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진실? (1) >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함으로써 생긴 변화는 다양했다. 우선 외면적 변화는 미미했지만-그럼에도 유명해진 탓일까, 공식선상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성형논란이 아주 살짝 일었다- 신체적 능력의 변화는 대단히 컸다.
예를들어, 굳이 늑대폼을 취하지 않아도 맨손으로 철근을 어그러트리고, 기사들의 마나를 베어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새로이 생긴 여러 패시브 특성들 덕분에 인간의 몸은 물론 오크와 고블린까지 훨씬 강해졌다. 특히 고블린은 '이제 고블린 폼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라이칸슬로프의 패시브와 죽이 잘 맞았다.
그러나 이것을 마냥 긍정적인 변화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훈련도중, 주먹질 한번에 마나 그 자체가 파쇄되어 당황하는 이혜린을 보고있자니 갑작스레 겁이 나기도 했다. 이 힘과 동반될 라이칸슬로프의 본능을 자신이 이길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김세진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성격까지 어느정도는 변하게 되어버린 듯했고, 걱정 따위는 금세 잊어버렸다.
“오늘 고마웠어요.”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혜린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김세진의 스킨십은 처음이었으나, 흑심도 느껴지지 않고 시원하기도 했기에 이혜린은 별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였다.
“아··· 예.”
그렇게 대답했을 때, 이혜린은 어디선가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럼 혜린 씨, 저는 가볼게요. 마무리 훈련 잘하시고, 제가 그때 말했던 단원 추천 건도 한번 고민해보세요.”
김세진은 모든 단원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곧 있을 2차 공채와는 별개로, 저마다의 '직속 부하'가 될만한 단원을 뽑아 달라는 것이었다.
“네. 열심히 찾아보고 있어요~”
혜린이 힘차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아부를 해오는 기사들이 한 둘이 아니다. 몇몇 배경좋은 기사들은 원하는 장비가 없냐고 노골적으로 물어오기까지 했으니···
인간적인 면을 중시하는 혜린으로서는 조금 씁쓸했지만, 더 몬스터라는 단체의 위상이 그만큼 반증이었으니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아. 근데 길드장님, 분명 몇 주 전에 저 문신 스케쥴 잡아준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더 몬스터의 단원으로서, 여타 기사나 마법사들이 가장부러워함과 동시에 미칠듯이 시기하는-실제로 노력없는 성장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권, 마력문신. 그것은 어느덧 차례가 돌고 돌아 이혜린의 차례가 되었다.
“잊어버리지는 않으셨겠지요오~?”
그녀는 유세정을 놀리기 위한 의도로, 일부러 살갑게 대하며 세진의 몸을 가볍게 터치터치했다. 어디선가 이가 까득-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안 잊었죠 당연히. 그건 다음주에 토요일에 찾아오세요.”
미소를 지은 세진은 한마디를 남기고서 훈련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유세정이 이혜린에게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언니, 지금 전쟁하자는 거예요?"
세정이 짐짓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았지만,
"으음? 뭐가~?"
이혜린은 천연덕스러운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 * *
─오늘은 정말 귀한분을 모셨는데, 왠지 시청률이 폭등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TV에서는 시사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세트라고는 흑색 배경과 의자 몇 개 밖에 없을 정도로,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간단했다. 그저 세간에 뜨거운 주제에 관해 MC와 출연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
그러나 그런 간단함을 두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 프로는 대한민국 시사교양프로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으니.
─세간에서 단원으로 가입하고 싶은 단체 1위! 직원으로 입사하고 싶은 단체 1위! 게다가 요즘은 ‘TM’이라는 기업명을 시작으로 법인(法人)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더 몬스터의’ 단체장. 김세진 씨입니다.
MC의 소개가 끝나고, 화면 속의 김세진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김세진입니다.
─근데 저는 차암 궁금한게요, 여태까지 출연을 타진하던 여타 프로그램은 모두 퇴짜를 놓지 않으셨습니까? 근데 왜 저희의 출연요구에는 흔쾌히 승낙을 하셨는지···.
자부심에 가득 찬 MC의 질문이었다.
─···그게··· 그냥 간단합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프로이기도 했고, 그리고 요즘저희 단체가 언론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잦지 않습니까? 대중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을 스스로 긁어주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프로그램보다 녹화시간이 훨씬 짧더군요.
