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29화 (29/174)

09. 일상의 변화 (1)

-현재 파악된 바로는, 총 2000여명의 뱀파이어들이 축생의 피를 섭취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는 그들의 신분을 보호함으로써 원활한 사회생활을 돕고 있고요. 게다가 현재 국가에 보호요청을 한 뱀파이어의 숫자는 더더욱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별경찰국이 이 연쇄 살해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한 건, 아마 이런 낙관적인 배경이 뒤에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살해당한 뱀파이어 3명은 모두 아직 인간의 피를 섭취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들의 집 안에는 인간의 유해 또한 발견되었고요. 그리고 이번 구밀교회의 몬스터 강습사건 또한 그들의 소행이었잖습니까.

-물론 그 사건들 또한 따로 엄정한 수사중이라고 수사국은 명백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사건입니다. 게다가 뱀파이어들이 그런 추악한 짓을 벌였다 하더라도, 그 처벌이 무조건 죽음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뱀파이어를 위한 특별교화시설까지 지어진 마당에······

몬스터 휴게소의 대합실에 설치 되어있는 TV에서는 연신 김세진을 불편하게 하는 대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축생의 피를 섭취하는 뱀파이어, 참 듣기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천성이 그르다. 정체성을 잃는 것을 각오하고, 인간과 교배까지 하면서 본성을 억눌러 이 사회에 녹아든 수인과는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괜히 놈들이 ‘박쥐’겠는가. 놈들은 배신을 밥 먹듯이······

“김세진 씨. 세진 씨!”

TV에 집중하던 세진은 어느새 다가온 유세정의 부름에 퍼뜩 몸을 일으켰다.

“뭐하시는 거예요? 불러도 말도 없으시고..”

“아. 죄송, 죄송합니다. 딴 생각 좀 하느라. 어서 갑시다. 어느 지대라고 그랬죠?”

“중하급 지대요.”

세정이 즉각 대답했다. 세진은 살짝 고민에 잠겼다. 지금은 자신은 완전한 ‘인간 김세진’, 모든 능력치가 하향적용인 상태다. 대충 기사로 급간을 따져보자면······ 아무리 잘 쳐줘도 하급의 머리정도.

“···네. 좋네요.”

중하급기사와 하급기사의 조합은 중하급 지대를 사냥하기에 얼추 알맞다.

“아, 근데 세진 씨는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그때는 하급이셨던 것 같은데.”

“두 단계 상승해서 중급입니다.”

그의 말에 세정이 오- 입을 벌리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고작 4개월. 4개월 만에 두 단계나 승급하기는 기사든 사냥꾼이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역시 성장세가 아주 빠르시네요. 근데 허리춤에 그건 무기예요?”

“예? 아, 네. 저도 근접무기를 씁니다. 아시다시피 특성이 있어서. 근데 뭐.. 기사님에 비할바는 아니니까 그냥 ‘보조라고 만 생각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그때는 그냥 요행이었어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마나를 못 다루거든요. 무식하게 힘만 셉니다.”

세진이 짐짓 너스레를 떨자, 세정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몬스터 필드에는 언제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있다. 돌발상황도 꽤 많이 일어나는 편이어서, 아무리 기사라 하더라도 동급지대에서의 솔로 플레이는 꺼리기 마련이다. 여기서 솔로 플레이라 함은, [기사 혼자]는 물론 [한 명의 기사와 한 명의 사냥꾼]으로 이루어진 페어도 포함된다.

“오늘 실적 많이 쌓아 드릴게요. 두 시간 동안, 넉넉히 다섯마리만 잡고 가죠.”

그러나 유세정의 면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아마 그때의 패퇴를 만회하기 위해, 혹은 그때와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열성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몬스터를 찾아 중하급 지대를 탐색하길 20분, 마침내 세진의 코에 흐릿한 냄새가 흘러왔다.

[북쪽 방면 300m, 스키머]

로브를 뒤집어 쓴 해골, 스키머. 그 로브가 절묘한 보호색을 띄어 모습을 숨기는데 능해, 만만찮은 기습을 행하는 간교한 몬스터다.

놈이 들고 있는 ‘염의 낫’이라는 마나로 이루어진 낫을 보고서, 스키머를 처음 목격하는 사람은 종종 ‘사신’을 떠올려 굉장히 강력한 몬스터인 줄 착각하지만, 실상은 처음의 기습만 조심하면 별 거 아닌 몬스터다.

