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70화 (70/174)

< 21. 새로운 시작점 (1) >

바로 다음 날, 햇볕이 쨍쨍한 정오.

김세진은 서울 도심에 위치한 호랑이 굴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사물에 깊게 밴 향기의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기 위해, 유백송이 만남장소로 그녀 자신의 집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유백송의 집 안에서, 그녀와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극비 서류파일을 살펴보고 있다. 김세진의 표정은 무척 심각했으나, 유백송은 그 와중에도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내를 킁킁대며 꼬리를 살랑였다.

“···허.”

서류를 탐독하던 세진이 무의식적인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건네준 정보에는 세진 자신도 모르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과거 용병이었고, 단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는 기사였다는 사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신을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용병을 은퇴했고, 아버지는 어머니 대신 나간 마지막 임무에서 흡혈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정보가 대한민국에서 ‘폐기 처리’ 되었다는 이해못할 진실까지.

“그 당시에는 내가 국장이 아니었던 때긴 하지만 확실히 미심쩍은 점이 많아. 무엇보다도, 우리 특수경찰국에서도 그 사건을 조사한 흔적이 있는데··· 누군가가 그 결과를 모조리 삭제해버렸어.”

유백송은 서류를 탐독하는 세진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네 어머니는 너를 낳고 사망할 때까지, 약 8년간 경찰국의 특별관찰대상이었어. 이건 보통 중요한 증인 혹은 유력한 용의자에게 내려지는 명령인데, 왜 네 어머니가 그런 관찰을 받아야 했는지는 나도 자세히 몰라. 말했다시피 모든 정보가 삭제되었거든.”

세진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느새 충혈된 그의 눈가는 얼마간의 물기가 고여있었다.

“그러니까. 어쨌든 자세히는 모른다, 이말입니까 지금?”

“···그래. 아직까지는 여기까지가 한계야. 시간이 좀 지나야 뭐라도 해볼 수 있어.”

“시간은 왜?”

유백송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현재 특수경찰국장은 나 유백송이지만, 만인지상인 건 아니야. 우리는 엄연한 행정부 소속이라고. 전임 국장도 아직 행정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괜히 오래전에 폐기된 사건을 들쑤셨다가는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김세진의 시선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유백송이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게다가 가용 요원숫자도 딸려. 모든 요원이 이 흡혈귀 사태에 집중하고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이 난리가 해결될 때까지, 한 3년만 기다리면 돼.”

"..후."

아마 유백송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이미 10여년 전에도 더 종결 난 사건을 파헤치는 건, 게다가 그게 모종의 이유로 은폐까지 되어버린 사건이라면, 아무리 유백송이라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크겠지.

하지만, 지금의 김세진은 굳이 그런 것까지 배려해줄 수 없었다. 그게 비록 비겁한 방법으로 유백송을 이용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그는 최대한 빨리 모든 진실을 알아야만 했다.

“···유백송 씨.”

세진이 늑대의 향기를 최대한 강하게 가동시켰다. 목소리도 일부러 낮게 깐 중저음으로. 그는 그녀의 가장 예민한 감각, 후각과 청각을 동시에 공략했다.

“마, 말했잖아. 안된다면 안되는···.”

그가 그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곤 뒤로 물러나려는 그녀의 어깨를 붙는다. 가녀린 몸이 흠칫 떨렸다.

“6개월, 그 이상은 못 기다릴 거 같은데. 어때요.”

김세진이 그녀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흘려 보내자, 호랑이 귀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목소리에 감응한다는 신호. 그는 파닥파닥거리는 유백송의 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음을 이었다.

“공짜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희 단체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 중, 원하는 걸 하나 드리지요. 그거면 혹시라도 화가 날 나랏님들도 만족할 수 있을텐데요.”

그가 조건을 하나 더 추가했다. 아탄이 2.0은 정부에서도 제발 달라고, 달라고 애원했던 물건. 그거라면 충분히 몇 개의 잘못은 눈감고 넘길 수 있을 정도겠지.

“그, 그런.. 건 나는 잘 모른단.. 말이야···.”

유백송의 목소리는 애처로울 정도로 떨렸다. 그녀로서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좀.. 놔줘···."

저항을 해야 하는데··· 이 놈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귀에서부터 전해지는 따스한 느낌이 정신을 몽롱하게, 몸을 황홀하게 적신다.

“흐···.”

