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25화 (25/174)

07. 오크의 대장간 (4)

공모전에 단검을 제출한 이후, 근 10일 동안 세진은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했다.

오전에는 동굴에서 연금술과 단조기술을 연마하고, 오후는 시내로 나가 휴식을 취한다. 휴식이라고 해봤자 강원도의 시내를 서성이는 것 뿐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냥꾼과 기사들이 드문 밤에는 중하급~중급 지대의 몬스터를 사냥했다. 대부분은 흑색늑대 폼으로 몬스터를 사냥했지만, 일부러 오크 전사폼으로 사냥하기도 했다. 진화를 위해서 였다. 아닌 게 아니라, 단조를 하는 도중에 특이한 제약에 부닥쳤기 때문이었다.

[‘오크 전사’로는 D등급 강도와 D등급 숙련등급이 한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냥을 해도 오크 전사는 진화를 하지 않았다.

“후···”

그리고 지금은 오전 11시. 세진은 포션을 3개까지 제조하고서 절구와 절구통을 내려놓았다. 약재를 얼마나 빻아 댔는지, 고블린의 고사리같은 손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포션 제조는 꽤 귀찮고 힘들었다. 아무리 고블린의 손재주가 있다 한들 아직 숙련등급이 낮아, 약재를 다지고 극도로 세심하게 배합을 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꽤 많은 정신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속성저항’포션의 제조에 실패하였습니다.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어려운 포션을 만들 때면 이렇듯 실패도 잦았다. 과연 ‘속성저항’포션은 그 값비싼 가격만큼 만들기 쉽지가 않았다. 오늘만 이게 네 번째 시도인데, 아직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제조성공확률을 증폭시켜주고 마나석의 대용도 되는 검치가루가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하······.”

다시 한번의 실패에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약재의 향에 취한 머리에 어지럼증이 뒤늦게 다가왔다.

휴식의 일환으로, 그는 흑색늑대폼으로 인간이 되어 TV를 켰다. 역시 휴식이나 취미는 인간형으로 해야 그 맛이 있다. 물론 이 빌어먹을 동굴에선 뭘 하던 간에 그 재미지수가 절반, 아니 그 이하로 감소되지만.

-오늘로부터 10일 전, 강원도의 임대주택에서 한 남성이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목뼈가 뒤틀려 즉사한 남성의 목에는 정체불명의 짐승 손톱자국이 남아있었는데요. 수사 당국은 이 증거를 토대로 조사를 진행하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김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뉴스와 관련된 프로그램이었다. 발생한 뉴스를 두고, 패널과 MC가 서로 대화를 나눔으로써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시사교양프로. 세진은 그 프로에 귀를 쫑긋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의 행각이었으니.

-예. 바로 그 사체의 정체가 ‘뱀파이어’였다는 사실이지요. 이는 사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목격자의 증언이 이상한 점과, 피해자의 냉장고에 수혈팩이 다량으로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수사당국이 발 빠른 부검을 해 밝혀낸 결과입니다. 헌데 이 사건을 두고 지금 시민들은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인데요. 뱀파이어도 사람의 한 종족이므로 범죄자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과, 뱀파이어는 그저 ‘척살대상’일 뿐이기에 잡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또한 ‘뱀파이어인 것을 알고 죽였다’ 와 ‘모르고 죽였는데 뱀파이어였다’의 차이가······

세진은 저도 모르게 조소를 흘렸다. 뱀파이어에게 그렇게 당해 놓고 또 빌어먹을 천부권을 존중하자는 인간들이 있었다. 아니, 이쯤 되니 그는 의심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뱀파이어 쪽의 프락치가 사회속에 숨어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근

헌데 별안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심장이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놈들을 추적해서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지독한 살의가 뇌리를 강타했다.

본래 세진이 품고있던 뱀파이어를 향한 응어리진 분노와 늑대야수의 본능이 합쳐진, 악독하고 근원적인 증오였다.

