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오크의 대장간
-균열이 생겨난 구밀교회에서 혈액 없는 시체와 백골이 무수히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수사당국은 이 균열이 ‘뱀파이어’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근 5년만에 발생한 몬스터 강습과 더불어, 근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뱀파이어의 출몰에 시민들은 다시금 불안······.
버릴 물건은 놔두고 간직해야 할 물건은 품 속으로 챙기고 있는 와중에, 허름한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이 세진의 눈길을 끌었다. 뱀파이어의 출몰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뉴스.
“······”
그 뉴스를 보던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쥔 액자를 움켜쥐었다. 이 액자 속에 담긴 사진은 그의 유일한 가족사진이었다. 이제 추억과 상처의 경계에 남은 이 빛 바랜 사진은, 그가 어머니를 잃기 바로 전날에 당신과 함께 남긴 마지막 유년시절이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당신께서는 죽음을 예감하셨던 것인지도 모른다. ‘불의의 사고’라 포장된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전 날. 유난히도 밝았던 표정과, 동시에 유난히 서글펐던 모습. 어린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액자를 만든 어머니께서는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신다며 집을 떠나시고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셨다.
표면적인 이유는 교통사고. 그러나 세진은 그 어린 나이에도 어느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시체가 그렇게 깨끗하지도, 그렇게 창백하지도 않다. 입관때 보았던 어머니는 그저 편히 잠드신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는 고아가 된 7살배기 어린아이였을 뿐이다.
-18년 전 정부에서 ‘뱀파이어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뱀파이어는 그 종적을 잠시나마 감추었는데요, 이 사건은 그들이 여전히 지하조직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가 될······
세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박쥐, 어쩌면 쓰레기, 혹은 그보다 더한 오물덩어리들. 혈액을 식량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필연적으로 인간과는 어울리지 못할 족속들이었다. 그렇다고 인간이 그들에게 배려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더럽다는 이유로, 그들은 인간을 철저히 배신했다.
그리고 지금, 그 빌어먹을 박쥐새끼들이 또 다시······.
세진은 주먹을 움켜쥔 채 거울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15년전, 마냥 울기만 했던 어린아이는 그곳에 없었다.
* * *
오크는 그 ‘등급’에 따라 생활 방식이 현저히 다른 아주 특이한 몬스터다.
최하급~하급지대의 오크, 오크 전사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 그저 필요할 때 교미하고 번식하며 하루하루 고독한 투쟁의 삶을 살아갈 뿐. 그래서 그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아주 조악한 목제무기가 끝이다.
그러나 중하급지대 이상의 오크라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쪽의 오크는 다수의 개체가 모여 부락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고블린과 비슷하지만, 철저한 분업화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빠른 발로 정찰을 하여 식수 혹은 식량의 위치를 파악해내는 오크 정찰병, 정찰의 정보로 사냥을 하거나 다른 몬스터, 기사 그리고 사냥꾼에 대항하는 오크 전사와 오크 재규어, 경험과 연륜이 쌓여 부족 안에서 부족을 지키는 오크 대전사. 그리고 그 부족을 통솔하는 오크 족장.
“야, 잠깐 저거······.”
“쉿! 맞아. 오크 부족.”
그러나 오크의 사체는 그 낮은 가치에 비해 위험도가 굉장히 높다. 오크 대전사만 하더라도 등급에 관계없이 최소 중상급기사와 맞먹는 강함을 지니고 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기사단은 오크부족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다. 바로 ‘오크의 대장간’.
“오늘 운이 좋네. GPS찍고 빨리 도망가자.”
“오케이. 근데 이거 거의 중간규모 부족인데, 그러면 얼마랬지?”
오크 부락내에는 조잡한 대장간이 여럿 존재한다. 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오크의 본업은 어쩌면 모두 대장장이로, 그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는 오로지 자신이 만든다. 그것이 왜 오크 전사냐, 오크 재규어냐, 오크 대전사냐에 따라 그 무기의 완성도가 변하는 이유다.
그러나 오크의 제작능력은 그 등급이 높을수록 뛰어나서 오크 부락이 존재치 않는 최하~하급 지대나, 있어도 제작능력이 변변찮은 중하급 지대의 오크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
“새벽이 아마 제일 많이 줄 텐데, 저번에 5억정도 준댔어.”
