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격화 (3) >
[포밍이 흑색늑대에서 라이칸슬로프로 변화합니다.]
[인간폼과 흑색늑대폼이 합쳐짐으로써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 합니다.]
[라이칸슬로프의 특성상, 달빛을 쬐면 쬘수록 무력이 강력해집니다.]
['늑대화'를 취함으로써 체내의 혈류 속도가 급증합니다.]
['늑대'와 관련된 모든 스킬의 격(格)이 상승합니다.]
[패시브 제약 '풀리지 않는 매듭'을 습득.]
-라이칸의 야성적 본능을 억누르지 못해, '기력'수치에 따라 하루 (570)분은 '라이칸(늑대)'의 폼을 취해야만 한다.
-알려지지 않은 조건을 완료하기 전까지 라이칸슬로프의 능력이 일정 부분 봉인된다.
[패시브 스킬 '달빛 가죽'을 습득.][등급: F]
-라이칸슬로프의 가죽은 평범한 늑대와는 그 격을 달리한다. 물리피해와 마법피해에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며, 자유자재로 성질의 변화가 가능해 때로는 빛을 난반사해 몸을 숨길 수 있다. (단, 인간형일 때는 적용이 불가하다.)
[액티브 스킬 '야성의 눈'을 습득합니다.][등급: F]
-상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눈. 그러나 라이칸슬로프의 눈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저주'로 작용되어, 마나를 소모함으로써 시야에 보이는 상대의 약점을 '생성'할 수 있다. (단, 인간형일 때는 등급이 한 단계 하향되어 적용된다.)
[액티브 스킬 '거대화'를 습득합니다.][등급: F]
-스킬의 등급에 따라 늑대 형체의 크기가 커진다.
[액티브 스킬 '손톱 사슬'을 습득합니다.][등급: F]
-손톱으로 행하는 일격이 라이칸슬로프의 의지에 따라 휘어지며 적을 말살한다.(단, 인간형일 때는 등급이 한 단계 하향되어 사용된다.)
[패시브 스킬……]
시야가 온통 문자로 가득했다. 그러나 하나하나 탐독할 시간은 부족했고, 대충 강력해졌다는 건 확실했기에 김세진은 재빨리 라이칸슬로프로 변화했다.
그러자 순간 몸에서 은색 털이 솟아오르더니, 오크는 사라지고 한 마리의 늑대인간이 그 다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투명한 달빛이 그대로 스민 듯한 털과 가죽을 지니고 있는 늑대, '라이칸슬로프'.
이 세계에 결코 존재해서는 안될, 이미 절멸한 신화와 전설 속 존재.
그 라이칸슬로프의 등장에 모든 뱀파이어들이 경악으로 물드렀다.
"……?"
갑작스레 뒤바뀐 상대에 데스나이트가 순간 멈칫했다.
지성이 있기에 벌어진 행위였으나, 그것은 최대의 악수(惡手)가 되었다. 늑대는 놈의 빈틈을 보인 즉시 발을 박차고 튀어나가 흡혈귀들을 향해 쇄도하였다.
가공할 만한 질주가 일으키는 소닉붐에 데스나이트마저 몸을 휘청거리고, 아주 찰나에 뱀파이어에게 도달한 늑대는 기다란 손톱을 휘둘렀다. 허공에 새겨지는 다섯 줄기의 흉흉한 궤적은 한 뱀파이어의 가슴을 찢어내고는, 이내 뱀처럼 휘어져 둘, 셋…… 뱀파이어를 차례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 마리의 뱀파이어가 찢겨졌을 때.
데스나이트가 신속하게 다가와 늑대의 손톱을 쳐내고 그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놈이 휘두르는 거검은, 늑대에게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을 따름이다.
늑대는 몸을 옆으로 살작 비틂으로써 검격을 피해내고, 다시금 또다른 뱀파이어에게로 향했다. 놈은 허둥지둥하며 배리어를 시전하려 했지만, 라이칸슬로프의 손톱에 마법 따위는 무용지물일 따름이다.
촤아아-
늑대의 흉악한 손톱은 배리어를 가벼이 통과하여, 뱀파이어의 가슴팍에 회생 불가능한 자상을 선사했다.
"……."
그렇게 놈은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이것은 고작 5초라는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늑대는 잔상조차도 남기지 않고 다섯의 뱀파이어를 삽시간에 도륙해내었다.
남은 뱀파이어는 난생 처음 목도한 숙적 '라이칸슬로프'의 형상에 겁을 집어먹고서 도망치려했다. 하나 이번에는 그들이 쳐 놓은 결계가 문제였다.