“···!”

그러다 문득, 세진은 자신의 팔이 야수로 변해 동굴 바닥을 흉악하게 파헤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건······ 이상했다. 그는 재빨리 원래의 ‘인간 김세진’폼을 취하고서, TV의 채널도 퍼뜩 돌렸다.

“후.”

그렇게 심장은 조금 진정되었으나, 뱀파이어를 향한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그 분노를 삭이기 위해 애써 TV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TV에서는 그런 그의 주의를 끌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프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 제 4회 대장장이 공모대회에는 총 33개의 공방, 1308명의 대장장이가 참가하였습니다.

공모대회 심사위원들의 심사과정은 모두 TV프로그램으로 방송된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아예 일천명의 청중심사단까지 모여 ‘대중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우승자를 결정한다고.

-예선을 통과한 대장장이는 총 208명으로, 고작 100명이 통과했던 예전보다 경쟁이 더욱 치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새벽기사단의 본관에는 1차예선을 통과한 총 208개의 물품 중 20개의 물품이 놓여있습니다. 이제 곧 이 물건을 심사하러 기사님들께서 도착할 예정인데요······ 아, 저기 오시는군요.

세진은 저 화면속에 자신의 무기가 있나 유심히 살펴보다가, 무기들을 심사하러 들어온 기사의 면면을 보고는 깜짝 놀라 가벼운 탄성을 내뱉었다.

-일단 첫번째로, 아주 모시기 힘든 분을 모셨습니다. 새벽기사단의 기사 유세정씨, 안녕하세요!

그때 세진이 트롤로부터 구해주었던 여인, 유세정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바로 전 주에 중하급 기사로 승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걸로 최연소 중하급 기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그건 모르겠구요. 이왕 1차심사에 참여하기로 했으니, 심사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

공모전의 최대 후원사인 새벽기사단은 각 라운드마다 하나의 무기를 선점할 특권을 부여받았다.

물론 1차 예선이니만큼 아직 ‘하품’ 딱지가 붙은 무기도 드물 터. 그러나 될성 싶은 떡잎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유세정은 일부러 자원하여 이 심사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녀에겐 아직 ‘주력’이라 할 수 있을 만한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평범한 중하급 기사라면 만져 보기도 힘든 ‘상품’의 검이 있긴 하지만, 고작 이것으로는 기업 새벽의 회장인 그녀의 할아버지는 물론, 그녀 자신도 만족하지 못했다.

“하핫, 네. 그럼 세정씨가 잘 판단해서, 이곳에 있는 스무 개의 무기에 점수를 매겨주세요. 세정씨의 점수와 다른 심사위원분들의 점수가 더해져서 합격자가 가려지니, 신중하게 부탁드릴게요!”

기사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등급은 보통 [최하-하-중-상-최상] 정도로 나뉘고, ‘규격 외’라 하여 [명품]과 [보물]등급이 그 정점에 위치한다.

보통 견습에서 하급기사는 하품을 사용하고, 중하급에서 중급까지는 중품. 그리고 중상급 이상부터는 최소 상품이상의 무기가 필요하다. (물론 기사단의 수준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다.)

“네.”

세정은 터벅터벅 걸으며 일렬로 쭈욱 늘어서 있는 무기들을 심사했다. 그녀의 심사는 무척 빠르고 까다로웠다. 휙 보는가 싶더니 2점을 매기고, 또 휙 보는가 싶더니 1점을 매기고의 반복. 참고로 만점은 10점이었다.

“······저,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시면······”

아무 말 없이 대장장이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있는 세정에게, 진행자가 안절부절하며 부탁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방송은 처음이라서.”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신이 방금 1점을 매긴 물건을 가리켰다.

“이 검은 너무 물렁해서 도저히 못 쓰겠어요. 스켈레톤의 뼈도 못 벨 정도로, 최하품 중에 최하품이네요. 그래서 1점을 줬습니다. 어떻게 예선을 뚫었는지도 의심되는 물건이에요.”

