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악순환 (3) >
정은지의 용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수척한 얼굴과 창백한 안색. 거기다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까지. 그녀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연신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도 두려워했다.
“···후.”
주지혁은 최대한 노력해서 그녀와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김세진은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주지혁 씨.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예? 아··· 예.”
그는 아무 의심도 없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세진은 아직까지도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정은지를 내려보다가, 이내 늑대의 동공을 발현했다.
역시. 기운이 보였다.
그녀의 온 몸에 퍼져 나오는 검붉은 기운, 그 진한 세기와 농밀한 농도가 현상태의 심각성을 대변하는 듯 했다.
그는 일단 주머니에서 진정효과가 있는 포션을 꺼냈다. 마신다고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편안히 수면을 취할 수 있을 터. 잠든 이후에 제대로 된 치유를 해보자.
“은지 씨?”
갑작스런 호명에 그녀는 몸을 흠칫 떨더니, 고개를 서서히 들어올렸다.
“받으세요.”
흑색늑대일 때와 인간형일 때의 향기를 비교하자면, 전자가 훨씬 진하고 강해 두 개가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일말이라도 있기 마련.
그녀는 감히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션을 받았다.
“마셔요.”
은지는 조용히 포션을 마셨다.
그리고 정확히 1분 뒤, 침대 위로 곯아 떨어지게 되었다.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그는 손톱을 날카롭게 세운 후, 그녀의 전신에서 퍼져 오르는 기운을 살짝 베어냈다. 그러자 부드럽게 일렁이던 기운은 마치 주인을 찾은 것처럼 세진의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뭐야.”
이 예상외의 반응에 그는 살짝 당황했다. 그저 막연히 베어지겠거니 생각했는데, 도대체 왜···.
허나 뒤이어 나타난 알람은 더욱 가관이었다.
[스킬, 탁기(濁氣)의 고리가 발현됩니다]
[탁기(濁氣)의 고리]
-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한 굴복관계.
- 지배자는 원하는 때에, 피지배자에게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야기시킬 수있습니다.
-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명령, 부탁, 제안 따위를 거절하는 것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단, 피지배자는 이 고리의 인연을 인식하지 못한다.)- 지배자는 이 고리를 원하는 때에 끊을 수 있습니다.(단,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앞으로 17명의 사람과 고리를 맺고, 그것을 유지하면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할 수 있게 됩니다.]
정말 뜬금없이 라이칸으로 진화할 수 있는 힌트를 얻게 되었다.
그는 멍하니 알림창을 탐독했다. 확실히,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암적색 기운은 없어졌다. 근데 저 정보창에 적힌 문장은··· 거의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닌가.
“으응···.”
순간 정은지가 몸을 뒤척였다. 잔뜩 찡그려져 있었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편안한 무표정이 되었고, 몸의 떨림도 잦아들었으며, 숨소리도 쌔근쌔근- 아이처럼 안정적으로 변했다.
어쨌든 간에 일단 치유가 완료 되었음은 확실. 세진은 도망치듯 병실을 나갔다.
벽에 기댄 채 기다리던 주지혁이 다가오자, 그는 다급히 한마디를 내뱉고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치유는 다 됐을거에요. 근데 주지혁 씨, 혹시라도 이 여자가 깨어나서 이상한 소리하면 다른 사람 말고 무조건 저 먼저 부르세요.”
“네?”
“···그냥 간호 좀 부탁하는 거예요!”
주지혁은 멍하니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뒷목을 긁적이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약 3시간 뒤 주지혁에게 연락이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정은지의 트라우마가 그 포션 덕택에 씻은듯이 나았으며, 김세진에게 감사를 전해달라 부탁했다고.
‘···상대가 인식을 못한다는 게 이런건가?’
세진은 자신의 SNS를 바라보며 볼을 긁적였다. 정은지가 환한 미소를 지은 자신의 사진과 함께, 장문의 메세지를 보내 놓았다.
[더 몬스터의 단체장 #김세진 님께서 직접 병문안을 와주셨어요. #고블린연금술사 님께서 만든 포션을 들고서. 포션 덕분에 몸은 다 나았는데··· 제가 깨어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셔서 감사를 전할 길이 없어 이렇게라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주지혁 바보기사가 #김세진 님이 제 팬이라고 하셨는데···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래도 다행이네.’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메시지 잘 받았다는 뜻으로 ‘공유’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뒤. 인터넷에서 김세진과 정은지와 관련된 기사가 터졌고,적어도 몇 주는 연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유세정은 이를 아득바득갈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 날, 김세진은 공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유명해져서 좋은 점은 별로 없다, 단지 일생이 귀찮아진다는 극히 치명적인 단점만이 남을 뿐.
