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Heroic (5) >
김세진은 빛살처럼 도약하여 운석의 언저리에 도달했다. 그 순간 운석에서 뿜어져 나온 초고열이 전신을 녹일 듯 휘감았다. 아찔한 열화에 애써 만들어낸 갑옷이 촛농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당황한 그는 역전의 전사는 물론 레비아탄의 비늘마저 활성화했다. 그제서야 모든 열기가 씻겨지고, 그는 운석을 향해 다시금 손을 내뻗었다. 어둠으로 들끓는 표면은 우둘투둘하고 뜨거웠다.
잠시 이 운석을 어떻게 없애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이내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굳이 운석을 주먹으로 때려부수거나 할 필요는 결코 없었다.
‘마나지체’.
자신은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힘으로 운석의 성질과구성을 변형시키면 된다. 살상력은 0으로 수렴하게, 그러나 시청각적인 요소는 그 어느 무엇보다도 화려하고 흉험하게.
생각을 마친 그는 운석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고요했던 운석이 우우우웅- 소리를 내뱉으며 표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김세진에게는 오히려 믿음직한, 그러나 멀리서 지켜 보는 시민들에게는 더 없이 불안한 변화였다.
“뭐, 뭐야!”
“터진다!!”
새까만 운석이 터질 듯 꿈틀거린다. 마치 불덩이가 제 불길을 방출하려는 것처럼.시민과 기사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망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다음 이어진 김세진의 행동은 그들의 모든 절망을 종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두 손으로 운석을 인 채, 다리 아래로 마나를 방출시켜 하늘 높이 활공해갔다. 운석과 함께 스러지기라도 할 작정인 양, 더 높이, 더 높이. 범인이라면 감히 상상조차도 못했을 용단이었다.
그에 모든 사람들은 도망갈 생각도 잊고 그 꿈결같은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작 한 명의 사람이 하늘을 들어올리는, 그야말로 영웅적인 모습이었다.
‘이쯤··· 됐겠지.’
운석을 밀고 밀어 창공의 중심에 다다른 그는 주먹이 부서져라 움켜쥐고선? 이미 성질이 변화된 운석을 향해 정권을 내찔렀다.
콰아아아앙-!!
순간. 세상이 거대한 폭음에 의해 뒤삼켜지고, 운석은 백색으로 명멸하며 수도 없이 많은 폭발을 일으켰다. 거센 충격파가 불어 건물이 무너지고 잔해가 흩날린다. 기사들은 우선 시민들이 해를 입지 않게 검을 휘둘러 흉악한 파편부터 처리해나갔다.
“···아.”
그렇게 수 십 번 동안이나 계속되던 폭발이 어느새 끝나고. 시민들 사이 가느다란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높은 창공에서, 진세한이 두 눈을 감은 채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
운석을 터트린 김세진은 온몸의 힘을 빼고 마나를 갈무리했다. 사실 갈무리할 것도 없었다. 진심으로 모든 마나를 남김없이 소진하여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으니.
어쨌든 그렇게 마나가 제 힘을 잃자 고공낙하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기압에 숨을 못 쉴 정도로 빠르게 추락하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줄어 편안한 나풀거림으로 변했다. 아마 하젤린의 마법이겠지.
샤르륵-
낙엽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는,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따위의 의미를 담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이제 남은 건 대미를 장식할 하젤린의 마법 뿐.
“괜찮아요?!”
허나 별안간 찢어질 듯한 비명이 귓가를 강타했다.
귀가 아플 지경이어서 실눈을 살짝 뜨니, 몹시 놀란 얼굴의 하젤린이 시야를 가득메우고 있었다.
“괜찮냐고요!”
김세진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는 눈물까지도 글썽이며 그의 온 몸을 뒤흔들었다. 이 여자가 왜 이래. 살짝 당황한 김세진은 결국 쿨럭이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수많은 시선이 이 쪽으로 집중되었다.
허나 김세진은 이대로 죽어야 한다는 집념으로, 손을 애절하게 떨며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리고는···
“···뭐해요빨리가사상태로만들어달라니까.”
