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90화 (90/174)

< 26. 진실? (3) >

김한설.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3년 전, 21세에 특수경찰국에 입단했다. 특성과 재능, 처세술이 뛰어나 전임 국장의 신임을 받으며 고속승진을 거듭했으나, 입단 5년차가 되던 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파면을 당하게 된다. 허나 2년이라는 세월동안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뒤 복귀. 그로부터 약 8년이라는 근속 끝에 특수경찰국의 국장이 된 이후로, 퇴임한 지금까지 경찰국의 최고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김세진은 그런 그를 오늘 처음 보았다. 동안이 인상깊었다. 분명 나이는 40대 후반이라 들었지만 그 외모는 30대 초반이라 해도 믿을 만 했다.

‘..색은 나쁘지 않은데.’

눈동자가 발하는 색, 그리고 풍기는 아우라. 모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립’이었다. 부모님이 살해당한 사건을 은폐한 김한설은 악인이어야 한다는, 이유모를 막연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세진은 그것에 살짝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내가 일러뒀던 건 확실히 하고 있는겐가?”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주제모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김한설은 왠지 모르게 활기찼지만,그에반해 김유린은 어딘가 무거웠다.

“그래. 헌데 그렇게 진지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인기척을 느낀 김한설은 말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기척의 주인이 오크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허리춤에 매인 단검을 뽑았다.

그러나 그런 그를 김유린이 빠르게 제지했다.

그녀는 김한설이 당황할 정도로 우악스레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뭐, 뭐하는 거요?”

“영웅 오크잖습니까.”

“···영웅 오크라 해서 사람과 싸우지 않는 건 아니지 않소?”

“해결을 해도 제가 하니 집어 넣으시지요.”

김유린은 시리도록 단호했고, 김한설은 단검을 검집 속으로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는 오크의 눈치를 살피다가, 김한설을 슬그머니 밀었다.

“저, 이제 사냥도 얼마만큼 하였으니 먼저 가주시겠습니까? 이 이상은 힘드실겁니다. 저 오크는 제가 맡지요.”

“···어?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가. 나는 아직 팔팔한데.”

“아뇨. 가세요 이제.”

때아닌 철벽이었다. 김한설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자네가 그렇다면··· 그래도, 내가 말했던 것 유념하길 바란다. 중요한 일이야.”

그는 한마디를 남기고서 자리를 떠났다. 오크의 눈동자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좇았다.

“···오랜만이네요.”

김한설이 완전히 사라지자, 김유린이 두 손을 제 가슴팍에 가지런히 모은 채 오크에게 다가갔다. 오크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그냥 떠날지. 아니면 김한설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어볼 지.

그러나 오크가 후자를 하기에는 명백히 이상했다. 그래서 그는 말 없이 뒤돌아 섰고, 유린은 황급히 오크의 팔을 붙잡았다.

“저, 저··· 저···. 아니 가만히 좀 있어봐요. 얘기, 얘기좀..”

허나 오크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질질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된 유린은 연신 멈추라고 애걸복걸해야만 했다.

*

김유린은 오크를 끈덕지게 쫓아다녔다. 그러나 오크가 거슬리지 않아 할 만큼의 거리를 유지했다. 오크가 멈춰서면 같이 멈췄고, 걸으면 다시 걸었다.

근 한 달만의 만남이기 때문일까. 대화따위는 없이 그저 따로 거니는 것 뿐임에도그녀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다 돌연 오크가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린은 당황하지 않고 그와 눈을 마주하였다.

“···그 남자는 왜 만난 거지?”

“아? 그··· 일 떄문입니다. 별다른 사적인 이유는 없었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그녀는 왠지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무슨 일.”

하지만 오크는 조금 더 집착했다. 그에 김유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눈꼬리와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가는, 왠지 모를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걸 제가 왜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것보다, 오크가 그걸 왜 궁금해 하십니까?”

그녀는 엉덩이를 살랑이며 다가와, 오크의 앞에 섰다. 오크는 자신과 맞먹으려는 김유린에게 화가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궁금할 수도 있지. 오크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종족이다."

“흐흠~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번. 저랑 대련이나 하실래요?”

“···대련?”

