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야수의 마나석 (2)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일단 진정, 심호흡 크게 하시고 나서 말해보세요. 저, 어디 도망 안가요.”
하젤린이 조심스레 타이르듯 말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지금 통화하는 연금술사는 저번 만남과는 달리 많이 다급하고 갈급해져 있었다.
다행히 세진은 그녀의 말을 잘 따랐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소리가 1분여간 들리고, 그제서야 조금 진정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구해야 하는 물건이 생겼습니다. 아직 포션 대금이 안 들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제가 만들어 놓은 포션이 열 개정도 됩니다. 그 대금을 받지 않을 테니, 물건 하나만······.
“네? 열 개나 만들어 놓으셨다고요?”
세진은 너무나도 다급했지만, 하젤린은 다른 부분이 더 신경쓰였다.
그때 이후로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 포션을 열 개나?
물론 하나하나가 그때처럼 상등급의 포션일거라는 기대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남자는 연금술 그 자체일 테니까. 그래도 고작 한달도 지나지 않아 포션 열 개라니, 각각 중등하급만 이상이어도 거의 공방수준이다. 한 명의 연금술사, 그것도 ‘인간’이 하나의 공방과 동등하다니, 참 누가 들으면 지독한 농담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넌센스다.
-예. 열 개정도 있습니다. 효험은 제가 확신합니다. 일신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포션과, ‘고블린의 선의’의 열화판이라 말하라 수 있는 회복포션, 그리고 속성저항포션······.
“예, 예? 잠깐, 방금 뭐라고요?!”
순간 하젤린이 벌떡 일어났다. 이제 조급한 건 그녀의 차례였다. 포션을 열 개나 만들었다는 것도 이해를 못할 지경인데, 마지막 문장 ‘속성 저항력’. 그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이미 사멸한 포션이었다. 정확히는 제조법의 사멸.
약 60여년 전, 세계의 균열을 넘어 지구로 이주해온 ‘최초의 연금술사’들 중에서 ‘로데스’라는 일가가 있었다.
일명 '로데스 패밀리'. 이들의 연금술은 압도적이었고, 이 일가의 연금술은 현대 연금술의 전신과도 다름 없었다.
여타 연금술사들 처럼 폐쇄적이었던 이 로데스 패밀리는 제조법을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직 로데스만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포션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속성저항 포션’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 전. 로데스 패밀리는 어느 순간 그 자취를 감춰 버렸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로데스 가(家)가 지닌 모든 포션 제조법들은 그 실종과 동시에 절멸했다.
로데스는 지구 연금계에 최초의 족적을 남겼고, 그들을 제외한 현대 연금계의 역량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 또한 동시에 남겼다.
그들은 연금술사들에게 항상 영감을 전해주던 우상이자 동경이었고, 커다란 동기부여였으며, 이제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 '로데스'만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포션을, 한 남자 연금술사가 제조해냈다고 말한다······.
“자자자, 잠깐만요. 뭔 포션이요? 속성 저항력?”
-······예. 그렇습니다.
그 덤덤한 대답에 하젤린은 순간 기절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그 포션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어, 어떻게요? 아니, 지금 어디세요? 제가 찾아갈 테니까······.!”
-아뇨 그건 좀 곤란합니다.
세진은 하젤린의 유별난 반응에, 일단 조심스럽게 반응했다.
그러나 하젤린은 지금 답답해서 미칠지경이었다. 이건 이상함을 넘어 말이 안되는 수준이다.
수 많은 연금술사들, 심지어 하젤린까지 그 ‘속성저항’에 단체로 도전했었다. 근 5년전에 열린 ‘대 연금술 회합’의 목적이 그것이었다. 로데스의 실종 이후 소실된 포션들의 재생산. 총 5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속성저항이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의 주도가 아닌 '기사단'의 주선으로 인해 성사됐던 그 회합은 포션의 배합법은 커녕, 재료의 실마리조차 알아내지 못한 채 해산했다. 남긴 건 연금술사들의 서로를 향한, 그리고 기사단을 향한 그득한 불신 뿐이었다.
“······아. 아뇨. 그······ 세진씨가 정말 속성저항을 만드셨다면······ 일단 만나요, 이건 만나서 얘기해야 해요! 제, 제가 갈게요. 어디세요?”
*
그 당일, 두 사람은 요선 알케미하우스에서 만났다.
“중급. 딱 중급정도 되겠네요.”
하젤린이 포션통에 담긴 주홍빛 액체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녀는 지금 호흡이 가빠올 정도였다. 17여년의 연금술사 경력으로 확신할 수 있다. 도감에서 봤던 '로데스 속성저항 포션'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건 속성저항이 확실하다.
비록 등급이 ‘중급’수준이라 낮긴 하지만, 기사단은 눈에 불을 켜고 이 물건을 탐낼 것이다. 중상급 이상 몬스터들의 속성공격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에.
물리적 피해는 갑옷이 있으니 괜찮은데, 드래곤 터틀이나 와이번처럼 불이나 얼음을 뿜을 경우에는, 갑옷이 맨 살을 모두 보호할 수 없어 오직 ‘마나강기’로 버텨내야 한다.
그러나 상급기사 이상이 아니면 그 압도적인 마나소모량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 대단하다는 ‘고위기사’조차 회복포션이 없으면 속성공격을 하는 몬스터를 대적하기 꺼려할 정도니.
그러나 이 ‘속성 저항’포션이 있으면 말이 크게 달라진다. 오직 특등급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한 포션. 로데스 패밀리의 기준에 따르면, ‘중급’은 속성피해를 절반 가량 감량할 수 있다. 그 정도만 돼도 상급기사는 마나강기에 할애하는 마나량을 줄일 수 있어, 좀 더 수월하게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다.