그녀만 들을 수 있게 속사포처럼 아주 자그맣게 속삭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입을 O모양으로 벌린 하젤린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서 영창을 외웠다.
“고마워요.”
그는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적절한 크기의 소리로 말했다. 사망 직전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연출과 동시에, 그녀가 만들어낸 마나의 기류가 김세진의 콧구멍 속으로 쑥 들어갔다.
순식간에 의식이 몽롱해진다. 이건,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
그렇게 그는 눈을 까뒤집고서 기절-사망-했다. 흰자만 보이는 모습은 영웅의 최후 치고는 뭔가 볼썽사나웠기에, 하젤린은 조심스레 그의 눈꺼풀을 닫아주었다.
그 후, 세상에는 정적이 가라앉았다. 많은 사람과 기사들이 있었지만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편안히 누운 영웅의 최후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녹아 내린 갑옷과 까맣게 타버린 피부. 편안히 감은 눈과 입가에 새겨진 마지막 미소.
그는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해야 했으며, 도대체 왜 저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말인가.
하젤린은 그런 그들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흐윽···.”
괜히 어색한 연기를 하며 그의 가슴팍에 엎드렸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두 사람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별안간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처지가 된 하젤린은 당황을 금치 못했지만···
“비켜주세요!”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다행히 김선호가 준비한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사람들을 물리친 그들은 구급차에 김세진을 싣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
특별한 환자로 인하여 출입 자체가 엄금된 한국대병원의 정문에 세계 방방곡곡의취재진들이 집결했다. 그들은 저마다 단정하고 튀지 않는 옷차림으로, 기자 답지 않은 고요를 유지하며 언젠간 있을 의사의 발표를 기다렸다.
“하아.”
사람은 무척 많았으나 이따금씩 울려퍼지는 것이라고는 흐트러진 한숨소리 뿐.
기적적인 생환이든, 비극적인 죽음이든. 눈물이 흐르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 감히 그 누구도 영웅 생사를 두고 소란을 피울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만큼을 발을 동동구르며 기다렸을까. 한국대병원의 자동문 너머, 창백한 안색의 교수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기자들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서 곧 도래할 그를 기다렸다.
"김학도입니다."
포션의 효과를 한계까지 끌어올려 수술에 활용하는 것으로 명망이 높은 ‘김학도’ 노교수는 취재진을 마주하며, 입을 열기 전에 일단 침을 꿀꺽 삼켰다.
“···기사 진세한에게 치명적인 외상은 없었습니다. 수술을 할 필요도 없이, 포션이면 나을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그 첫마디에 기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교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씁쓸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한계치를 아득히 뛰어넘은 마나를 쥐어짜낸 탓에, ‘마나폭주’ 현상이 발생···”
그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3월 17일 월요일 오후 8시 51분. 기사 진세한은 공식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플래쉬도 터지지 않았다. 빗소리만이 처연하게 울리는 공허한 공간 속에서, 기자들은 그저 고개만을 무겁게 숙일 뿐이었다.
* * * *
공식적으로 진세한은 사망했다. 그 이후는 ‘영웅의 죽음은 희망이라는 불꽃을 불사지른다’는 김유손의 말처럼 되었다.
우선 전국을 넘어 전세계적인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광화문의 광장에선 시민들이자발적으로 진세한 영결식장을 조성하였고, 세계의 헤드라인은 진세한이라는 영웅을 앞다투어 보도하였으며, 한국 정부에서는 그의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뤄야 할지 고민했다.
“진세한은 끝까지 영웅으로서 전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진(眞)무도학파와, 공익과 사회를 위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헌신한 삶의 궤적은 유산으로 남아 세계를 밝힐 것입니다.”
이곳은 진세한의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눈물을 흘리며 추모사를 듣고 있다.
‘진짜 너무 큰 난리가 났는데?’
김세진 또한 유세정과 함께 참석을 하였는데, 그는 일이 너무 커진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잊을 수는 없었다.