허나 그 처음을 눈치채기 대단히 힘들어 중하급에서는 그래도 까다로운 몬스터 축에 속한다. 특히 유세정같이 솔로 플레이를 즐겨 하는 기사들에게는. 실제로 그녀는 지금도 앞에 스키머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터벅터벅 놈의 사정거리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잠시 멈춰봐요.”

세진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

세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세진은 아무것도 없는 북쪽 방면을 가리킬 뿐이었다.

“..뭐에요?”

“스키머에요.”

“···예?”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스키머는 인간이 감지하기 무척 힘든 몬스터다. 인간이라면 적어도 중상급~상급 기사쯤 되어야 그 위화감을 가까스로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인데······.

“제가 감이 좀 유별나게 좋거든요. 근처에 있는 몬스터는 귀신같이 탐지해냅니다.”

세정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세진은 먼저 돌멩이를 하나 들어 스키머가 숨어있는 쪽으로 냅다 내던졌다. 말보다 행동, 느낌보다는 현상.

퍽-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돌멩이는 땅바닥이 아닌 허공에 부닥쳤다. 별안간 돌멩이에 뒤통수를 가격당한 스키머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맞죠? 가세요 이제. 돌격.”

김세진이 방긋 웃었다.

세정은 스키머를 탐지해낸 그의 능력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재빨리 검을 뽑아 들고서 놈에게 쇄도했다. 어느새 그 검에는 마나의 푸른 검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갑작스런 적의 출몰에 스키머는 낫을 들어올려 대항하려 했지만, 사선으로 그어지는 검격은 여지따윈 없이 낫과 스키머의 몸통을 이등분으로 절삭해냈다. 그녀의 성격을 닮아, 군더더기 없는 아주 깔끔한 검법이었다.

치명상을 입은 스키머는 이내 재가 되어 스러졌고, 그 잿더미 위에는 밝게 빛나는 마나석이 하나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

“···”

그렇게 세정은 어렵지 않게 스키머를 처치했음에도, 뭔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감도 좋고, 시력도 좋습니다.”

세정의 시선을 받은 세진이 변명했으나, 그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스키머는 감과 시력만으로는 분별이 가능한 몬스터가 아닐 터인데······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는 데 믿을 수 밖에.

“어서 다음으로 가시죠.”

세진은 여전히 의아해하고 있는 그녀의 등을 떠밀며 다음 사냥을 종용했다.

*

사냥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그 흔한 돌발상황은 하나도 없었다. 세진이 몬스터를 감지해내면, 세정이 달려가서 베어낸다. 만약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몬스터라면, 세정이 앞을 담당하고 세진은 그녀의 뒤를 엄호한다. 인간 김세진의 무력은 중하급 몬스터를 이길 순 없어도 시간을 끌 수 있을 정도는 되었기에, 세정에게는 큰 도움이었다.

그렇게해서 잡은 몬스터는 고작 두 시간만에 15개체. 세진이 몬스터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냈기에 가능한, 세정의 ‘커리어 하이’였다.

“고작 두 시간만에 주머니가 꽉 찼어요. 이럴 줄은 몰랐는데······. 저희 꽤 좋은 페어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정이 몬스터의 사체로 꽉 찬 확장주머니를 무겁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우리 둘,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세진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농이 섞인 말에, 세정은 미간을 살짝 좁힌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심이에요 저는. 보통 기사는 한 명 이상의 사냥꾼이나 동급의 기사랑 페어를 이루거든요? 근데 기사랑 페어를 이루면 실적이 분산돼서 싫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도 현오 오빠랑 같이 페어를 이뤘던거고요.”

“현오··· 아, 그때 그 총알탄 사나이?”

“네. 별명을 알고 계시네요? 저희 집 집사신데. 아니, 말 돌리지 마시고. 저 어때요?”

누군가 이 부분만 잘라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을 정도로, 유세정은 세진에게 명백한 구애를 보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라면 얼쑤 좋다며 받아들였을 제안일 터. 그럼에도 세진이 뜸을 들이며 고민하자,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저랑 같이 해요. 같은 기사단 소속 아니더라도 페어는 가능하니까. 수익분배는 9:1, 아니, 10:0까지 해줄 수 있어요. 물론 세진씨가 10이구요.”

