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천부적인 사냥꾼 (1)
평범한 오후.
여느 때처럼 몬스터상점으로 재료를 판매하러 온 그에게, 별안간 공무원이 사냥꾼등록증을 요구했다.
“여기, 새로 발급된 사냥꾼등록증입니다.”
공무원이 몇 번 뚝딱하더니 새로 만들어진 사냥꾼등록증의 앞면에는, 전과는 다른 단어가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천부적인 사냥꾼’···? 뭡니까 이게?”
세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그건 칭호라고 하는건데.. 그냥 스펙이 되는 미사여구에요.”
“예?”
“세진씨가 사냥꾼일을 시작하신 지 고작 첫 달 만에 23마리의 몬스터 사체를 들고오셨잖아요? 그래서 조건에 충족이 되어, 수식어가 하나 붙으신 거에요. 재능이 넘쳐난다는 뜻의 ‘천부적’이라는 수식어가요. 굉장히 희귀하고 좋은 칭호에요. 사냥꾼경력이 6개월이 넘어가면 부여 받을 수 없고, 기사단에서는 ‘노련한’, ‘관록있는’ 이런 것 보다도 이 칭호를 더욱 선호하거든요.”
공무원이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지만, 세진은 별 다른 표정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 고작 인간일 수 있는 시간이 80분밖에 안되는 그에게는 별 쓸모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아···저기!”
세진이 무심하게 돌아서자, 별안간 공무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소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의아하다는 듯 공무원을 바라보자, 그녀는 수줍은 듯 두 볼을 붉히더니 종이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그··· 이거 한번 봐 보세요!”
“···예?”
공무원이 영업을 해? 세진은 살짝 어이없었지만, 몸을 베베꼬며 부끄러워하는 여자공무원은 객관적으로도 귀엽다 하기에 충분했다.
남은 시간은··· 66분.
“뭔데요 이게?”
그가 종이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가며 물었다. ‘파백기사단 공채 사냥꾼 모집’이라는 글씨가 가장 위에 큼지막하게 적혔고, 아래의 작은글자는 기타 상세사항인 듯 했다.
“파백기사단이라고 저희 지방에 거점을 두고 있는 국립기사단인데, 사냥꾼을 뽑는다고 해서요. 물론 중급 이상만 지원가능이긴 하지만··· 세진씨의 칭호는 우대해 준다고 해요! 게다가 세진씨는 경험일수만 충족되시면 곧 중하급 그 이상으로 승급 하실 예정이니까요.”
참고로 중하급 사냥꾼의 정의는, ‘동일 급간 셋이 모이면 하급 몬스터를 하나 사냥할 수 있는 사냥꾼’이다. 중하급 기사는 그 반대로 ‘혼자서 하급 몬스터를 동시에 셋 이상 처리할 수 있는 기사’이고.
그러니 지금 공무원에게 김세진이라는 존재는 조금, 아니 꽤 많이 특별했다. 대부분의 사냥꾼은 적어도 3명 이상단위로 조를 이루어 다니는데, 이 남자는 언제나 혼자서 와서, 언제나 혼자서 떠났으니.
“어때요. 한번··· 지원해 보시겠어요? 여기서, 지금 당장 지원이 가능하세요. 세진씨는 지원만 하면 꼭 붙으실거에요! 역대 ‘천부적’이라는 칭호가 붙었던 사냥꾼분들은 채 경력이 1년이 넘기도 전에 명문기사단에 입단하셨으니까요. 개중에서는 아예 기사로 전환하신 분도 있어요!”
그녀는 약간 안달하며 세진의 소맷자락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곧바로 거절하려했지만, 여공무원의 맑고 동그란 눈망울의 반짝임이 조금 아쉬웠다. 일평생 경험해보지 못했던, 적극적인 여자의 모습이었다.
세진은 역시 남자는 능력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귀여운 여자가, 그것도 공무원이나 되어 놓고서 이만큼 적극적일 수 있다니··· 참 신비하면서도 괴로운 신세계가 아닌가. ‘몬스터’라는 특성이 아니었으면 누리지 못했을, 그러나 ‘몬스터’이기에 제대로 만끽할 수조차 없는···.