이유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하고 성격에 거침이 없어진 세진, 그가 시간에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겠다 갑자기 관심병이 도져 TV출연에 관심을 두고 있던 도중, 이 프로그램이 가장 먼저 출연제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하. 유머러스한 분이네~ 확실히 우리 녹화시간이 짧긴 하지.
웃음과 함께 시작한 프로그램은 이후로 많은 주제를 다뤘다. 첫번째는 가정환경, 두번째는 더 몬스터를 창단한 계기와 요즈음의 급성장세, 세번째는 성형의혹(?),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할 오크 대장장이의 ‘보물’까지.
화면속의 김세진은 긴장을 하지 않고 모든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나갔다. 새삼 ‘화술’이라는 스킬과 ‘듣기 좋은 목소리’의 실용성이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 조리있는 말솜씨, 말끔한 얼굴이 합쳐진 화면속의 김세진은 자기자신이 봐도 젠틀하고 멋진 남자였다.
게다가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전 화에 비해서 시청률이 2.5배나 뛰었다. 대중의 반응도 호평일색이었고, 팔로워 수는 한번의 출연으로 무려 20만명이나 늘었다.
이 정도면 나르시즘따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생각을 했다는 뜻이아니겠는가.
“길드장님, 3시간 뒤면 경매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자아도취를 하고 있는 와중에, 문이 열리더니 조한성이 들어왔다. 깔끔하게 앞머리를 올린 그는 약간 긴장을 한 듯 손가락을 떨고 있었다.
“상황은 어때요?”
“하하. 장난이 아닙니다. 정말 오랜만의 보물경매라서 그런지, 현월경매장 상공에 헬기만 열 대가 배회하고 있답니다. 그보다 더 있었는데 안전문제 때문에 내렸다고 하네요.”
조한성은 백문이불여일견이라며 TV의 채널을 돌렸다. 지금은 주말 저녁, 예능을방영해야 할 공중파를 비롯한 채널들은 그러나 모두 현월경매장의 상황을 중계하는중이었다.
-오늘 저녁 8시, 현월경매장에서는 드디어 오크가 만든 역작의 경매가 시작됩니다. 10인의 국내 심사단은 물론 세계 대장장이 협회의 심사단도 만장일치로 ‘보물’판정을 내린 이 무기의 이름은······.
TV화면에 비친 현월경매장의 현장은 몹시 떠들썩했다. 당장 경매장이 위치한 세빛섬 주변으로도 수천 수만의 일반인이 모였고, 끊이지 않는 귀빈들의 출입으로 경호원들은 일을 쉴 틈이 없었다.
-네. 영국 최고의 기사라 불리는 '폰테르 아서'도 있네요. 아서는 SNS는 물론 한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하며, 보물을 쟁취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었는데요. 그는 김세진 단체장과 오크 대장장이에게 영상 편지를 보낸것으로도 유명······.아! 저기! 일본의 나라카 총리께서 방금 경매장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쫓기듯 급히 경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총리를 카메라가 찍었다.
김세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존심이다 뭐다해서 온다 안 온다 말이 많더니, 결국은 참석했구나.
“일본총리는 수행기사로 20명이나 데려왔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모두 고위기사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일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물건을 낙찰받겠다는 의지가 강한 듯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장비라 하더라도, 그것을 쓸 인물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또한 그 주인이 기사가 아니라면 한낱 재테크 용도로 전락할 위험도 있겠지.
그래서 세진은 여러 제약을 걸어 두었다. 구매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기사, 그 중에서도 오크 대장장이의 심사를 통해 실력이 부족한 기사는 탈락시키기로.
"그런가요?"
“예 그것보다 이제.. 준비하시죠.”
조한성이 넥타이 매무새를 다시 한번 다듬으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김세진은 조한성과 핸드폰을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동안 기다렸다.
그렇게 한 3분 정도가 지났을 때.
위이잉-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아 저는 그··· 나중에 갑니다. 어차피 저희 물품은 피날레에 있으니까요.”
당황하는 조한성을 두고, 김세진은 급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유백송의 전화였다.
비밀스런 정보를 교류하는데에는, 현월경매장의 경호로 인해 특수경찰국이 인력의 대부분이 빠진 오늘만큼의 적기가 없었다.
