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1장】
강인이 다시 눈을 뜨고 나서 한달여 정도가 지난 듯싶다. 처음 보는 방 안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강인을 보며 루크라 칭했고 도련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자신들끼리 있을 때만 하는 이야기 같았지만. 자신을 망나니라고도 칭했다.
강인은 그들이 말하던 망나니란 칭호가 다시 생각나자. 괜스레 한 숨이 터져나오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친놈...."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그러자 강인의 앞에 연실 부들부들 비에 젖은 강아지마냥 떨고 있던 하녀가 몸을 움찔하자 루크의 입에서 더욱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너한테 욕한 거 아니니깐 오해하지 말고.. 그리고 이름이 메리라 했던가?"
"네..네..그렇습니다. 도련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마..망나니란 말 다신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릎을 꿇며 빌고 있는 하녀를 보며 강인으로선 참으로 난감한 기분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하필 루크에 대해 험담을 하던 중 자신과 눈을 마주쳐버린 그녀, 급히 그녀와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은 도망갔다만 그녀만큼은 너무나 놀랐는지 도망갈 타이밍을 놓쳤나 보다. 그 상태로 얼어버리며 어느새 지금처럼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괜찮으니깐 이제 좀 슬슬 일어나줄래?"
"그..그게...."
눈물까지 흘리는 하녀의 모습에 차마 더 말할 게 없는 강인으로선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자신을 향해 힐끔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내젓거나 또는 혀를 차는 모습에 다른 하녀들이 보인다. 결국 또 이상한 오해를 받지 않을까 싶은 강인으로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괜찮다니깐..."
등을 토닥여주려 손을 들어 보이자. 하녀가 기겁을 하며 움찔했다. 이제는 벌벌 떠는 새끼 고양이처럼 그녀는 강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통 겁을 집어 먹고 있었다.
"미치겠네..."
강인으로선 자신의 몸에 주인이였던 루크아스란을 향해 정말 갖은 욕을 다 퍼붓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랬다. 루크 아스란, 이 몸 주인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자신이 살던 지구와는 다른 시간의 세상이었고 아직 귀족과 평민 심지어 노예까지 있는 신분제 사회였다. 게다가 루크는 이 세상에서도 두 명의 공작 가문의 집안 중 하나뿐인 장손이었으니. 아직 나이가 어려 계급을 받지 못했지만 공작 가의 도련님이란 신분은 일반 평민들에겐 너무나 크나큰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루크 아스란은 정말이지 아주 망나니였다. 이제 갓 16살의 나이가 된 그는 2년간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폭력, 도박, 음주, 심지어 성희롱까지 아주 온갖 난동이란 난동을 다 부리고 다니는 망나니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비난을 온통 강인이 다 받고 있음에 억울해도 너무나 억울한 강인은 속에서 자꾸만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필이면..이딴 놈이...."
강인은 자신도 모르게 한탄을 하자. 하녀는 뜻 모를 말에 더욱 두려워한다. 이제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후....정말 괜찮으니깐 울음 뚝 그치고 다음부터 안 하면 돼! 알겠지? 그러니깐 제발 좀 그만 울고 그만 일어나주면 안 될까? 응? 이러다 또 오해 받는다고"
이제는 오히려 강인이 비는 형식이었다. 이러고 있다 자신의 평판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았다. 그렇기에 강인으로서 이 루크의 몸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만 들어와 있는 이상 최대한 평판을 바꾸고 싶었다.
"저..정말인가요?"
여전히 훌쩍이면서도 두려움에 떨던 하인 메리가 서서히 눈물이 멈춰갔다. 강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자 메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정말..."
"아니야 아니야. 다음부터 조심만 해줘 알았지?"
"예..도련님.."
"그래 어서 가봐."
여전히 겁을 먹은 듯싶었지만. 조금 나아졌는지 하녀는 차츰 뒷걸음 치더니 이내 몸을 돌려 총총거리며 달려간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 강인이 한 숨을 푹 내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에휴.."