"사도님! 겨, 결계를 풀어주시옵소서!"
그들이 설치한 쥐덫이 박쥐를 잡는 덫으로 변형되는 순간이었다.
"끄아아악!"
한데 바로 그때, 별안간 처절한 비병이 울리더니 진홍색 불꽃이 결계 끝까지 치솟았다.
결계를 유지하는 인원수가 적어지면서 그 효력이 약화된 틈을 타, 하젤린이 '겁화(劫火)'를 일으켜 뱀파이어를 불태워 죽인 것이다.
"빌어먹을……!"
결국 사도는 결계를 해제하고 도망치려했다.
그러나 라이칸슬로프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콰직-!
달빛늑대는 데스나이트의 거검을 기민한 몸놀림으로 가볍게 회피하며 다가와, 사도의 목을 향해 아가리를 치밀었다.
"……씹!"
사도는 갑작스런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늑대의 아가리에 섬전을 쏘아냈지만, 늑대가 몸을 살짝 비틀었다. 그렇게 섬전은 늑대의 활짝 열린 아가리대신 어깨를 향했다. 그러나 늑대의 달빛 가죽은 필사의 섬전을 아주 쉬이 흘려보냈을 다름이다.
무로 돌아간 섬전에 반해, 늑대는 사도의 모가지를 성공적으로 물어 뜯었다. 목뼈가 흉악하게 뒤틀린 사도는 즉사하여 몸이 축 늘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도 중 하나가 절명하자, 결계가 그 효력을 잃고 해제되었다.
남은 건 두 뱀파이어와 하나의 데스나이트뿐.
늑대는 붉은 안광으로 남은 뱀파이어를 훑어보며 입맛을 다셨다.
"비, 빌어먹을……."
놈들은 뱀파이어 특유의 역소환 마법을 사용함으로써 이 사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라이칸의 손톱은 마법뿐만 아니라. 마나의 기류조차도 끊어낼 수 있었다.
늑대는 선연하게 보이는 암적색 마나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뱀파이어를 이동시키려던 마나의 기류가 순식간에 무(無)로 산화하고, 뒤이어 별안간 당황하는 뱀파이어들에게 하젤린의 거대한 마창이 쇄도했다.
사도는 촉수를 활용하여 첫 번째 마창을 쳐냈으나…….
"……오, 이런."
이미 진홍빛으로 타오르는 마창은 수십, 수백으로 증식한 채 밤하늘을 뜨겁게 수놓고 있었을 따름이다.
사도의 의념을 전해받은 데스나이트는 목표를 하젤린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늑대가 그 데스나이트를 막아 세웠다.
그리고 그 직후, 수백의 마창이 남은 셋에게 내다 곶혔다.
투쾅-!
파멸적인 굉음이 일었다.
마법에 숙련된 자는 마법으로 피해를 입힐 대상을 '한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하젤린은 도로나 그 변두리에 피해를 입히지 않고, 오직 두 놈의 뱀파이어만을 깔끔하게 재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데스나이트뿐.
채앵-
세진의 손톱과 데스나이트의 거검이 맞부딪히자, 서늘한 금속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격렬한 불씨가 하늘로 비산한다.
"……어머, 뭐야. 살아남았니? 세진 씨. 그 기사 좀 맡아줘요."
그런 그릴 도우려던 하젤린은 잠시 시선을 용케도 죽지 않은 사도에게로 옮겼다. 놈은 배리어를 최대로 가동한 덕인지 마창의 난폭한 향연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이쪽을 죽일듯 노려보는 사도를 바라보며, 하젤린은 왠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장난감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앟았다."
간단히 대답한 세진은 데스나이트를 주시하며 '야성의 눈'을 활성화했다. 순간 세상이 느려지고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더니, 오직 데스나이트의 오른쪽 가슴팍만이 붉게 도드라졌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이 데스나이트의 약점이다.
콰아아아앙-!
순간 데스나이트가 거검을 내려쳤다. 세진이 뒤로 물러나자,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가 거검에 의해 궤멸되어 폭삭 주저앉았다.
'이름깨나 날렸던 기사였나 보네…….'
세진은 입맛을 다셨다. 역시나 만만치 않은 상대, 아무리 약점을 발결했다 한들 검술 자체에 빈틈이 없다.
[등급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설명대로 약점을 크게 키우려 해도 아직 등급이 낮은지 데스나이트 본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향해 치미는 거검을 응시했다. 야성의 눈에 비치는 거검은 약점 따윈 없는 진한 흑색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가 시선을 보내는 곳, 검면의 '중심'에 새빨간 응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세진은 쇄도해오는 거검을 피해내고서, 그 중심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쩌저적-
그의 예상대로, 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간 데스나이트가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늑대에게 자비는 없었다.