결국 유백송은 달뜬 호흡을 내뱉으며 그의 품에 안기다시피 기대고 말았다.

“걱정 안해도 돼요. 이거 엄청 좋은 조건이니까.”

김세진이 서늘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것은 마지막 결정타가 되었다.

***

이틀 전. 특수경찰국은 인적이 드문 야산으로 출동했고, 라이칸의 말대로 그곳에는 겁에 질린 흡혈귀 하나가 나무에 묶여 있었다. 요원들은 놈을 본부로 끌고가 이틀간 심문했다.

신기하게도. 라이칸이 포획한 뱀파이어는 여타 다른 흡혈귀와는 달리 알고 있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놈은 말단이었기에 그렇게 구체적인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이 사태와 직접적으로 관여한 뱀파이어로부터 얻어낸 개괄적인 정보도 지금의 특수경찰국에는 가뭄의 단비나 다름이 없었다.

특수경찰국은 관련 내용을 토대로 비밀리에 수사를 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현대사회에 스며든 뱀파이어에게 위협을 가하기위해 모든 정보를 언론에게 전달했고, 언론은 앞다투어 세간에 발표했다.

그렇게 발표된 정보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뱀파이어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던 독일, 프랑스,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솔솔 피어 올랐고, 가장 극단적인 중국에서는 아예 종족말살작전이 재개될 법한 전운이 감돌았다.

“언론 등지에서 발표한 내용대로. 라이칸과 특수경찰국의 합동수사를 통해 알아낸 뱀파이어들의 최종 목적은 균열을 크게 벌려, 원래 뱀파이어들의 고향으로 향하는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특수경찰국이 미리 모든 정보를 사전에 공개했음에도 기자회견장에는 수 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유백송은 그들 앞에 서서 육성으로 선언했다. 그에 플래쉬가 눈이 아플 정도로 터졌지만 그녀는 눈 하나 껌뻑하지 않았다.

“또한 예상외로 사회속에 스며든 뱀파이어의 수가 많으며, 그들은 각각 다른 지도자를 섬기는 파벌로 나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드웨인이라는 흡혈귀가 고백한 모든 내용이었다.

“이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유백송이 질의응답을 시작하자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경쟁적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가장 앞자리에 앉은 기자를 가리켰다.

“더 몬스터의 김세진과 라이칸은 무슨 관계인 건가요?”

“···모릅니다. 최대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질문을 해주십시오.”

여기서 김세진의 이야기가 왜 나와. 유백송이 미간을 찌푸리고서 다른 기자를 지명했다.

“라이칸과 유백송 국장님도 ‘더 몬스터’라는 단체에 가입한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는데···.”

이건 또 뭐야. 유백송은 기자의 말이 채 끝맺기도 전에 질문을 잘라냈다.

“그럴 일 없습니다. 그럼 질문은 이만 받겠습니다.”

보아하니 별로 쓸모 있는 기자가 없는 것 같았기에, 유백송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질의응답을 끝내고 뒤돌아 섰다. 그에 기자들이 뒤늦게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져 댔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했을 따름이다.

그렇게 기자회견은 예상보다 짧게 끝났지만, 어쨌든 라이칸의 활약 덕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헌데 이러한 라이칸의 연이은 활약에 의해 뱀파이어들의 ‘목적’이 세간에 까발려짐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한 붐이 일어났다.

이른바 ‘용병이 되고 싶어요’.

베일에 쌓인 전설적 용병, 라이칸의 존재에 의해 쇄락을 넘어 몰락했던 용병계가 다시금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임무가 조금 많이 들어왔습니다. 추적, 탐색, 발본, 등등. 다양합니다.

“···그래요?”

그 탓에 난데없이 김유손의 업무가 갑자기 바빠졌다.

-모두 거절을 놓아야 하겠지요?

“예.”

물론 어쩔 수 없이 다 거절해야 했지만, 김유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그리고 또 요즘 용병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답니다. 현직 기사들도 몇몇 있더군요. 그래서 말입니다, 단체장 님. 이 참에 용병단이라도 하나 만드는게 어떻겠습니까?

“예? 용병단요?”

-그렇습니다. 몬스터 용병단, 이런 이름이 되어야 겠지요.. 물론 과거의 용병들은 대부분이 개인용병이긴 하였지만서도, 사회가 바뀐만큼 저희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아들도 도와주기로 하였으니,, 단체장님과 생각만 맞으면 저와 아들이 어떻게든···

“네. 하세요.”