“···그런가요?”
세진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애매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그녀는 생각대로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듯 헤실헤실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네. 당연해요! 하핫··· 근데.. 제가··· 그것과 관련해서 딱, 딱 하나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리고 그 순간. 미세하게나마 떠오르던 세진의 미소가 멎었다. 과거, 어렸을 적 등쳐먹히면서 강제적으로 길러졌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다음을 듣지 말고, 어서 빨리 떠나라고.
“저.. 만약 지원하시게 되면, 추천인에 제 이름 김혜진···..아앗, 잠깐만요! 잠깐만요! 세진씨~!!”
그녀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세진은 달리기에 가까운 수준의 경보로 몬스터 상점을 빠져나갔다.
* * *
그저 애물단지라고만 생각했던 고블린이 하나의 보물단지로 급변하고 나서, 사냥은 굉장히 수월해 졌다. 단연 신체강화포션 덕분이었다.
도핑 한 오크는 오크전사와 맞먹는 힘을 냈다. 그러나 무기가 조악한 오크전사에 반해 이 쪽은 몬스터 상점에서 구매한 강철로 된 메이스를 들고있으니, 전체적인 파괴력만큼은 오크전사보다 더욱 강력하다 하겠다.
물론 도핑 한 잿빛늑대로도 비슷한 파괴력을 낼 수 있겠지만 잿빛늑대의 각력은 제어가 힘들 정도로 대단한 쾌속이어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사냥은 주로 인간과 최대한 비슷한 오크폼으로 했다.
“그어어어어어--!!!!”
그리고 지금, 임전의 포효는 본능이었다. 전투에 임할 때면 맹렬히 들끓어오르는 투쟁심은 마치 자신이 전설속의 군웅이라도 된 것 같은 황홀감을 선사했고, 그에 파생된 고양감은 도저히 소리를 내지르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
그러나 상대는 말이 없었다. 당연했다. 온 몸이 백골인 놈은 리치에 의해 마나가 재조립된 시체나 다름없었으니.
콰아아앙-
이빨이 나간 시미터와, 강철의 메이스가 부딪혔다.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굉연한 폭음과 충격파에 숲이 진동하고, 해골병의 두개골은 시미터와 함께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새하얀 뼛조각들이 허공으로 비산하는 속에서, 오크는 늠름하게 서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조건 완료: 경험치 충족]
▶ 특성의 레벨이 4가 되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하고, 포밍능력치가 상향조정됩니다.
게다가 떠오르는 이 알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기쁨은 배가된다.
그러나 여운은 그리 길지 못했다.
수풀이 흔들리고, 발이 땅에 자취를 남기는 바스락 소리.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게 멀다고도 말할 수 없었기에, 그는 재빨리 인간의 형체를 취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
사실 이 몬스터필드에서 세진의 가장 큰 위협은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하급지대의 몬스터들은 트롤이 아닌이상 고만고만한데 반하여, ‘기사’라는 압도적인 존재는 그야말로 규격외였기 때문이다. 잘못해서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대로 즉사.
그래서 그는 항시 오감을 예민하게 유지했다. 다행히도 인간폼의 옷차림과 몬스터폼의 옷차림은 연동이 되지 않고 독립적이었기에 이런 임기응변이 가능했다.
“···사람이었네?”
인간이 된 그가 태연한 척 해골병의 유해속에서 나뒹구는 ‘최하급 마나석’을 집었을 때, 수풀을 헤집고서 사냥꾼 한 무리가 튀어나왔다. 4명으로 이루어진 그 무리는 세진의 옷차림을 낱낱이 살펴보다가, 그가 손에 쥐고있는 메이스를 발견하곤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사냥꾼들은 마나와 친하지 못하고, 따라서 신체도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근접무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들이 사냥할 때 사용하는 무기는 마나탄을 사용하는 총기류들 뿐. 그렇기에 지금 이 사냥꾼들은 세진을 기사라고 착각한 듯 했다. 방금 전 굉음도 들었으니, 급수가 최소 하급은 되는 기사.
