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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하다
크리에이트 길드 녀석들은 내 쪽이 아닌 뮤리엄 쪽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녀석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나려는 걸까? 기다리면 아라한 컴퍼니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두고 봐야겠지.”
내 생각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차피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겠지.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삶은 어디를 향하고 있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오?”
카르카크의 말에 난 고개를 내저었다.
“잠깐 마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렇소? 그나저나 내일은 또 다른 지원군이 온다더군.”
“지원군?”
“이그젝션이라는 집단이라던데.”
이그젝션 길드도 이 일에 끼어들었나? 크리에이트 길드랑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더니.
“여기저기서 신흥 세력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하오.”
대규모 이벤트라서 많은 유저 길드들이 끼어들었나 보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그들은 모를 거다, 저주받은 왕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이곳은 게임으로서 존재하는 세계이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펜톤의 말에서 유추해보자면, 저주받은 왕의 일이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서대륙은 완전히 언데드의 세상이 돼버릴 거다.
그리고 이 라이프 크라이라는 게임도 붕괴돼버리거나, 언데드로만 플레이하게 되는 거겠지.
아직 동대륙이 남아 있다지만, 서대륙 전체가 언데드의 세상이 된다면 동대륙도 결국 언데드의 침략을 막을 수 없을 터.
저주받은 왕의 힘이 이 라이프 크라이를 뒤덮는 거다. 뭐, 그렇게 된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을 테지.
아라한의 의도가 대체 뭘까? 펜톤이 한 말처럼 게임을 이렇게 만들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말이야.
게다가 문제는 이 게임에는 운영자도, 버그도 없다는 점이다. 버그 없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고? 하!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정말 신이겠지.”
“뭐라고 했소?”
“아닙니다.”
카르카크의 말에 적당히 대답한 나는 빈둥거리며 회의 시간을 보내다가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이그젝션 길드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놔! 이거 놔아! 으아악! 아크 형! 제발 그, 그것만은!”
이그젝션 길드의 사람들은 약 30명 정도였다. 수뇌들이라고 한다.
길드 마스터 아리엔, 그리고 그 주변에는 3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일전에도 본 중력의 마투가 둔저. 그리고 다른 둘은 말쑥한 모습에 날개 모양의 장신구가 붙어 있는 부츠를 신고, 안경을 쓴 미청년 하나에, 검은 장포를 몸에 두르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약간 짧은 머리의 강인해 보이는 사내 한 명이다.
특이한 점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다. 그는 등 뒤에 긴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어깨에는 밧줄을 메고 있었다. 그 밧줄 끝에는 전신이 꽁꽁 묶인 한 사내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조용히 해라. 통조림으로의 소환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아크라는 이름을 들어보니 그가 바로 이그젝션 길드의 삼대 고수 중 하나라는 마인 아크가 분명한 듯하다.
그런데 통조림으로의 소환이라니? 뭐야, 그건? 어떤 은어라도 되나?
“으윽! 그, 그것만은··· 제발! 통조림만은······! 둔저 님, 저 좀 살려 주세요!”
굴비 엮이든 줄에 묶인 사내의 말에도 다른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다. 같은 이그젝션 길드 소속인 듯한데······.
“둔저, 너도 마감을 어긴다면 통조림으로의 소환을 당할 것이야.”
아크라는 사람의 말에 중력의 마투사 둔저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안경을 쓴 미청년도 움찔했다.
저 안경 쓴 미청년은 분명 삼대 고수 중 하나라는 스카이겠지?
“저기 형님··· 저는 저번에 마감은 잘 지켰······. 그리고 아련도 이번에는 잘 지키겠죠. 그러니 아련은 용서해주시죠?”
“시끄럽다.”
아무래도 저 아크라는 유저가 이그젝션의 최고 실력자인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그들이 이동하다가 나를 발견했는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라임, 만나서 반가워요.”
아리엔이 웃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오랜만이군.”
“그간 잘 지내셨나요?”
“나야 잘 지냈지. 아리엔은?”
“저도 잘 지냈어요. 길드의 여러분들이 도와주셨거든요.”
“그렇군. 그런데 길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나 봐.”
이그젝션 길드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그럴 리가요. 그렇죠, 여러분?”
아리엔이 돌아보자 모두가 어정쩡하게 웃었다. 처음부터 표정 변화가 없는 사람은 아크뿐이었다.
으음! 포스가 장난이 아니군. 거장의 느낌!
“그런데 이번에 이그젝션 길드도 참여한 건가?”
“예. 크리에이트 길드와는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지만, 우리도 그들의 처지는 확실히 동정하고 있으니까요. 타협은 했어요.”
“그랬군.”
“그런데 라임이 한 일은 과했어요. 덕분에 그들이 라임을 아주 싫어하던데요.”
“그래봤자다.”
현실의 나를 찾아내는 것도, 나를 죽이는 것도 녀석들에게는 불가능하다. 아라한 컴퍼니조차도 나를 찾지 못했다. 아라한 컴퍼니보다 못한 놈들이 현실에서 날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게다가 아라한 컴퍼니의 내부 정보를 해킹하는 것도 녀석들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데 콰쾅! 하고 큰 폭발이 일었다.
“얏호! 탈출이다! 자유다!”
아련이라는 사내가 줄을 끊고 마구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아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안 되겠군.”
그의 손이 아련에게로 향하자 다른 길드원들이 난색을 표하며 그를 말렸다.
“형, 참으세요!”
“아크 님, 참으십······.”
“게이트 인 통조림! 통조림으로의 소환을 시작한다!”
아크라는 사내가 검을 꺼내 들고 내리치자 공간이 쩌억 갈라졌다. 아니, 저건 또 뭐야? 하고 바라보는데, 차원이 점점 커지더니 저 멀리 달려가던 아련이라는 사내의 몸이 우왓! 소리와 함께 엄청난 흡입력을 받는 듯 끌려오는 게 아닌가?
“으아아아악! 통조림만은 안 돼! 으아아앙!”
그리고는 공간의 문의 경계를 부여잡고 버티면서 땅에 뭐라고 썼다. 그걸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려줘······! 범인은 아크 형······.>
그는 빨려 들어가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난 돌아온다!”
그리고는 그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뭔가 섬뜩한 무언가를 본 것 같다. 대체 게이트 인 통조림, 통조림으로의 소환이라는 저건 뭐하는 스킬이지?
“실례가 많았습니다, 라임. 저는 아크라고 하는데 처음 뵙는군요.”
“아닙니다. 라임이라고 합니다.”
그가 손을 내밀기에 마주 잡고 악수를 했다.
“오늘은 저희 길드가 처음 온 날입니다. 사령관들과 다른 NPC들과도 대화를 나누어야 하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