*
그 이후로 김세진은 조금 비겁한 짓을 계속했다.
웨어울프 폼으로 중하급 이하 기사를 습격하여 정신적 충격을 야기시키고─등급이 중하급보다 높은 기사들은 ‘고리’가 생길 정도로 정신력이 약하지 않았다─, 치료를 면목으로 고리를 생성하여 진화를 도모한다.
그러는 와중에 김세진과 고블린 연금술사 명성은 더욱 드높아졌고, 그 반대급부로 웨어울프의 악명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웨어울프의 기사와 사냥꾼 습격, 오늘도 또다시 반복되다.]
[몬스터 필드의 깡패.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나.]
[고작 몬스터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기사들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나다.]
위처럼, 언론들도 웨어울프를 들쑤셨다. 강자는 피해다니지만, 약자에게는 한없는 패악질을 부리는 간교하고 영악한 몬스터라며.
웨어울프는 어느 순간부터 ‘악’의 대명사가 되었고, 중상급기사는 물론 상급기사들까지 토벌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탓에 김세진은 아쉽게도, 10명의 문턱에서 몸을 사려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어느새 8월 13일.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 속, 강원도의 강연홀에서는 예정되었던 ‘더 몬스터’의 제품시연회가 열렸다.
마나의 샘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아진 아탄이 2.0의 홍보가 주 목표였는데, 이 시연회에는 국내외의 기사들과 기자들을 모두 합쳐 무려 3천여명이 모여들었다.
이 숫자는 강연홀의 규모를 초과해, 나머지 오 백여명의 사람들은 강연홀 밖의 모니터로 시연회를 관람해야만 했다.
시연회의 처음과 끝을 이끌어가는 역할은 조한성이었지만, 아탄이 2.0을 소개하는 것만큼은 김세진의 담당이었다.
그는 처음엔 무지 걱정했으나, 예상외로 긴장없이 끝낼 수 있었다. 사실 고작 10분밖에 나서지 않았고 할 말도 짧았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냥 저가 생각해도 무척 귀엽게생긴 인형 하나를 품에 안고가서,
“자. 먼저, 기사와 마법사님들? 이 아탄이에서 퍼져 나오는 마나를 한번 느껴보십시오.”
이렇게 한 마디를 해주고, 실제로 선연한 마나의 기류를 느낀 기사와 마법사들이 감탄해 할 때쯤. 일반인들도 알 수 있는 통계적 수치를 제시한다.
거기까지 끝나면 다음은 청중들의 몫이다. 기사들은 진심으로 놀라고 감탄하며 과장된 감탄사를 내뱉고, 마법사들은 괜한 질투로 얼굴을 찡그리며, 기자들은 노트북이 부서져라 두드린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 불씨를 하나 더 던진다.
“또한 앞으로 3달 뒤. 아탄이 이외의 발명품도 곧 발매할 예정입니다. 더 몬스터만의 특색이 담긴 특별한 물품.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강연홀은 그 즉시 열화의 장으로 돌변하고, 자신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런 걸 굳이 생중계로 할 필요가 있었나··· 아무래도 홍보팀을 문책해야 될 것 같은데.”
TV속에서 흘러나오는 그 모든 영상들을 바라보며, 김세진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네? 아뇨 별로 안 그러셔도 될 것 같아요. 키가 커지셔서 그런가 되게 멋있게 나오신 걸요? 아주 멋있어요.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반했을 정돈데요~?”
하젤린이 사과를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말했다.
오늘, 하젤린은 채무 관련 문제로 세진을 방문했다. 허나 이번에는 채권자가 아니라, 채무자가 되는 쪽.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알케미하우스를 확장하기 위한 돈을 빌리러 왔다.
그 금액은 무려 50억 수준이었지만, 전의 은혜가 있기 김세진은 흔쾌히 빌려주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이렇게 싱글벙글하며 아양(?)을 떠는 것이겠지.
“하하···. 그래요?”
“그럼요~ 아, 근데 아탄이 2.0 그거 예상 가격선이 최소 600억이던데, 세진 씨 돈 엄청 많으시겠네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잔뜩 담겨있었다.
“아하하··· 그 통장에는 별로 없어요. 지금 땅 사고 있는 중이라.”
“땅이요? 땅은 왜요?”
“아. 재무팀이랑 기획팀에서 조언을 해줬거든요. 저희 사옥에서 요선 알케미하우스까지 이어지는 땅을 사들이면, 나중에 단체가 확장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하젤린은 잠시 멍하니 이곳에서 알케미하우스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다가, 이내 경악한 표정이 되어 입을 떡 벌렸다.
“여기에서 거기까지요? 돈 엄청 많이 들 텐데? 아무리 요즘 몬스터 사태 때문에 강원도 땅값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이미 거의 절반은 완료됐어요. 오크의 무기 가격이 엄청 비싸졌거든요.”