이것은 과연, 금수저의 위엄이었다. 50억이라는 빚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요즈음 돈에 욕심이 많아져서 그런가, 돈 얘기에는 자꾸 관심이 동했다.

“우리, 높은 곳까지 함께 성장해봐요.”

유세정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를 놓치기 싫었다.

처음에는 단지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만 만나려 하였으나, 잠시동안의 사냥을 통해 그의 값비싼 진가를 알게 되었다.

보통 유능한 사냥꾼은 드물지만, 그처럼 ‘탐지’기능이 있는 사냥꾼은 더욱 드물다. 아니, 스키머의 기척까지 뚜렷하게 감지해 낼 정도라면 희귀하다고 말해도 될 지경이다. (현 수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세대 수인들도 스키머를 탐지하는 것은 힘들어한다. 짐승으로서의 감각이 순수 수인인 1세대에 비해 현저히 감소되었기에.) 거기에 더해 개인적 무력도 결코 약하지 않다. 사냥꾼으로 따지자면 중상급이라 말할 수 있을 터. 아마 그가 고작 중급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필요경험일수’때문이겠지.

“잘 아시겠지만, 저는 아~~주 튼튼하고 단단하고 질긴 황금 동앗줄이에요.”

세정은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 보다 ‘필요한 것’을 우선하는 교육을 받아왔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뭐해요? 내 손, 잡아줘요.”

세정이 그에게 내민 손을 파닥이며 악수를 재촉했다. 세진은 살짝 고민하다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하루 두 시간 이상은 안돼요. 그리고, 마나석은 팔지 말고 모두 저한테 주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쉽네요.”

가벼운 말과 함께, 진심이 담긴 환한 미소가 세진을 반겼다. 그는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약속해요. 도장도 찍고······.”

그녀는 엄지와 소지로 도장까지 찍으려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또 다시 알림창이 뾰로롱 떠올랐다.

[조건 완료: 페어를 이루다]

▶패시브 스킬 '들을만한 목소리'를 습득하셨습니다. [숙련등급 F]

-화자의 목소리가 흥정, 설득, 감정을 비롯한 대인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이 스킬은 인간형일때에만 적용됩니다.

"아.."

세진은 멍하니 그 알림창을 바라보았다. 스킬은 오직 몬스터폼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큰 착각인 듯 했다.

*

“하아······.”

김세진은 안식처.. 였던 동굴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한숨부터 나왔다. 음습하고 어둡고 딱딱하고······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왔다.

‘···포션대금, 절반은 나중에 갚을테니 돌려달라고 말할까.’

문득 포션 대금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집이 있어야 뭘 하든 말든··· 이딴 동굴은 이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일단 지금은 밤이 늦었으니 나중에 묻도록 하자.

그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키고 동굴 벽면에 투사했다.

“······또 왜 유세정이야?”

이제는 거의 필수 일과가 된 인터넷을 서핑을 하고 있는데,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유세정이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그녀의 이름을 클릭했다.

가장 먼저 뜨는 건, ‘기사의 조건’이라는 TV프로에 관련된 기사였다.

“아하···.”

그때 찍었던 게 또 화제가 됐구나, 김세진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가 사냥하는 모습을 다룬 예능은 아마 그때 그것이 최초였을테고, 유세정은 꽤 잘 먹힐 캐릭터다. 최소 중박은 자명했을 아이디어였으니, PD의 역량만 제대로라면 대박까지 터트릴 수 있었겠지.

사이트의 상위랭크를 장식한 관련기사들은 모두 간단했다. 사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도중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그리고 유세정은 어떠한지. 마지막은 조금 핀트가 엇나가 있었지만, 그래도 거의 절반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인기도 가장 많았다.

거기까지는 흥미진진하고 좋았다.

그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서 실시간 검색어 7위를 보기 전 까지는.

“···뭔데 이거.”

7위에는 ‘김세진’이라는 세 글자가 떡 하니 적혀 있었다.

동명이인이겠지, 생각하는 와중에 검색어 순위가 스르륵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검색어 10위에 새로운 단어가 생겨났다.

‘사냥꾼 김세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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