“하하.. 참 우연이네요. 몬스터 필드에서는 사람과 만나기가 힘든데···.”
무리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 한명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세진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나 세진이 아무런 반응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자, 사냥꾼은 품속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건넸다.
“저희는 태릉기사단 소속 사냥 1팀입니다. 저는 중상급사냥꾼 김지한이고, 얘들은··· 모르셔도 됩니다. 햇병아리들이니.”
꽤 있어 보이는 명함에는 과연 ‘중상급’이라는 글자가 황금색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아무래도, 기사단 소속 베테랑 사냥꾼이 싹수가 좋은 신삥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함께 시범사냥을 나온 듯 했다.
“그렇군요.”
“네. 하하하, 얘네가 고작 2년만에 중하급을 찍기는 했는데, 그래도 아직 병아리인건 변함이 없어서요··· 아.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어느 기사단 소속이신지 여쭤봐도···?”
김지한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기사와 인맥을 쌓으면 득이면 득이지, 실이 될 껀덕지는 결코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진이 기사였다면 말이다.
“···아,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으신데.. 저는 기사가 아닙니다.”
그는 일단 명함을 품 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러자 지한이 순간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내 그런 그의 눈길이 사방에 흩뿌려진 해골병의 잔해로 향했다. 해골병을 혼자서 이렇게 개박살을 내놨으면서 기사가 아니라고?
“······그러면···.”
“아, 저도 사냥꾼입니다. 반갑습니다. 등급은 하급입니다.”
지한의 황당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건넸다. 얼떨결에 건넨 손을 잡았지만, 지한은 여전히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 근데.. 거짓말···이시죠? 하하, 참··· 유머감각이 뛰어나시네요. 원래.. 안되거든요, 알죠? 하급사냥꾼은 하급지대에서 혼자서는 사냥을 못해요. 그··· 하급이 혼자서 몬스터 잡을 수 있으면 기사를 하지 뭐하러 사냥꾼을 합니까? 아하하하!”
“하하···그런가요? 근데 진짭니다.”
인간폼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방금 레벨업을 했기에 90분. 꽤 길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모자르다. 세진은 재빨리 품에서 사냥꾼 등록증을 꺼내 지한에게 건넸다.
“어? 이거 진짜 사냥꾼등록증··· 어?”
등록증을 앞뒤로 살펴보던 지한은 이내 엄청난 것을 발견하고서 눈과 입을 동시에 확대시켰다.
“천부적인······? 이거 설마···.”
그는 잠시 말문을 잃은 채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천부적인’, 사냥꾼 경력이 시작된 반년 안에, 한 달 동안 스무 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처치하면 부여 받을 수 있는, 사냥꾼 한정 최고의 칭호 중 하나다.
이 칭호를 받은 사냥꾼들은 명문기사단으로 스카우트가 됨은 물론, 아예 직종을 바꿔 ‘기사’가 된 경우도 심심찮게 존재한다.
등록증의 뒷면에는 실적이 적혀 있었는데, 과연 대단했다. 재능의 차이라고 할까. 고작 한달새에 23마리의 몬스터를, 게다가 ‘직접 해체’하여 판매. 너무 압도적이어서, 자신보다 등급이 두 급간이나 낮음에도 지한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엇!”
그러나 등록증을 살피던 지한의 눈에 별안간 이채가 번뜩였다. 이유는, 그의 ‘소속’란이 공백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냥꾼의 사냥은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임시파티를 꾸려서 하는 사냥이고, 다른 하나는 기사단 소속의 사냥꾼이 되어 김지한처럼 정해진 ‘팀’단위로 하는 사냥.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전자는 후지고, 후자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기사단에 입단할 능력이 됨에도 단체생활이나 규율이 싫어 전자로만 활동하는 사냥꾼도 심심찮게 있으니.
“소속이 없으십니까?!”
“······아 예. 그렇긴 한데 저는 혼자서 다닐거라. 어디 소속될 생각은 없어요.”
세진은 단호했고, 지한은 그가 명백한 후자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곧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명함을 하나 더 건넸다.
이번에는, ‘태릉기사단’ 자체의 명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