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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처절한 외침을 토하고 있다
“라임이다!”
“죽여!”
“개새끼!”
여전히 인기가 높군그래.
“어리석은 것들. 오너라, 사자군주의 권속들아. 나 저주받은 왕의 사도로서 명한다. 이곳에 나타나라!”
부우우우우우우우웅! 하고 귀가 따가운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마리의 벌이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내 그림자에서부터 검은색 벌레들이 무수히 기어 나왔다.
“먹어라, 골든 비틀.”
많은 수의 황금색 풍뎅이가 날아올랐다. 시체를 파먹기도 하고, 시체와 같이 살아가는 사계의 마물들이 날아올라 녀석들을 공격했다.
“처리해라.”
-휘룻!
젝칵하락쉬가 언데드 위저드들과 함께 떠올랐다. 거대한 빌딩이라는 현대의 건축물 안에서 판타지의 전쟁이 다시금 벌어졌다.
“가자, 레나.”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한다!
나는 죽음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지하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쿠쿵!
나와 레나는 구멍을 뚫고서 그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물을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다. 이 아래, 아라한이 있음이 느껴지고 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라한을 만나게 되면 알 수 있겠지.
“응.”
레나와 같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곧 우리는 전혀 새로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완전 이계로군.”
높다. 그리고 넓다. 분명 나는 지하로 내려왔는데,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광택이 감도는 차가운 금속으로 된 공간이 펼쳐졌다.
이 아래에 분명히 아라한이 있다. 아라한 놈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되자 나는 한 가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라한이 신이라는 존재가 분명하다는 것을. 그런데 신이라는 놈이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그리고 펜톤과 저주받은 왕은 왜 아라한을 시험하는 걸까?
저주받은 왕의 기원은 이미 그에게서 기억을 건네받아 알고 있지만, 펜톤은 뭐하는 신일까?
“하······.”
신이라니. 정말이지 판타지도 아니고··· 웃기는 노릇이로군.
“이상해.”
“아아, 이상하지.”
레나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그런데 우리··· 아라한 님을 만나러 가는 거야?”
레나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다.
그렇지. 이 녀석은 아라한의 창조물.
“그래. 그리고 수틀리면 아라한을 죽여 버릴 거야.”
사실 죽인다기보다는 박살을 내서 그 힘을 약화시키는 정도일 뿐이지만 말이지. 저주받은 왕이 준 힘은 그 정도는 되니까.
“그러니 돌아가라.”
내 말에 레나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네가 하려던 일이 그런 거였어?”
“그래.”
“너무··· 위험하잖아.”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지. 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실이 나에게 소중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해 주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레나가 있다. 레나는 현실과 가상 양측에 몸담은 존재.
그래. 너를 위해 뒤죽박죽이 된 세계를 원래로 되돌려야만 해.
“너를 위해서··· 세계는 원래의 모습이 되어야만 하니까.”
레나의 눈이 나를 직시한다. 흔들림은 없다.
“나를 위해서?”
“그래.”
레나의 눈이 뜨거워지더니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입술과 입술이 가볍게 마주 닿으며 쓸어가는 감촉에 기이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나는 레나를 꽈악 안으며 깊이 키스했다. 그 사이로 마음이 얽혀 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자.”
“응.”
아라한, 드디어 네놈의 면상을 보게 되는구나.
@삶은 언제나 처절한 외침을 토하고 있다
삶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 답을 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왜 답을 구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이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목소리-
죽음은 평안이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꼴을 보면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 별게 다 있군.”
나는 5가지 마법을 의지로 만들어내 쏘았다. 사계의 업화, 원령의 검, 광기의 폭발, 얽매임의 포박, 음울함의 발톱이라는 마법들이다.
모두 상위의 마법으로, 단번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달려드는 것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콰앙! 후드드드득!
많은 것들이 부서지면서 흩어졌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레나와 같이 리셉티클의 육신을 기반으로 한 전투 안드로이드. 그 힘이 보통이 아니어서 인간의 몇 배나 되는 괴력을 발휘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힘의 수치만 500이다. 그리고 마력은 무한하지. 마법은 한 번에 수십 개나 연산해 만들 수 있고, 주문조차 필요 없는 존재가 바로 나다.
그래, 어쩌다 보니 괴물이 되기는 했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이것들 뭐야, 라임!”
레나는 검을 휘두르며 덤벼드는 놈들을 상대하고 있다. 나 역시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의 빈틈으로 달려드는 놈들의 골통을 부수면서 계속해서 마법을 생성해냈다.
“오라, 사계의 존재여!”
그리고 틈틈이 사계에 거하는 저주받은 기사를 불러냈다. 사령 마법사가 만드는 최고위 언데드 중 하나인 데스나이트보다 더 고위의 언데드인 저주받은 기사는 자연산 언데드다. 웃기겠지만, 자연산이라 더 강하다. 스스로 저주를 받아 왕이 된 저주받은 왕처럼, 이들은 생전 기사였거나 강한 무인이었다가 저주를 받았다고 할 만큼 비참하게 죽어 사계에 내려선 자들.
그들은 영원토록 사계를 떠돌며 죽기 전의 삶에 매달려 얽매인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다.
그들이 나타나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일검에 검의 궤적에 포함된 수 미터의 공간이 썩둑 잘려 나갔다.
마법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폭발하며 터져 나갔다. 블랙 워 로드를 부르면 좋겠지만, 위에서 열심히 싸우는 듯하니 내버려 둬야지.
레나의 검은 저주받은 기사들보다 더 강하다. 그 일검에 10미터에 달하는 반원의 공간이 쩍쩍 갈라지는 게 보였다. 그나마도 힘을 아끼며 아직 전력을 다하는 건 아니다. 레나도 많이 강해졌어.
“그나저나······.”
지겹게도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군. 아라한은 겨우 이런 걸로 내 앞을 막아 시간을 벌려는 셈인가?
콰쾅!
천장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칼츠가 뛰어내리고 있었다. 칼츠는 뛰어내리면서도 누군가와 검을 맞대고서 싸우고 있었다.
이그젝션 길드의 마인 아크!
“허!”
칼츠와 검으로 저렇게 맞부딪칠 수 있는 자가 있었단 말인가? 대단하군!
“합!”
아크의 검이 수십 개로 분할되는 듯하더니, 검에서 검강이 줄기줄기 뿜어져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그에 맞서 칼츠도 검강을 뽑아낸 칼로 검술을 펼쳐냈다. 순수한 검술의 부딪침이라고 할까?
대단하군!
“라임! 가게 둘 수는 없다!”
그 둘의 뒤로 아사크가 나를 향해 쐐에에엑! 하고 몸을 날려 왔다.
“흥!”
어리석다고 비웃어라.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진정한 죽음을 맛보여 줘라. 마음속에서 살의가 일렁인다.
그리고 그건 그대로 마법이 되어 내 주위에 만들어져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