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동화 (4)
* 다음화부터는 오전 12시에 연재됩니다 (자세한 건 후기 참고해주세요!)
* * *
모든 물건의 소개와 심사위원들의 심사마저 끝나고, 결과발표만이 남은 지금.
김태산은 어쩐지 초탈한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조금 추잡해 보일지라도, 언론플레이 또한 그 일환이었다. 혹시라도 물건의 질이 오크에 비해 조금 떨어져도, 청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승리할 수 있도록.
그러나 성장하는 무기라니. 평생 들어본 적 없는, 혁명적인 무기다. 이쯤 되면 오히려 이기는 게 이상하다. 만약 오히려 이기면 여태 쌓아온 여론에게 역풍을 맞을 정도다.
이 패배는 이제 여유롭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오크가, 자신보다 두 배는 뛰어났다.
알량한 자존심은 두 배 이상은 허용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김태산은 고개를 주억이며 패배를 인정했다.
“자. 결과는!”
진행자가 힘찬 목소리로 무대의 중앙에 있는 대형화면을 가리켰다.
오크가 저가 만든 무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순간부터, 긴장은 처음과 같지 않았다. 어쩌면 뻔한 결과.
그렇기에 결과가 나온 순간, 이 장소에 모인 모두가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승자는, 오크 대장장이님의 ‘성장하는 브로드 소드’입니다!”
폭죽이 터지고, 바닥에서는 별안간 화염이 솟아올랐다. 요란한 무대장치의 향연, 그러나 정작 무대 위에는 상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가 없어 살짝 휑했다.
“······자. 그럼··· 네. 소감을 듣기 위하여 오크님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전화.. 주실 수 있나요?”
오크가 사전에 부탁한 사항이었기에 번거로워도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오크 대장장이는 빠르게 연락을 해왔다.
“대장장이님.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하하··· 네. 감사드립니다. 아주 기쁘네요.
담담하지만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압도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결과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음.. 압도적이지는 않았어요. 저와 경쟁했던 다른 모든 무기 모두, 대장장이분들의 많은 노력이 엿보이는 무기였으니까요. 비록 승패는 갈리게 되었지만, 그 노력의 값어치는 모두 똑같았다고 생각합니다.
깔끔하고도 겸손한 대답이었다. 진행자가 만족하려는 찰나, 갑자기 유조형이 손을 들어올렸다.
“아, 심사위원분이 질문이 있다고 하시는데요. 혹시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질문을 허락받은 유조형은 먼저 헛기침을 한번 했다.
“혹시. 만약 자네가 말한 성질. ‘함께 성장한다’. 뭐 이런 것이 사실 없다고 판명 날 경우에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네는 지금 계속 익명으로 우리에게 불신을 주고 있는데. 단지 상금을 타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수도 있습니다.
적의가 담겨있는 공격적 질문이었으나, 오크 대장장이는 침착하게 답변했다.
-그래서 저는 이 무기의 주인 될 사람이 그러한 성질이 있다고 확실히 판명해줄 때까지. 상금은 물론 물품대금까지도 받지 않겠습니다.
단호하고 확실한 잘라내기였다. 유조형은 탐탁치는 않았지만, 뭐라 반박할 수는 없었기에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럼, 저도 대장장이님께 질문을 하나해도 될까요?”
이번에는 김유린이었다.
-네. 물론이죠.
“그. 앞으로도 무기를 제작하고 판매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으시다면 그 유통은 어떻게 하실건지······.”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기사단의 요직에 앉은 그녀로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유통은··· 한번 생각해 봐야겠지요. 저는 완성품을 만들고 주인을 찾는 것 보다, 주인이 될 사람을 위해 제작을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거든요.
순간 김유린이 놀란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 곳에 모인 대부분의 기사들도 그녀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
보통 잘나간다 하는 장인 혹은 명인 대장장이들은 물건은 만들고, 그 주인 될 사람의 '후보'를 받는다. 심지어 몇몇 기사들은 무기를 얻기 위해 상납까지 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
이는 자존심때문이기도 하고, 주인에 맞춰 물건을 만들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반년동안 공들인 무기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박살 내버리는게 대장장이라는 족속인데, 어떤 ‘기준’에 맞춰 무기를 만드는 건···.
“조, 좋군요. 혹시 저랑 친해질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건 김유린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중과 진행자들은 그저 유머러스한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그들을 이상한 표정으로 둘러보던 김유린이 자기는 진심이라며 다시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별안간 청중 중 한명이 기습적으로 크게 소리치며 물어왔다.
마이크가 없어 작았지만, 언뜻 듣자니 요즘 소문이 파다한 단체 ‘더 몬스터’에 관한 이야기.
“아. 방금 저도 살짝 궁금했던 질문이 들려왔네요. 혹시 ‘더 몬스터’라고 알고 계시나요? 고블린 연금술사님이 가입하셨다는.”
-···네. 알고 있습니다.
진행자가 별 생각없이 물었다. 정말 그저 말도 안되는 소문이라 치부했기에, 그 목소리에 진지함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가벼운 웃음기가 섞여있었을 뿐.