잠깐 밖에 나가 바람 좀 쐬었건만 또 이러한 오해가 생겨버렸다. 근 한 달여 이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강인이였다. 자신에게 조금 물이 튄 것에 벌벌 떨던 하녀 하며, 길을 막았다며 죄송하다던 하녀 하며 정말 근 한 달여간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 루크는 점차 이 몸으로부터 불만이 커져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행실이 그지 같았으면 별것도 아닌 것에 이리도 하녀들이 두려워 하는지 강인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늘만 벌써 한숨을 수십 번을 토해낸것 같았다.
그러면서 강인은 이 루크란 아이의 부모에 대해 생각했다. 라이아 아스란과 사무엘 아스란 그리고 자신의 6살 정도의 연상인 레이니 아스란과 4살 동생인 세리스 아스란 이렇게 네 가족의 얼굴이 생각났다.
사무엘 아스란은 도중도중 흰머리가 자리 잡은 전형적인 중년의 남성이었으며 얼굴에는 꽤나 엄격해 보이고 고지식해 보이기도 한 남자였다. 그와 루크에 닮은 점이라곤 붉은 색 모발을 가진거 뿐으로 혹여나 루크의 아버지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닮은 점이 그닥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그의 얼굴엔 더이상 자신이 아들로서 느껴지지 않은 듯싶었다.
그래도 걱정은 되었는지 강인이 다시금 눈을 떴을때 몇 번 자신의 방안에 찾아와 괜찮으냐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정말 단답형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고 어느새 발길을 뚝 끊은 그의 모습에 강인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그리고 라이아 아스란 루크의 어머니로서 중년의 나이임에도 그 미모가 꽤 고은 얼굴을 가진 여인이었다. 오히려 루크는 어머니의 얼굴을 꽤 많이 닮은 듯 루크와 닮은점이 많았는데 커다란 눈과, 얇은 이목구비가 그러했다.
그런 그녀는 꽤 루크를 애지중지 여긴 듯싶었다 유일한 아들이었기에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건 사고의 슬슬 그녀 역시 반쯤은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루크를 바라보는 눈에 불신과 원망이 가득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레이니 아스란과 세리스 아스란 강인으로서는 아직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레이니 아스란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것을 종종 보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다만 다가오지 않았다. 말을 걸지도 않았다. 식사시간 때 만나 얘기를 나누려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단답형이었으니 제대로 이야기 한 번 나눈적이 없었다. 심지어 처음 보았을 땐 벙어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것만 아마 루크를 꽤 싫어하는 듯싶었다. 세리스 아스란 역시 레이니 아스란과는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에휴..."
가족들의 생각에 강인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는지 몰랐다. 말로는 도박, 음주, 성희롱 등 갖갖은 사고를 터트렸다고 하는데 강인으로서는 아무런 기억조차 없으니 더 답답할 나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점은 계속해서 루크의 몸에 있다보니 차츰 루크가 행했던 기억들이 조금씩은 기억이 나는 듯 싶었다.
"그럼 뭐해..에휴...이 멍청한 놈아 이렇게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왜 그러고 사냐."
강인은 침대위에서 몸을 일으키곤 침대 옆에 있는 전신 거울을 향해 말했다.
확실히 잘 먹고 잘 자랐는지 아직 어린 티가 있다만 잘생겼다. 오뚝한 코 하얀 피부 커다란 눈 그리고 분위기는 적색의 머리칼은 어디 만화에서나 볼듯한 귀공자 스타일이었으니 얼굴은 꽤 마음에 들었다.
"아 망나니 새끼는 더럽게 잘생겼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었을까?"
아직 지난 루크의 대한 기억을 완전히 알지 못해 강인으로선 불만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한 달전 겨우 다시 눈을 뜨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처음 보는 사람들 처음 듣는 언어 강인으로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얼마나 지났던가 또다시 머리가 엄청 아팠던 기억이 있었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이곳에 언어가 기억나기 시작했고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나기 시작했다. 마치 때가 되면 차츰 돌아온다는 것을 말해주듯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인에게 흡수되는 듯 싶었다.
강인으로선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억들이었다. 마법이며 마나이며 몬스터들 까지 책으로만 봐왔던 판타지 세계가 정말 실존하는 세계였다는 것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야.."
강인은 전신 거울에 비친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