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27화 (27/174)

08. 용병 라이칸 (2)

강원도의 변방에 위치한 ‘용병의 선술집’.

언젠가 이 선술집은 용병들이 농을 지껄이는 소리와 독주의 아릿한 향내, 진한 땀냄새와 싸움박질로 가득 차 있었다. 오고 가는 용병들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했으며, 임무가 없을 때면 주인장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정겨운 욕을 들어먹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것들은 머나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혼자서만 시간이 멈춰버린 이 '용병의 선술집'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다. 허름한 외관과 다 부서져가는 가구, 팔릴 일이 없어 강제로 숙성되어가는 독주, 그리고 이제는 아무런 임무도 메워져 있지 않은 코르크 판까지.

죽어버린 용병, 마찬가지로 잊혀져버린 선술집.

하지만, 비록 기억속에서는 잊혀졌을 지언정, 이곳은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

김유손. 용병이었던 중년의 사내.

그는 오늘도 선술집의 식기를 닦고, 가구를 정돈하며, 언젠가는 임무가 메워질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코르크 판을 매만졌다.

-끼익

목문이 기이한 경첩소리를 내며 열렸다. 반쯤 열렸던 문은 곧 삐걱소리를 내며 힘없이 부서져버린다. 문을 열려던 남성은 부서진 목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서 선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왔느냐, 앉거라.”

가구를 정리하던 남자는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카운터로 돌아갔다.

“네가 오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준비해 두었던 말이 있었는데, 막상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아버지에게 이 선술집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아들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아들은 빙 둘러서,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이번에 고려기사단의 중급기사로 승급했습니다. 연봉도 두배 가까이 오르더군요. 그래서 강원도에 따로 집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여유도 많이 생겼는데, 계속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건 좀 그래서요.”

“그러냐? 잘됐구나. 저 세상에서 네 엄마가 아주 좋아하겠어.”

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아들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이를 꽉 깨물었다.

이제는 떠올릴 기억도 희미한, 오래된 과거의 일이다.

아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내. 두 남자에게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여인은 뱀파이어에 의해 생의 마지막까지 타락하고 더럽혀진 채로 죽었다. 아버지가 기사가 아닌 용병이 된 날은 바로 그때이며, 아들의 꿈이 바뀐 것도 그때였다.

아버지가 기사가 아닌 용병이 되었음에도, 아들은 언제나 그의 뒷모습을 자랑스러워 했었다. 어린 아이를 집에 혼자 남겨두고 늦게 들어오셔도, 혹은 아예 들어오지 않으셔도.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했었다.

“······아버지. 이제 편안히, 저와 함께 삽시다. 용병은, 그들은 더이상 선술집에 오지 않아요.”

아들은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토해냈다.

아버지의 피나는 노력은 그 누구보다 아들인 자신이 알고 있다. 그래서 빌어먹을 매스컴들이 아버지의 모든 노력을 범죄를 둔갑시키려 할 때, 그 누구보다 분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그들과의 전쟁은, 이제는 너무 먼 옛적의 이야기다.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단호한 모습에 아들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저도 뱀파이어에 관한 뉴스를 봤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그게 아니다, 아들아.”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 키 작은 아들을 대할 때처럼 그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꿈을 꾸었다. 나에게 꿈이 어떤 의미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

“······예?”

아들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에게는 으레 뛰어났던 기사들이 그렇듯 ‘특성’이라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마나와도, 마법과도 구별되는 기이한 힘.

“흡혈귀를 보았다. 그들의 구체적인 목적은 모르겠지만, 어느새 과거보다 더욱 강성해져 날갯짓을 하려하더구나.”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그런 일은 기사단의 몫입니다. 용병은······.”

“아니다. 기사단은 여론을 두려워 해. 그리고 흡혈귀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단다.”

그 말에 아들이 무어라 반박을 하려 할 때, 별안간 아버지가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쉿─ 조용히 하라 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따르르르릉-

근 몇 년간 울릴 일이 없었던 선술집의 전화에서 낯선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아들도 카운터로 뛰어들어가, 아버지의 옆에 딱 붙어 섰다.

“용병의 선술집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낮게 가라앉은, 무거운 목소리였다.

-전단지를 보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예. 어려운 임무입니다. 그렇기에······.”

-놈들의 위치만 알려주십시오. 그 이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성공여부를······.”

-시체는 잘 보이는 곳에 버리겠습니다. 그러면 언론이 알아서 공개하겠죠.

김유손은 꿈과 똑같은 대화내용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는 자기가 용병이 아니라고 말하겠지.

“예.”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용병명으로 사용하실 이름과 본인확인을 위한 암호만 저에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알아서 용병등록을 해 드리겠습니다.”

-······

수화기 너머의 남성이 살짝 당황한 듯 말이 잠시 끊겼다. 그러나 곧 묵직한 음성으로 그 ‘이름’과 ‘암호’가 흘러나왔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일주일 뒤에, 그때 그 전단지가 붙어있던 위치로 가보십시오. 정보는 거기에 두겠습니다.”

-···예? 음··· 알겠습니다.

김유손의 말에 남성은 살짝 놀란 투였지만, 이내 별다른 질문없이 전화를 끊었다.

“···누굽니까?”

아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도 모른다.”

간단히 대답한 아버지는 아주 오랜만에 서랍속에 놓여있던 ‘용병 등록서’를 꺼냈다.

아주 초창기에는, 한 사람을 용병으로 등록하려면 그 이름과 나이, 신체조건까지 모두 필요할 정도로 엄격한 신분증명을 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다 망해가는 용병이기에, 등록에 관한 모든 건 선술집 주인장의 재량. 김백송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일필휘지로 휘갈겼고, 그 어마어마한 내용에 아들이 입을 떡 벌렸다.