“이 포션을······ 혼자서 만드신 거라구요?”
“예. 제조하기 어려워 두 개 밖에 못 만들었습니다.”
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속성저항 포션은 배합법이 아주 까다로웠다. 재료가 스무 여개나 들어가는 것은 물론, 그 배합도 대단히 세심해야 했다. 고블린의 손재주로도 몇 번 실패했을 정도니.
그가 일부러 이 포션을 만든 이유도 ‘고블린의 손재주’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포션제조에 성공하는 것 보다, 실패하는 것이 더 많은 숙련도를 줬기에.
“······.”
그러나 서로 이 포션을 보는 시각은 극단적으로 달랐다.
‘두 개 밖에’라니, 순간 하젤린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가 절실하게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미 오래전에 사멸된 제조법을, 오직 혼자서 끌어올려낼 수 있었는지. 도저히······.
‘혹시 그 스승이란 사람이?’
하젤린의 머리속에 전구가 반짝거린 건 그때였다.
로데스는 그 자취를 순식간에 감췄다. 누구는 앙심을 품은 연금술사에게 살해당했다고, 누구는 원래 있었던 이계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 그저 썰일 뿐이다. 확실한 건, 그저 어느 순간 먼지처럼 사라졌다는 것 뿐.
혹시, 그들이 사라진 이유가 연금술에 염증을 느낀 것 뿐이라면······.
충분히 말이 되는 이유다. 로데스 일가는 그 어떤 연금술사들보다 큰 기대와 많은 주문을 받았고, 그것은 그대로 부담감과 중압감으로 직결되었을 테니.
꽤 이름을 날린 연금술사가 연금술에 질린다면, 그들의 진로는 둘 중 하나다.
후학을 양성하거나, 하젤린처럼 알케미하우스의 책임자가 되거나.
그러나 로데스는 결단코 후자가 아니다!
“······흠. 어쨌든, 그 부탁이란게 뭔가요?”
머릿속의 논리가 제 아귀를 딱딱 찾아가며 급속히 전개되었지만, 하젤린은 애써 태연을 가장하여 물었다. 연금술사들은 사제관계를 그 무엇보다 중시 여긴다. 굳이 확실치 않음에도 민감한 주제를 건드려서 관계를 파탄낼 필요는 없었다.
“혹시, ‘웨어울프의 마나석’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오늘 오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세진 또한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말했다. 최소 20억, 최대 40억, 그러나 최대 가격인 40억으로 낙찰이 예상된다. 절반정도 남아있는 검치를 사용해 다시 상등급 포션을 만들어 판매한다 하더라도, 대금이 들어오기까지의 기간은 최소 한달 이상이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 웨어울프의 마나석을 구매하기 위해선 하젤린의 도움이 필수다.
고작 세번 만난 사이지만, 세진에게는 기댈 구석이 그녀 이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어떠한 자신감이 있었다. 고블린 수준으로 포션을 제조하는데, 그 어느 누가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아. 예. 봤어요. 근데 그건 왜······설마?”
“네. 저는 그걸 꼭 구하고 싶습니다. 근데······.”
돈이 없네요. 세진은 차마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대신, 현물이나 다름이 없는 포션 열 개를 그녀에게 디밀었다.
“······”
하젤린은 그 포션들을 바라보며 두뇌계산기를 두드렸다.
속성저항 포션. 중급이라 상한가는 5천만원 밖에 안되지만, 커미션으로는 4억 가까이 받을 수 있다. 회복포션과는 달리 오직 한사람만이 복용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가격이다.
그 외 다른 포션도 쓸만했다. 그러나 세금까지 다 떼면, 총합 6억을 못 넘긴다. ‘고블린의 선의’ 판매 대금까지 합치면, 아마 세후 28억쯤. 웨어울프 마나석의 최종 낙찰가가 40억정도로 추정되는 것에 비하면 12억 가량이 부족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10억보다 더욱 중요한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
앞으로 두 사람, 하젤린과 김세진 간의 관계.
만약 이 남자가 로데스의 후계자라면, 아니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세기의 천재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놓칠 수는 없지.’
게다가 지금 그녀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연금술의 화신, 로데스 가의 후계자다.
그게 아니고서는 30년전에 절멸한 포션을 이토록 완벽히 재현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흠······”
하젤린은 지금 이 남자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과거에, 그러니까 자신이 아직은 연금술이란 것에 자부심이 넘칠 때. 그 때 이 남자를 만났더라면, 열등감과 질투심에 무슨 짓을 벌였을지도 모르니까.
“책임지고 구해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벌어둔 돈이 조금 많거든요. 이래봬도, 과거에는 꽤 날렸던 연금술사 겸 마법사에요 제가.”
하젤린은 그렇게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세진의 입가에도 덩달아 깊은 호선이 패였다.
*
세진이 떠나가고, 홀로 남겨진 책임자실 안. 하젤린은 근 3년만에 ‘알케미 카페’에 접속했다. 현직 혹은 전직 연금술사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일종의 직업카페. 그녀는 여러 이유로 여태까지 접속을 꺼려했었지만, 오늘 ‘로데스’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있나 싶어 아주 오랜만에 접속했다.
“······활발하네.”
그녀가 중얼거렸다. 로데스는 그 자취를 감춘 지 30년이 지나고서도,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었다. 로데스 전용 게시판이 따로 있고, 최신글이 고작 10분 전일 정도로.
그녀는 3년동안 쌓인 글 중에, ‘VVIP’권한이 필요한 게시글만을 모조리 정독했다. 그러나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괜히 눈만 배렸네.”
하젤린은 별 다른 소득 없이 접속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