“예. 별 건 아니고, 함께 실력이나 늘리자는 취지입니다. 당신은 오크를 이끌어가는 족장으로서, 저는 훗날 기사단을 이끌어야 할 리더로서.”

“그럼 그 이유를 알려줄 건가?”

잠시 고민하던 김유린은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비사항이긴 하지만 어쨌든지금 잔뜩 질투(?)하고 있는 오크는 어차피 몬스터니까.

“네!”

“···좋다.”

어차피 오크폼을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은 있으니, 오히려 남는 장사다.

“그럼 다음 주··· 아니, 해가 7번. 아니, 해가 5번 지고 뜨는 날에, 제가 그쪽 집 앞으로 찾아 갈게요.”

“알았다. 그럼 이제···”

“그 이유는 나중에, 첫번째 대련을 하고 나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즉시 김유린은 훨훨 떠나갔다. 제 딴엔 오크의 애간장을 태우는거라고 생각했다.

“···.”

오크는 어이없어하며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 * *

김유린과 헤어지고서 집으로 돌아온 김세진은 한 명의 손님을 더 맞이해야 했다.

하젤린, 그녀는 한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든 채 세진의 집으로 찾아왔다. 아직도 그녀는 당시의 오해가 풀리지 않았기에-습격한 놈들은 사실 뱀파이어였다고 말하기에는 괜히 하젤린까지 끌어들이는 것 같아, 그냥 오해를 하게 놔두었다-, 보답을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으음? 또 자기 나온 프로 재방송보고 계셨네요.”

거실 소파에 앉은 하젤린이 TV를 보며 말했다. 세진은 빠르게 채널을 돌렸다.

“···하하··· 취미는 이것 밖에 없는지라.”

“그래요? 근데 채널은 왜 돌리세요? 같이 봐요. 취미는 함께해야 더 재밌는걸요?”

하젤린은 김세진의 손아귀에 쥐어진 TV 리모콘을 뺏고서 다시 채널을 돌렸다.

-김세진 씨, 역시 요즘 장난이 아니네. 더 몬스터의 성장세가 지금···

출연진들을 모셔 놓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예능 토크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본래 저 프로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단독출연이 없는데, 김세진은 당당히 혼자서 모든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와. 역시 이 시대의 셀럽이시네요 세진씨는.”

“..놀리지 마십쇼.”

“아, 들켰네.”

처음에는 그저 놀릴 의도였던 하젤린이었지만, 그러나 곧 점점 예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메이크업을 한 김세진의 수려한 얼굴은 카메라·조명과 썩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옷가지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튼실한 근육과 유머러스한 말솜씨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뭐야, 벌써 끝났어?”

그렇게 멍하니 웃으며 보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와··· 세진 씨, 이것 때문에 그때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셨었구나··· 그럴 만 하네. 역시 마성의 남자답네요. 여기사가 뽑은 이상형 1위다워.”

하젤린은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저 혼자 납득했다.

“이상형 1위? 그건 또 뭐예요?”

“모르셨나? 그쪽 유명한 기사잡지에서 3개월 째 이상형 1위 하고있어요.”

“···크음.”

괜히 쑥스러워진 그는 뒷목을 긁적이며 숨겨지지 없는 미소를 지었다.

“후훗, 귀여우시네요. 근데 외모가 아니라, 능력빨로 1위 먹은거니까 그렇게 좋아하실 필요는 없으신데요? 잘생긴 엘프기사들은 충분히 많으니까.”

“···알고 있거든요?”

“하핫, 그래요? 아, 맞다. 이거 선물이에요.”

하젤린은 눈을 가늘게 좁힌 그를 보며 웃다가, 가방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세진은 차를 홀짝이며 선물을 받았다.

“아티펙트예요.”

“···아티펙트요?”

“네. 아주 강력한 성욕 억제 기능이 있어요.”

순간 그는 입에 고인 차를 뿜을 뻔했다.

“..크흠. 근데 갑자기 왜···.”

“요즘 세진씨 성욕억제포션 재료를 너무 많이 주문하시던데. 그걸로 골머리 앓고계시는 거 아니었어요?”