세진의 대답은 빨랐다.

단체산하 용병단이라면 대충 사병처럼 운용할 수도 있고, 유백송에게 정보를 받은 이후로 그는 그런 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유백송을 기다리기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예? 저, 정말입니까? 고민을 안 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예산은 재무팀가서 받으세요. 아 그리고, 혹시 첩보원도 육성할 수 있을까요?”

-아, 아 당연히 가능합니다! 제가 소싯적에 그런 일에 전문이었습니다!

김유손은 거의 함성을 내지르다시피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김유손 씨가 직접 맡아서 해보세요. 용병단장 뭐 이런 직책을 드릴테니. 아, 대신 뽑을 용병은 저한테 한번은 데리고 오셔야 해요. 얼굴 좀 보게.”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용병단장은 김세진 단체장님이 하셔야지요. 저는··· 용병단 감독, 이런걸로도 족합니다.

“그러시다면야 믿고 맡기겠습니다.”

김유손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끝으로 전화를 끊은 세진은 즉시 기획과 재무팀에게전화를 걸었다.

그 날, 단체부지의 한 자리에는 훗날 ‘몬스터 용병단 본부’가 될 건축물의 뼈대가 들어서게 되었다.

*

“와, 이게 뭐야?”

기사단에서 퇴근한 유세정은 언제나처럼 김세진이 있는 단체장실로 들어왔다.

헌데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달랐다.

미리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김세진은 자신이 만든 아티펙트 하나를 선물로 건넸고, 유세정은 갑작스런 목걸이 선물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것은 지극히도 아름답게 세공된 루비 목걸이, 김세진이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역작(力作)이다.

그는 이 루비 목걸이에 ‘역전의 전사’의 원리를 변화시킨 후 새겨 넣었다. 만약 착용자가 이 루비 알맹이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스킬의 효능과 지속시간이 그 양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본래 스킬의 열화(劣化)판일 뿐이지만, 사소한 차이가 우열을 가리는 기사들에게는 돈을 주고도 못 구할 만한 아이템이겠지.

“내가 만든거야. 아티펙트인데, 평범한 아티펙트와는 달라.”

“아, 그 특수경찰국한테 줬다는 목걸이랑 비슷한 거야?”

그녀는 방실방실 웃으며 그 즉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응. 근데 좀 달라. 우리 단체 부지내에 아티팩트 숍 생기는 거 알지?”

“···어? 아··· 거기서 팔 물건이야 이거?”

허나 기쁨은 잠시, 그녀는 너무 이른 실망을 했다.

“하하. 아니, 그건 내가 너한테 선물해주는 거라니까.”

그는 피식 웃고서 목걸이에 관한 설명을 해주었다. 유세정으로서는 난생 처음 듣는 종류의 아티펙트였기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정말? 지금 한번 시용해봐도 돼?”

“당연하지.”

그 즉시 그녀는 목걸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신비한 활력이 체내에 분류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신의 마나가 통째로 들끓는 듯한 폭발감. 그것은 고작 60초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녀에겐 대단히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

“···.”

유세정인 잠시 정신이라도 나간 듯, 입을 떡 벌린 채 세진을 응시했다. 수 많은 아티펙트를 구매하고, 착용해왔던 그녀는 단 한번의 경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외관과 특별한 효력. 이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다.

“그동안··· 조금 미안해서 주는 선물인데, 그렇다고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는 마. 그렇게 순수한 선물은 아니니까. 너 요즘 예능출연 많이 하지? 촬영할 때 그거 꼭 끼고가라. 한 번이라도 안 끼면 반납해야된다.”

그녀의 정말 솔직한 반응에, 김세진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유세정은 한참동안이나 반응없이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뭐야, 왜 우는데? 내가 뭐 잘못했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고마워서.

그러나 세정은 그 한 마디 대신, 한 발자국 크게 성큼 다가가 그를 꽈악 껴안았다.

“···어···.”

다소 갑작스런, 예상조차 못한 난데없는 스킨십이었기에, 인간 김세진은 잠시동안의 혼란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혼란속에서 이 상황에 직접 대응을 한 것은, 그의 또다른 본능이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자신의 품으로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포옹은 김세진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 21. 새로운 시작점 (1) > 끝

ⓒ 지갑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