*
“···.”
김세진은 어이없어하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게 내가 알아낼 수 있는 최대한이다. 이 이상은···.
유백송이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놓인 서류봉투를 가리켰다. 그러나 세진은 그것 때문에 빈정이 상한게 아니었다.
“뭐, 제가 범죄자라도 됩니까?”
유백송의 집 내부에는 교도소 면회실에나 있을 법한 통유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니, 면회실에는 공기구멍이라도 있지. 이곳은 아예 밀실이라 대화도 핸드폰을 통해서 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다. 네 향기는 내 평정을 앗아가니까.
“···후.”
─일단 어서 확인해 보아라.
몹시 불만족스러웠으나 세진은 일단 서류봉투를 집어들었다.
─그건 우리 경찰국에서 비밀리에 했던 부검자료다. 경찰국의 가장 근저까지 뒤져보았지만 남은 것은 그것 밖에 없었어.
그는 천천히 서류의 내용을 탐독해갔다.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세 장 분량일 뿐. 그럼에도 단 한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그 서류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김재혁. 임무를 완수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 뱀파이어에게 사지가 뜯겨 살해당함. 사체에 혈액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원한으로 인한 살인으로 추정됨. ?나머지 내용은 폐기처리- ]
[김재혁의 혈액분석 결과 88%만이 인간의 성분으로, 조상 중에 아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됨.]
[진소정. 특수경찰국에 증인보호를 요청했으나 정보가 유출되고, 결국 뱀파이어에게 간살당함. 여기에 ‘어떤 남성과 긴 대화를 나눴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음. 그 대화의 내용은 그녀의 자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됨.]
[범행장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뱀파이어 가문 ‘바토리’의 심볼이 발견것으로 보아, 범인은 바토리 계 뱀파이어로 추정.]
[--내용 전체 폐기--]
목구멍에서부터 무엇인가가 치밀어 침을 삼킬 수 조차 없었다.
─···심란할 내용이 많을거야. 부검결과, 네 아버지는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이었어. 88%면 하프나 쿼터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니까. 게다가 네 어머니가 확실한 인간이었으니 너도 인간이니까 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돼.
유백송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세진의 귓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뒤적이다가, 이내 서류의 탐독을 멈췄다. 그리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유백송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혼란과 분노가 가득한 충동적인 눈동자였다.
"폐기는 못 알아내는 건가요? 삭제된 정보들이 아주 결정적인 내용일 것 같은데."
─어. 이 이상은 나도 불가능해. 지금 내 위치로는 여기까지가 최선이야.
“···지금 위치요?”
─어. 말했잖아. 나한테도 상사는···.
“그러면.”
김세진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모님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 몰랐던 전말은, 두 분의 최후가 모두 치욕적이었다는 것.
가슴 속에서부터 격랑처럼 치닫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격심한 진노였다. 분명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한 영향도 있을 터, 그러나 지금의 세진은 그딴걸 따질 정도로 이성적일 수 없었다.
─잠깐, 뭐하려고? 멈···.
그가 주먹으로 유리창을 내리쳤다. 쾅! 단단한 강화유리가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유백송은 황망해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법설계된 유리창인데 어찌 이렇게 쉽게······.
“그러면, 유백송 씨가 그 상사의 자리로 올라가면 되겠네요. 그죠?”
그는 걸리적거리는 유리창을 완전히 뜯어내고, 뒷걸음질치려는 유백송의 뒷목을붙잡았다.
“읏! 그, 그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그것보다, 어서 이거 놔라! 지금 너 내재량으로 감옥보낼수도 있···!”
“일단. 조용히 하세요.”
이성이 옅어진 김세진의 머리속을 가득 채운 것은, 정말 순수한 분노였다
“간단합니다. 내가 당신을 밀어 줄게요. 이제 그럴만한 힘이 어느정도는 생겼거든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 위에 누가 있던,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요. 그러면 다 해결 되겠네.”
“···.”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가를 억지로 비틀어올렸다. 그의 갈색 눈동자는 섬뜩하리만치 차갑게 번뜩였다.
유백송은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을 포기했다. 몸이 저절로 떨렸다. 백호의 일생 처음으로 느끼는,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의 기분이었다.
< 26. 진실? (1)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