세진이 상자를 열었다. 간단한 팔찌형태의 아티펙트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포션 많이 복용하면 몸 안좋아져요. 그러니 차라리 이거 쓰세요. 성능은··· 뭐, 세진 씨가 만드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세진에게 직접 팔찌를 끼워주었다. 하젤린을 닮은 새하얀 색이었다.

"..이걸로 성욕이 해소됩니까?"

“적당히는. 그렇다고 제가 직접 풀어드릴 순 없잖아요?”

하젤린이 야릇한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라이칸슬로프로 진화한 세진에게는, 단지 말뿐일지라도 엄청난 자극이었다. 순간 몸을 크게 떤 그는 짐짓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허허.. 고마워요.”

“뭘요. 제가 받은게 훨씬 많은데.”

하젤린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 예.”

세진은 따라 일어나 현관까지만 함께 걸었다.

“잘 있어요.”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세진의 널찍한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고서, 현관문을 나섰다. 세진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앞태만큼 아름다운 뒷태였다.

위이잉-

그때,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유세정이 보낸 메시지였다.

“···.”

그녀가 보낸 메시지의 내용은 너무나도 살가웠고, 그 탓에 세진은 이유모를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

보름달이 뜨는 밤.

라이칸슬로프의 본능은 여간 참기 힘든 종류가 아니었다. 자신은 이제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회의감도 밤에는 불쑥 찾아왔다.

그럴수록 분노가 치솟았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깥을 나돌았다.

늑대로 변한 채, 닻빌을 쬐이며 고층빌딩 사이사이를 넘어다닌다. 늑대의 각력은 몹시 대단하여서 단 한 번의 도약으로 10층 높이의 빌딩을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질주하고 도약하며 살결을 훑는 밤바람을 느끼고 있노라면, 최소한 우울함은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 있었던 일을 내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상관이 없었다.

“···후아.”

그러다 보니 어느새 높이 솟은 빌딩의 옥상에 도달했다. 높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다 보니, 어느새 이성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디야?”

그는 아마 미스릴보다 단단할 손톱으로 정수리를 긁적거리며 옥상의 난간으로 향했다. 까마득한 아래, 대로변에는 오직 암흑만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허나 은빛 네온이 발하는 문자가 어둠 속에서 도드라졌다.

‘Romance of dawn’.

바토리가 거주한다는 호텔이었다. 세진은 순간 당황했다. 의식속에 남아있던 정보를 자신의 무의식이 활용했나?

그러나 여유롭게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옥상을 통하는 철문 너머로 다수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으니.

재빨리 발을 굴러 자리에서 벗어나려던 세진은 잠시 멈칫했다.

최소 열은 넘어보이는 기척이지만, 혼자서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놈은 끼어있지 않다.

‘···탁기의 고리.’

그는 철문을 응시하며 자신의 스킬을 떠올렸다. 한 놈, 딱 한 놈만 생포할 수 있다면, 놈들의 정보를 어느정도 알아낼 수 있겠지.

콰앙-!

철문이 굉음을 내뿜으며 열렸다.

“..뭐야?”

열 명의 하수인들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결계 속으로 진입했다는 괴생명체를 찾았다.

“···비행야수가 들어왔나 본대요?”

하수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도’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ㅡ 주변을 내리쬐던 달빛이 일렁였다.

마치 숨어있는 무엇인가를 달빛이 밝혀주는 것처럼······

“누구냐!”

사도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흉악한 손톱이 서늘한 궤적을 그리며 하나의 신형을 무너뜨렸다. 단 한번의 일격, 그러나 손톱은 사슬처럼 이어져 근처의 뱀파이어에게로 전이되었다.

“끄아아악!”

“으아악!”

찰나의 순간에 아홉의 비명이 하늘 높이 울려퍼졌다.

동료가 모두 즉사하자, 사도는 경악하며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망막 앞에, 달빛을 반사하는 ‘야수’가 한 마리 있었다.

"안녕."

은색 눈동자와 달빛 갈기. 툭 튀어나온 짐승의 주둥이와 날카로운 눈매, 고운털, 거기에 말까지 하는 이 야수는.

늑대, 무척이나 아름답고 유려한 달빛 늑대였다.

“···.”

그러나 뱀파이어에게는 그 무엇보다 패악적일 형상이었고, 사도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고 말았다.

< 26. 진실? (3)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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