“두분 다 컨셉이 몬스터라서··· 몇몇 사람들은 대장장이님도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요? 흠······
그러나 오크 대장장이는 뜸을 들였다. 갑작스런 시간끌기에, 허무맹랑한 소문이라 치부했던 사람들도 집중하고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크는 약 30초정도 더 사람들을 애태우다가, 이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가입하는 것도 재미는 있겠네요. 만약 그렇게 되면, 제 물건의 구매 문의는 단체 ‘더 몬스터’로 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끝으로 대장장이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장내에는 적막이 가라앉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
세진은 공모대회가 끝나자마자, 빛살처럼 업로드 된 수 많은 기사와 대중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피곤했지만, 그래도 충격에 빠진 매스컴과 대중들을 관찰하는 건 즐거웠다.
‘보물이 될 수 있는 상품의 등장.’
‘성장하는 무기, 그 진위는?’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검, 그 주인은 누가 될 지.’
‘오크 대장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이따위의 기사 제목은 오글거리긴 했으나 사람의 이목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니 무기에 관련된 기사들은 다른 주제의 기사들에 의해 묻혀버리고 말았다. 다른 기사의 주제는 바로 오크 대장장이의 ‘더 몬스터 가입’.
대단히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김세진의 집까지 찾아오는 기자도 있을 정도로.
-일단 걱정하지 마요. 사람 보냈으니까, 알아서 정리해줄거에요.
“응. 매번 고마워.”
집 앞에서 진을 치고는 20분 간격으로 문을 두드리는 기자들에게 지쳐갈 때 즈음. 때마침 유세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과연 새벽의 위엄은 대단했고, 실제로 그녀가 그 말을 한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이 도착해 기자들을 쓸어냈다.
-근데 프로그램 보셨죠? 오크 대장장이 님이 이 단체에 가입하시는 거, 진짜예요?
“아. 그거? 어··· 그게······ 고블린 연금술사가 자기가 오크 대장장이랑 친하다고는 했거든? 연줄이 닿긴 할텐데.. 모르겠어. 한번 물어봐야지.”
한번 시작한 거짓말을 도저히 멈출 수 없었고, 하면 할수록 더욱 익숙하고 편하다. 그리고 이들이 놀라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그리 악취미는 아니지 않은가?
-저, 정말요? 저 그러면 나중에 그분이 단체 가입 하시면··· 부탁같은거 해도 될까요?
“그렇겠지? 마땅한 대가만 있다면.”
-줄 대가는 넘치도록 있어요.
“···물론 그렇겠지.”
두사람의 주제는 ‘오크 대장장이’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 ‘성장하는 검’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아. 그리고 오빠. 나중에 같이 밥 한번 먹어도 돼요? 그 김유린 기사님이 같이, 같이 밥 한번 먹자고 하셨는데···.
그러다 문득, 유세정이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음? 나도?”
-네. 오빠도요···.
그러나 이건 왠지 아쉬워하는 투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김유린과 단 둘이서 식사를 하고 싶었던 듯했다.
“가도 되는거야?”
-네. 김유린 기사님이 직접 ‘김세진 씨도 함께’라고 말씀하셨는데.. 세진 오빠 바쁘시면 안된다고 말씀드리고 저랑 둘이서만 먹을게요! 분명 그래도 이해해주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은 괜히 활기찼다. 그래서 괜히 골려주고 싶었다.
“아 그래? 괜찮아. 갈 수 있어.”
-···
순간 침묵이 가라앉았다. 김세진은 세어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말을 이었다.
“언젠데?”
-···다음주 월요일.
세정이 퉁명스레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알았어. 그럼 그때 보자.”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을 뿐이었다.
*
“······!”
흑색늑대, 김세진이 눈을 떴다. 샛노란 눈동자가 번뜩였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불쾌할 정도로 기묘한 감각이었기에, 세진은 재빨리 인간폼을 취했다.
시계를 힐끗 바라보니 오전 9시. 새벽 1시쯤에 잠에 들었으니 정상적인 수면이다.
‘근데 왜..’
몸의 군데 군데가 이상하게 쑤셨다. 특히 관절부위와 손톱이 시리게 아려왔다. 마치 타박상이라도 입은 양.
“···뭐지?”
세진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저 지하로 내려가 보급용 중하급 회복포션 하나 복용했을 뿐. 관절의 시림과 쑤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그는 만족스럽게 소파에 누워 TV를 켰다.
오전 9시 뉴스의 첫 토막부터 ‘오크 대장장이’였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앵커의 목소리를 감상했다.
‘대중은 물론 기사계와 정재계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명인이 탄생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는 앵커의 찬사를 듣고 있노라니, 어제 인터넷으로 확인했던 대중의 열성적 반응과 흥분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그렇게, 그는 진한 만족 속에서 낮잠에 들었다. 몸이 이상하게 피곤했다.
세진이 완전히 낮잠에 빠져들었을 때.
뉴스의 화면이 급작스레 바뀌었다.
긴급 속보였다.
-···! 아. 뉴스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3시경, 강원도 횡성일대에서 살해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집 내부와 사체가 이상한 점을 미루어 당국이 사체의 부검을 하니, 이 피해자의 신원이 ‘뱀파이어’인 것으로 판명. 현재 수사당국에서는 이 사건이 용병 ‘라이칸’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중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