“자, 잠시만요. 아버지. A등급이라니요! 최고등급이잖습니까! 무슨 전화 한통 받았다고···.”

“어차피 나도 소싯적에 A등급이었지 않느냐. 그리고 요새는 아무도 용병의 등급에 신경쓰지 않아. 그저 하등 쓸모없는 알파벳일 뿐이지.”

“아, 아니, 백보 양보해서 등급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름은 대체 뭡니까? 이런 걸 용병명으로 쓰면 제발 나 좀 죽여주게, 이런거 아닙니까?”

아들의 걱정에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오히려 아버지는 이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뱀파이어를 찢어 죽이는, 아니 세상 모든 종족을 적대시하는 외롭고 광포한 신화속의 야수.

“’라이칸’이 뭐가 어때서 말이냐? 멋지고 좋기만 하구만.”

“아버지!”

* * *

김세진은 시내에서 평생 처음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구매했다. 과연 또 하나의 신비한 세상이었다. 액정화면을 터치하며 사용할 수도 있었고, 그 화면을 허공으로 투사하여 더욱 크게 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화면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다.

“······와우.”

그리고 지금, 세진은 강원도의 근처 카페에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탐험하고있는 중이다.

그는 그 중에서도 특히 네이버(Neighbor)뉴스의 연예TV란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유세정의 이야기가 거의 반절을 차지하고있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방영한 ‘대장장이 공모대회 1차심사’가 꽤 많은 화제를 일으킨 듯 했다.

커피를 홀짝이며, 세진은 그녀와 관련된 기사의 내용과 댓글을 천천히 읽어봤다.

─처음에는 뭔가 비호감이었는데 마지막에 엄청 귀여웠음ㅋㅋㅋㅋ [추천 1093 반대 53]

ㄴ나는 처음에도 좋았는데. 솔직히 비위 맞춰준답시고 좋아요 좋아요 하면 오히려 더 꼴배기 싫음ㄴ뭐래; 마지막에 유세정이 한 것도 대장장이 비위맞춰준건데. 눈깔 사시냐? OOO이네 ㄴ그 대장장이는 그럴 만 했으니까 그렇지 빡대갈아. 딱 봐도 다른 무기랑 격이 달랐구만. 클로즈업된거 못봤냐? 아무것도 모르면 좀 닥쳐 제발.

ㄴ지랄마 아무리 잘 쳐도 하품 중급이었구만. 딱 봐도 병신 최하급~하급 사냥꾼이 어그로 존나끄네. 무기에 대해 뭐 알긴 하냐?

ㄴ응^^ 이 단검 오늘 하품 상급 판정받음^^ 내가 직접 가서 봄^^ 꼬우면 만나러 오든가 OOO련아. 쪽지 보낼 테니까 답장해라.

“···뭐야?”

이상한 욕설들의 향연에 김세진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굳이 이것들을 오래 보고 있기가 싫어 스크롤을 재빨리 내리다가, 그는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이것도 대장장이 공모대회와 관련된 기사였는데,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문가의 눈, 공모대회 1차심사 통과물품 평가」

36 세의 젊은 나이로 ‘장인’의 등위에 등극한 화제의 대장장이, ‘소윤한’ 장인께서 이번 공모대회의 1차예선을 통과한 40개의 물건 중 10개의 물건에 통찰력이 있는 평가를 내려주셨습니다.

1. 김태백 명인의 제자, 김수한이 출품한 ‘강철제 장검’.

- 좋은 물건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금속의 제련과 제강이 더없이 완벽했고, 대장장이의 단조솜씨와 가장 중요한 ‘마나 담금질’또한 1차심사 기준으로는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김수한 도제가 ‘김태백 명인’의 제자라는 점이겠지요. 그 어마어마한 기대감을 100% 충족한 물건은 아닙니다. 물론 아직 2차, 최종 심사도 남아있는 만큼, 여태 만들어 놓은 무기 중 가장 하품을 제출했을 수도 있으니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되는 건 확실합니다.

장인의 평가: B (하품 중급)

···

···

···

9. 정체불명의 대장장이, ORK가 출품한 ‘철제 단검’

-솔직히 말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이 ORK라는 대장장이의 정보를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단 이 오크 대장장이는 풀 네임 부터가 남다르더군요. ‘Orc’s forge K’, 직역하자면 오크의 대장간 K입니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이 대장장이가 만든 물건은 1차심사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1차 심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마디로 모든 면이 완벽했습니다. 다만 금속의 질이 조금 떨어지는 게 조금 아쉬었지만, 그것을 간단히 만회할 정도로 ‘마나 담금질’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모든 기사들이 이 단검을 두고서, ‘마나가 아주 잘 스민다’고 극찬을 했을 정도이지요.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이 물건을 1차심사의 1등으로 삼고 싶네요. 1차심사에서부터 이런 좋은 물건이 나오다니. 대장장이의 미래도, 공모대회의 미래도 참 밝은 것 같습니다.

장인의 평가: A (하품 상급 ~ 중품 하급)

“···큼.”

세진은 괜히 낯부끄러워 헛기침을 했다.

띠링- 그때 별안간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굉장히 사무적이고 딱딱한 문장이 담겨있었다.

‘유세정입니다. 언제 만날까요.’

이 핸드폰은 동굴에 있는 집전화와 연동해 두었기에, 유세정이 집전화로 보낸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방금 헤어진 지 고작 2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세진은 일단 답장을 하지 않고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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