그는 발을 크게 굴러, 데스나이트의 거검을 베어냈다.
그리고 무기를 잃은 기사는 그저 한낱 허술한 박투가가 될 뿐이었다.
***
"……세진 씨?"
모든 전투가 끝나고.
하젤린이 시체를 뒤적이며 전리품(?)을 챙기고 있는 김세진을 조심스레 불렀다. 그러자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늑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달빛을 쬐는 늑대는 제 털을 반짝반짝 빛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놀랐나?"
늑대가 조용히 물었다. 하젤린은 고개를 가로 젓더니, 그 늑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고는.
"……뭐하는 거지?"
마치 강아지를 다루듯, 늑대의 목언저리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아…… 털이 탐스러워 보여서 그만……. 와, 근데 이거 털이 왜 이렇게 윤기 있는 거죠? 무슨 비단결 같네요……?"
하젤린은 확실히 자신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다행이라 생각한 늑대는 자신의 털을 이리저리 매만져대는 그녀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더니,
"어? 으, 으악!"
그대로 하젤린을 깔아뭉개듯 쓰러졌다.
오크 폼으로 두 번, 라이칸슬로프폼으로 한 번, 총 세 번.
역전의 전사를 사용한 후유증이었다.
***
김세진이 눈을 떳다. 시야가 밝고 만물의 색이 진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늑대의 형상인 듯했다. 한데 가만히 있자니 옆구리 쪽에서 살살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비틀어보니 하젤린이 입을 앙다문 채, 쓸데없이 열심히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
세진이 어이없어하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참 동안 털을 쓰다듬고, 만지작거리고, 움켜쥐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그 시선을 눈치했다.
"아……."
그리곤 당황한 듯 시선을 파하며 뒷목을 긁적이다.
"뭐하지?"
"……털이 윤기가 좔좔 흐르고 부드럽고 해서…… 촉감이 좋네요? 만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네. 무슨……뾱뾱이처럼."
"……."
세진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서 꼬리를 휘둘러 그녀의 뺨을 찰싹 때렸다. 별거 아닌 일인데, 아무래도 늑대폼일 때는 공격성이 배가되는 듯했다.
"꺅!"
이후 다시 인간으로 변한 세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거울을 찾았다. 익숙지 않은 장소다. 아마도 하젤린의 집이겠지.
"후우."
전신거울을 발견한 세진은 그 옆에 비뚜름히 선 채 심호흡을 했다. 부디, 부디, 부디…….
"똑같아요. 안 변했어요."
등 뒤에서 하젤린의 스포일러가 들려왔다. 세진은 순간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다시금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행히 변화는 미미했다. 콧대가 살짝 높아진 것만 제외한다면.
"후……. 다행이네."
세진은 진한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제 볼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근데 성형논란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짐짓 너스레를 떠는 그의 옆으로 하젤린이 다가왔다.
거울에 맺힌 그녀는 여전히 눈이 부실 듯 아름다웠다. 라이칸슬로프가 된 영향으로 시력이 무지막지하게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외모에 모난 구석이라곤 단 한군데도 없었다.
"후훗, 그러게요. 예전보다 더 잘생겨지셨네."
하젤린은 초승달처럼 휘는 눈웃음을 지으며 거울 속 세진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어제는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세진 씨가 없었으며 저, 꼼짝없이 죽었을 테니까."
그저 지극히 간단한, 감사를 표현하는 짧은 울림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진심에 순간 센진의 심장이 뛰었다.
"……하젤린 씨 키가 꽤 크시네요."
그래서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언제나 정수리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아주 긴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이렇듯 로브 없이 일상복만 모습을 보니 새삼 비율이 참 좋았다.
"……엘프는 뭐…… 다 그렇죠. 여자 평균 키가 170이니까, 그냥 평균보다 조금 큰 거예요."
하젤린이 부끄러워하며 세진에게서 물러났다.
"그럼 전 이만 출근하러 가볼게요……? 아, 세진 씨 특성은 무조건 비밀로 해둘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네. 고마워요."
그녀는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던 거대한 로브를 뒤집어쓰고서, 평소같은 모습은로 집을 나섰다.
"아, 참. 세진 씨. 정말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나서…… 설마 마피아 놈들이 흑마법까지 배워왔을 줄은……."
그리고 하젤린의 착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다.
< 25. 격화 (3)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