“별이··· 졌네.”
추모사가 끝나고, 유세정이 김세진의 어깨에 기대어 씁쓸히 중얼거렸다. 김세진은 차마 무어라 할 말이 없어 그저 고개만 까딱 끄덕였다.
“이 사람, 명예의 전당에 오른대.”
“···그래?”
“응.”
기사계의 노벨상이라 불릴 정도로, 명예의 전당은 기사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상패이자 최고의 훈장이다. 전세계의 기사를 대상으로 심사하고 선정되기에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인 기사는 고작 5명밖에 없다.
“잘 됐네.”
김세진은 그렇게 말하며 진세한의 사진 앞에 국화를 꽂았다.
“···부디 그곳에서는 영원히 행복하길.”
아무 생각없이 묵념을 하는데, 유세정의 진지해도 너무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 * * *
그렇게 2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감성적인 추모행렬이 사그라들자, 이번에는 이성적인 음모와 의심이 대두했다. 진세한의 죽음의 배후가 무엇인가, 하는 의심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그 배후가 뱀파이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민중과 기사들은 다시금 분노로 들끓었다.
뱀파이어를 말살해야 한다는 강경시위가 발생함은 물론, 극히 이례적으로 대통령조차 유감을 표명하며 ‘배후를 찾아내어 책임을 물겠다’는 의사를 명명백백 밝혔다.
그렇게 바람 잘날 없는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이른 오전.
푸르스름한 빛과 서늘한 공기에 김세진이 눈을 떴다. 옆이 뭔가 허전하여 주변을 둘러보니, 유세정은 이른 아침부터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어디가려고?”
그가 하품을 하며 물었다.
"응."
역시 화장에 집중한 여자는 바쁘다. 그러나 그 짧은 대답에 세진은 살짝 빈정이 상했다.
"뭔데? 어디 가는데?"
"무도회."
"...뭐?"
김세진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무도회. 일단 어감부터가 상당히 좋지 않다. 아니,구리다. 일단 무도회면 남녀끼리 춤을 춰야 하지 않은가.
“거길 네가 왜 가?”
“응? 아, 별 거 아니야. 그냥 100대 기업끼리 모이는 무도회인데··· 아마 이번 사건때문에 엄청 정적(靜的)일거야.”
“···그래? 근데 왜 혼자 준비해? 나는 가면 안되나?”
그가 괜히 뒷목을 긁적이며 물었다. 유세정은 왠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 싶은데······ 아버지랑 할아버지도 오셔.”
“···”
김세진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녀는 이상하게 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꺼린다. 두 분이 굳이 결사반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 뭐. 사실 나도 약속 있거든. 여자랑.”
“···뭐?”
제대로 빈정상한 김세진이 다소 유치한 반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세정이 정색하며 미간을 좁혔다.
“뭔데? 또 누군데.”
“하젤린 씨랑 밥 약속. 왜, 난 가면 안 돼?”
“아~ 아냐. 갔다와. 갔다와.”
“···음?”
그러나 이건 예상치 못할 정도로 간단한 응낙이었다. 김세진은 살짝 멍해졌다. 사실 밥약속은 농담이었는데···.
“오빠가 만나서 위로 좀 잘 해줘. 언니 많이 힘들테니까.”
“···?”
김세진의 정수리 위로 물음표가 띄워졌다. 위로? 힘들어? 갑자기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애인분이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 오빠가 제대로 위로 해줘. 아,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고.”
어느새 화장을 마친 그녀는 세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코트 하나를 걸치고 핸드백을 메더니,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간다.
그는 멍하니 유세정의 뒷모습을 좇았다. 하젤린에게 애인이··· 도대체 무슨?
“···설마?”
순간 어떤 생각이 번뜩 떠올라, 김세진이 반신반의하며 핸드폰을 퍼뜩 꺼냈다.
대중적인 포털사이트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으나··· ‘새벽 페이지’에는 도배되어 있었다.
엘프와 기사간의 애절하고도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 33. Heroic (5)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