하젤린은 넋이 나간 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헛기침까지 한번. 그리고 나서야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아~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임대료를 올려야 하나~~? 세세세, 세진 씨. 세진 씨 의견은 어때요?”
잘 알려진 사실. 오크의 대장간 본점이 위치한 빌딩의 주인은 하젤린이다.
그 모습은 30대답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서, 순간적으로 욕정이 들기에 충분했다.
“···아, 아하하···.”
그는 그 본능을 애써 억누르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하기 위한 작업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세진은 게을러지지 않았다.
이번에 그는 인간 본연의 성장에 열중했다.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하루에 30분은 꼭 운동과 훈련에 매진했고, 인간인 상태로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어느새 ‘최연소’ 상급사냥꾼 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기사단과 제휴 말입니까?”
“네. 하고 싶은 기사단 많을 거 같은데요.”
허나 혼자 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그는 조한성을 불러 기사단과의 훈련제휴를 요청했다.
“···예. 아마 저희가 고르는 쪽이 되겠죠. 근데 그건 단체장님이 직접 새벽 쪽에 문의하시는 게···.”
그 즉시, 세진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 직원 숫자도 세 팀 중 가장 많은 13명이나 되면서, 언젠가부턴가 일을 기피하는 것 같단 말이야···.
“아, 아닙니다. 곧바로 관련문서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 눈빛을 눈치 챈 조한성이 퍼뜩 허리를 숙였다.
“예··· 뭐. 아 맞다. 그리고 한성 씨. 이제 저희 부지가 넓어지는 거 아시죠?”
“네. 물론입니다.”
“그래서 근처에 건물을 더 지을 예정이에요. 팀 마다 최소 하나 정도의 건물을 통째로 쓸 수 있도록. 휴게실이나 낮잠을 위한 숙직실도 구비될 예정이니까, 다른 직원 분들 한테도 전해주세요”
그때 한성이 별안간 눈을 빛냈다.
“그, 그렇다면 혹시 사탄, 아니 머핀이는···.”
“홍보팀이 맡아야죠 걔는. 까탈스러운 애라 사육사 바뀌면 안 돼요.”
“···아···.”
조한성은 다시 나라를 잃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저는 사육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노예라고 형용하는게 옳아요.
“네?”
그러나 그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한성은 차오르는 한숨을 애써 속으로 삼키고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그와 같은 시각. 김유린은 아주 오랜만에 기사단장의 호출을 받았다.
김현석. 칠흑기사단의 기사단장이자, 세계에서 선정한 기사랭킹에서도 2위를 차지한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고위기사.
···또한. 김유린의 아버지.
그는 무릇 자녀와 부하를 대하는 것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며, 김유린이 기사가 되어 칠흑기사단에 입단한 해.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울고 불며 싫다고 애걸하는 그녀를 강제로 독립시켰다.
김현석은 그 이후로 무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공적인 부분에서는 언제나 제 자녀인 김유린을 타인보다 못하게 대했기에, 유린은 거의 4년만에 기사단장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예? 외교전이라고요?”
“그래. ‘아탄’의 성능이 확실하게 밝혀졌고, 해외기사단에게도 그 판로가 열려 있어 지금 정부에까지 로비를 하는 외국기사단이 몹시 많아졌단다.”
그리고 오늘 김현석이 제 딸을 부른 이유는, 역시 단지 업무 때문이었다.
지금, 전세계에서 수위를 다툰다는 기사단들은 저마다 총칼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당연 ‘아탄이 2.0’.
‘마나 회복’과 ‘원기 회복’이라는 효과가 동시에 부가되어, A등급 마나의 샘보다도 효율이 좋다는 이 인형은 기사단의 위상과도 직결된 핵심문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경쟁자 대부분이 국내 기사단이었던 이전과는 다르다. 타국에 빼앗기게 된다면, 이번에는 국가의 위상에도 이상이 생기고 만다.
“그.. 그런데요..?”
“네가 그 단체장과 몹시 친하다고 들었다.”
김유린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 그···.”
“혹시 거짓말이었니?”
“아, 아닙니다! 친합니다. 당장 어제도 연락했는데···.”
유린이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공식적으로 불러 전적인 위임을 하는 경우는 이게 처음. 그만큼 이 일의 적임자는 자신 밖에 없고, 아버지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녀는 아버지의 그런 믿음을 배신하기 싫었다.
“그래? 그럼 너에게 이 일을 맡겨도 되겠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기사단장님.”
아버지라는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졌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김현석을 대할 때. 아버지보다는 ‘기사단장님’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져 버렸다.
< 19. 악순환 (3)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