하지만 이 곳은 중급지대의 오크부락. 오크 재규어가 들고있는 무기가 웬만한 직공이 만드는 무기보다 훨씬 뛰어나고, 대전사나 족장이 만든 무기는 아마 명인의 그것과 비교가 가능하거나 더욱 탁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사단은 그 무기를 얻기 위해 오크부족을 공략한다. 당연 기사들에게는 무기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력이 뛰어난 기사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허나 그건 무기가 좋으면 더욱 강해지니까 좋다, 이런 부수적이고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만약 기사의 마력에 비해 무기가 형편없다면 그 무기는 기사의 마나를 견뎌내지 못하고 폭발해버린다.
현재 중상급 이상의 기사는 대한민국에서만 2500명 가까이 되지만, 그 수준에 알맞은 무기는 현재 파악된 것만으로도 고작 이천 개 남짓. 이것은 약 오백여명의 기사들은 매번 전투에 나갈 때 마다 무기가 파손되어 커다란 상흔을 입는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이건 타국에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라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도 불가능.
그렇기에 대부분의 기사단은 이 ‘오크의 대장간’에 높은 금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특히 새벽기사단은 절실할 정도였다. 그쪽은 돈은 넘쳐나지만 좋은 무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노릇이니.
“GPS찍었다 이제 빨리······.”
그러나 기사단이 그런 높은 금액의 현상금을 건 이유는 분명히 존재했다.
중급 지대에 살아가는 오크들은 부족을 중요시 여기고, 그 주변의 기척을 귀신같이 감지해낼 수 있다.
-크어어어어!
들끓는 포효에 산세가 부르르 떨었다.
“어 좆됐···!”
두 사냥꾼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방금은 분명 다른 오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오크족장의 고함일 터. 필히 오크들이 자신들을 쫓아서······
-쾅쾅쾅쾅!
과연 중상급 사냥꾼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흙먼지와 잡초를 나부끼며, 형형한 오크 네 마리가 부락에서 뛰쳐나와 그들에게 질주했다. 출발선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마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냥꾼이 그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는 없다.
“멈추지 마!”
사냥꾼들은 그 명백한 좌절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뜀박질을 계속했지만, 하늘도 무색하게 그들은 이내 더욱 큰 절망을 만나게 되었다.
“······허.”
저 숲 속에 있는 검은 형체. 처음에는 그저 희끄무레하니 그 정체가 불분명했었다. 그러나 그 지척까지 달려와 보니 알 수 있었다.
이 곳에 있어서는 안되는 신화속의 괴수, 웨어울프. 두 사냥꾼은 그 이족보행하는 늑대괴수를 본 그 즉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 거슬리네···’
그리고 세진은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은 두 사냥꾼과, 뒤에서 달려오는 오크 재규어 넷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오크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저서 부랴부랴 달려와봤건만, 또 인간이 끼어 있었다.
중급지대에는 사냥꾼들마저도 장비에 투자를 많이 했는지, 마법아이템으로 냄새를 제거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럴 때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벌써 일주일 새 네 번이나 마주쳤고, 이미 중급지대에 웨어울프가 떠돈다는 소문은 사냥꾼카페에 파다하게 퍼져버렸다.
“······시, 시발··· 웨어울프가 왜······.”
그래도 다행히, 오크 재규어 네 마리면 오늘의 할당량 정도는 된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냥꾼들은 무시하고, 세진은 두 다리를 크게 굴러 하늘로 도약했다. 검은 야수는 창공을 가릴 듯 높게 치솟아 오크 재규어를 향해 활강했다.
그런 그의 탄탄한 육체에는 붉은 기운, '역전의 전사'를 증거가 희끗희끗 번져오르고 있었다.
-꿰엑!
강철보다 단단한 손톱으로 먼저 한 놈의 목을 꿰뚫는다. 멱이 따인 오크 재규어는 그대로 즉사, 그러나 아직 세 놈이 더 남아있다.
그는 팔을 강하게 휘둘러 오크의 머리를 후려쳤다. 몸과 분리된 머리통이 농구공처럼 튕겨져 나갔다.
아주 찰나에 둘이 소멸되었음에도 오크들은 공포따윈 없이 오직 공격 일변도였다. 족장에게 ‘침입자를 처치하라’는 암시를 받은 오크 재규어에게는 그 이외의 삶의 목적은 없다.
