 아이는 책상을 옮겨 전구 밑에 놓더니 책상 위에 올라섰다.
“줘.”
아까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와 달라.
그걸 확실히 알게 되는 순간 어떤 마음이 생겨났다. 현명한 아이는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마음속에 들어찬 어떤 마음을 급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여는 것처럼 가슴이 뛴다.
그리고 뚜껑을 연 순간, 알게 되었다.
그건 최초의 독점욕.
함께하고 싶어. 저 아이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허울뿐이 아닌 진짜 친구가 되고 싶어.
그걸 깨달으며 전구를 달라고 무심히 말하는 아이에게 멍하니 전구를 건네었다.
그 순간, 세계가 폭발해버렸다.
빠직.
약간의 따가움에 놀라는 사이에 무언가가 머릿속으로 엉겨들어 온다. 폭발하고 뒤엉키는 그 사이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가슴에 박혀 든다.
그 아이의 눈에 떠오른 감정. 처음으로 내보인 그 감정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었다.
“독심술과 같은 거지요.”
“독심술?”
“상대와 접촉한 순간, 상대의 신체 전류와 접속해 상대의 기억, 인격, 그 모든 것을 복사해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제 안에 마치 동영상처럼 저장되죠. 그렇지만 제 인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아요. 제 인격에 섞이는 게 아닌, 마치 파일처럼 제 안에 존재하게 되는 거니까. 그리고 지울 수도 있죠. 용량이 부족하면 슥! 하고 지우듯이 말이에요.”
현명한 아이는 자라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요. 그때 각성하면서 불완전하게나마 라임의 기억을 읽어 들인 거예요. 그리고 집에 가서 벌벌 떨며 울었죠. 몇 날 며칠이고 그 기억을 보며 울었어요. 그때는 파일처럼 완전히 개별로 다루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완전하게 읽어 들인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차츰 안정화되고, 능력을 확실히 알게 되어 컨트롤이 가능해졌을 때, 받아들인 그 기억을 완벽하게 개별적인 것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매일매일 그 기억을 들여다보았어요. 처음으로 내 앞에서 드러낸 당신의 감정을 추억하며··· 그 눈에 떠오른 ‘걱정’의 빛을 생각하며.
속으로 현명한 아이는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을 앞의 아이는 알지 못했다.
“결론은 간단한 거로군.”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녀석들은 너의 그 능력을 이용해 네 안에 인격을 저장하고, 너를 이용해서 현실의 리셉티클로 부활하겠다는 생각을 했단 건가?”
“헛된 일이죠. 제 능력은 이미 아라한 컴퍼니가 조사를 끝마쳤어요. 그리고 ‘라이프 크라이’가 개발되었죠.”
“그렇군.”
“하지만 저는 생각해요. 제 능력이 없었다고 해도 ‘라이프 크라이’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저렇게 완벽하게 만들어졌을 거라고 말이에요.”
아리엔의 말은 확실히 놀라웠다. 그녀의 능력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을 뛰어넘는 굉장한 능력이니까.
그래, 아리엔의 말대로 아라한 컴퍼니는 12년 주기에 맞추어 ‘라이프 크라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리엔의 능력을 발견해 연구하지 않았다고 해도 ‘라이프 크라이’의 완성도는 지금 수준과 비슷했을 터다. 아라한 컴퍼니는 충분히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네가 나에 대해 아는 거로군.”
“예.”
“나를 알아본 것도,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예.”
“후우······.”
아리엔 스스로 완벽하게 읽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완벽하게 읽었다면 내 능력에 대해서도 알았겠지. 그걸 몰랐던 걸로 봐서 모든 이야기는 진실인 듯하다.
그렇다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걸까? 무언가 껄끄러우면서도 한쪽으로는 안심 같은 게 되기도 한다.
“이 사실은 저 혼자만의 비밀이에요.”
그런 내 심정을 안다는 듯 말하는 아리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군. 내 성격을 안다고는 해도, 겨우 정보를 한 번 읽은 정도로 그렇게까지 판단하기는 불가능한데.”
디자인 휴먼의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그건 기억만 그렇지, 판단과 예측 같은 영역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건 직관력의 문제이고,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인 능력이다. 물론 기억 능력이 어느 정도 도움을 주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결론적으로, 아리엔이 내 성격을 보고 내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은, 겨우 한 번 내 기억을 접한 것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저 한 번 본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처음으로 내 기억을 읽었다는 점 때문에, 나를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어.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에 대해 자세히 알지? 이건 흡사 나를 연구······.”
그렇게까지 말한 순간 아리엔의 얼굴이 슬며시 붉어지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 생뚱맞은 모습에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반응이야?
“어이, 아리엔?”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에··· 관심이 있었··· 이 아니라······.”
언어중추가 고장이 났는지 횡설수설한다.
그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내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듯했지만, 왠지 맞는 듯도 했다.
슬쩍 레나가 누운 플레인 워커를 바라본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 붉어진 얼굴의 아리엔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이 주변을 내리눌렀다.
그렇게 침묵이 한참이나 계속되고, 이제 슬슬 지겨워질 정도였지만 어떻게 다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난 계속 입을 닫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아리엔이 여기에 온 이유가 뭐지? 자기의 비밀을(?) 말해주기 위해서 직접 온 것은 아닐 테고.
“저기······.”
마침내 아리엔이 비밀을 이야기하려는지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푸쉭! 소리가 나고, 곧이어 플레인 워커가 열리는 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나신의 몸으로 레나가 화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라임! 이 바람둥이!”
아아,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아이쿠, 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