“······아···.”

물론 칭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유세정의 까탈스러운 성격은 새벽기사단에서도 유명했으니. 그러나 이정도의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낼 줄은······

"흠. 네, 계속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그러나 어찌보면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잘 먹히는 캐릭터가 아닌가. 귀여운 얼굴로 악독한 심사평을 내뱉는 냉정한 여고생 심사위원. 진행자는 다시 얼굴에 화색이 되어서는 그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 도끼는 제가 한대 내려치면 부서지게 생겼어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구요. 강철로 만들어졌는데, 아무래도 재료에 문제가 있었나봐요. 그게 아니면······ 미안한 말이지만 만드신 분의 실력이 형편 없네요.”

“하, 하하······”

그 이후로도 독설의 연속이었다. 유세정은 결코 4점 이상의 점수를 주지 않았다. 1차예선의 합격 기준은 적어도 ‘최하품이상’이었으나,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르는 지 모든 장비에 아주 박한 점수를 매겼다.

그렇게 무려 17개의 무기 심사가 순식간에 끝나고, 18번째 무기.

끊김없이 움직이던 유세정의 발이 드디어 우뚝 멈춰섰다. 그 이상행동에 카메라가 부랴부랴 다가와 세정의 얼굴과 무기를 번갈아 비췄다.

“이건 좀 다른가요?”

“···네. 다르네요. 좀, 만져봐도 될까요?”

“그럼요.”

유세정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무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칼날의 날카로움이 서늘하게 번뜩이는, 잘 벼려진 단검이었다.

“···심사평은?”

진행자가 잔뜩 기대하며 물었다. 대장장이에 문외한인 자신이 보기에도, 저것 만큼은 꽤 좋은 물건임이 분명했기에.

“좋아요. 잘 벼려져서 날이 아주 예리해요. 검신에 새겨진 문양도 섬세하고··· 그리고 그립감도 안정적이고 가벼워요. 무엇보다 신기할 정도로 마나가 아주 잘 스며들어요. 이건 지금 시중에 팔아도, ‘하품’, 그 중에서도 ‘상급 하품’ 판정은 넉넉히 받을 것 같은 데요. 하필 단검이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요. 여기 있는 물건 중에는 가장 좋네요.”

세정은 그 단검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진행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이 단검을 만드신 대장장이님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그 칼자루 아래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세정이 검을 뒤집어 칼자루의 아래를 확인했다. 딱 세 개의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ORK? 올크?”

“이 분 께서는 자신을 오크라고 불러 달라고 하셨다네요.”

“······철자가 틀린 것 같은데, O, R, C 아닌가요?”

“하하.. 그건 저도 잘··· 일단 점수를 매겨주세요.”

그녀는 8점의 점수를 매겼다.

“아, 2점은 단검이라 아쉬워서 감점인건가요?”

“네. 그렇죠.”

“하하, 근데 감점을 하시면 대장장이님께서 조금 싫어하시지 않을까요?“

진행자는 그저 장난스레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세정은 별안간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더니,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점수를 바꿨다.

“10점. 10점이에요.”

“······.”

그 귀여운 모습에 입술이 저절로 씰룩였지만, 이 소녀의 태도는 아주 진지했기에 진행자는 애써 웃음을 삼켰다.

“방금 8점은 헛 나온 말이니까 편집해주세요.”

*

“하하.”

그러나 유세정은 편집되지 않았고, 세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까칠하더니, 귀여운 면이 있네.’

다른 무기에는 혹평을 쏟아내더니, 자신의 무기만 극찬해주니 더욱 귀엽게 느껴졌다.

-그럼. 다음에는 개벽기사단의 중급기사로, 요즘 연예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혁준’씨와 함께 찾아 뵙겠습니다.

어느새 공모전 관련 프로그램은 끝이 났고, 세진은 시간을 슬쩍 확인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오후 1시. 이제 시내로 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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