-크어어어어!
오크가 고함을 내지르며 반듯한 철제망치로 야수의 팔을 가격했다.
솔직히,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야수의 몸은 강철보다 몇 곱절은 튼튼했으니.
“···! 그어어어어어!”
그러나 예상외로 지극히도 아팠다. 눈물이 필 정도로.
세진은 그 즉시 격한 분노를 담아 오크의 목을 움켜쥐었다. 놈의 초록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가자, 아직 하나 남은 오크가 동료를 도와 세진에게로 달려들었다.
-퍽!
간단하고 단단한 피격음. 세진은 오크의 몸으로, 다른 오크의 머리를 후려쳐 둘 모두를 동시에 죽였다.
‘아파 죽겠네.’
전투가 끝나고, 세진은 망치로 얻어맞은 팔을 스윽스윽 매만지며 뒤로 돌았다. 사냥꾼 두 명이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들은 이미 저 멀리 도망가고 남은 것은 초라한 흙먼지뿐이었다.
“오?”
순간의 공포에 얽매어 삶을 지레 포기하지 않는 자세. 역시, 그래도 중상급 사냥꾼은 뭔가 다르다. 세진은 감탄하며 오크 재규어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리곤 오만상을 찌푸린 채, 그 심장속으로 손톱을 집어넣었다. 살점을 뚫고, 심장을 만지는 물컹한 감각은 언제나 극히 혐오스러웠다.
[조건 완료: 오크 재규어의 마나석 20개 흡수]
- 오크의 고유한 ‘단조(鍛造)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액티브 스킬 ‘오크의 단조(鍛造)’ [숙련등급 F]
- 특정한 금속·암석·목재에 몸 안의 마나를 동기화하여 그 형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단조가 끝난 물체는 숙련등급에 따른 새로운 강도와 경도를 지니게 되고, 마나량에 따라 원하는 성질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물리효과가 아닌 마법효과는 불가능)- 근력과 마력 능력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 이 스킬은 오크폼일때에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음?’
흡수를 완료하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스킬이 생겨버렸다. 그는 고개를 잠시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 문장의 이해에 힘썼다.
*
-오크가 어떻게 제련, 제강, 단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들의 부족에 있는 대장간은 최대 화력이 고작 1200도씨에 불과할 정도로 약소하지요. 하지만 오크가 만들어내는 무기의 완성도는 도저히 그 화력은 물론 현대의 최첨단 대장간 시설로도 설명이 불가능 한, 어쩌면 이 시대의 진정한 미스터리······.
세진은 동굴의 한쪽 벽에 투사되는 홀로그램 영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장장이의 세계 2편, 오크의 불가사의’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적당한 실마리를 얻으려고 무려 500원이나 내면서 다시보기를 샀는데, 오히려 몬스터라는 미지에 대해 인간이 알고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몸 안의 마나를 동기화···? 일단 해봐야지.’
마나친화력과 마력이라는 두 능력치가 현저히 상승했음에도, 마나를 다룬다는 개념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당연했다. 마나를 다루기 위해서는 그 재능보다 더욱 앞서, 조기교육이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건 마나를 사용하긴 하지만 ‘마나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스킬’이다.
그는 오크폼으로 변해 근처에 커다란 돌멩이를 하나 쥐고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갑자기 돌멩이가 마나의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호?”
오크의 구강구조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감탄사였다. 세진은 그 마나에 에워싸인 돌멩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신기하게도 돌멩이는 그의 손길에 따라 형체가 변해갔다. 뾰족한 세모처럼 각을 잡으니 하나의 창날이 되었고, 두 손으로 비벼보니 굵은 실이 되었다.
마치 찰흙처럼 오물조물 만질때마다 그 형태가 변하는 모습에, 세진은 넋을 놓고 동심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 3분정도 그랬을까. 돌멩이에 스며든 푸른 마나가 사라지고, 돌멩이는 마지막에 이루고 있던 형체인 별모양으로 굳어졌다.
[단조가 완료되었습니다.]
[강도 단계: E]
[완제품의 완성도가 형편없어 숙련등급이 F-로 감소합니다.]
“···?”
그는 순간 어이가 없어 벙쪘다. 별이 뭐가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