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1장】
"무슨 일이야?"
방문을 열고 들어온 하녀에게 루크가 묻자 하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도련님 주인어른께서 서재에서 잠시 뵙고 싶다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네."
하녀 예린의 말에 루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곧 갈게 가봐."
"예."
뒷걸음치며 빠르게 방을 나가는 예린을 보며 루크는 헛 웃음을 지어보이곤 천천히 방 밖을 나섰다. 총 2층으로 된 저택에 왼쪽 끝방 그 곳엔 평소 아버지인 사무엘이 일을 하는 서재가 있었다.
서재 앞 루크는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부터 중저음이 인상적인 사무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조심스럽게 서재를 열자. 수 많은 서류들 사이에서 여러 서류들을 보며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 사무엘의 모습이 보였다.
루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사무엘이 잠시 루크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곧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눈으로 가리켰다.
"앉거라."
"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무엘은 뭐가 그리 바쁜지 온통 글씨로 된 서류들을 들어보이며 한창 사인을 하기도 하고 인상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서류에 자신의 사인을 하고 다시금 사무엘의 시선이 루크게에 향했다.
"미안하구나. 불러놓고 말이 없어서 가을의 초입이라 도시에 신경쓸일이 많아"
"그랬군요."
사무엘은 책상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한모금 마시며 목을 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식당에서 레이니가 했던 말들 진심이더냐?"
"..."
서재로 오면서 가족들이 다시 물어볼거라 생각했다. 루크는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알았다. 여전히 사무엘은 의심의 눈초리로 루크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점 또한 루크로서는 이해가 되었다. 그 동안의 저질렀던 예전 루크의 과오는 그만큼 사무엘이나 다른 가족들에게 불신을 주기엔 충분했다. 오히려 레이니처럼 단번에 자신을 믿어준게 이상한거였다.
"네 맞아요. 변할거에요"
루크는 모든 생각을 정리하고 진중하게 사무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다시금 찾아온 정적에 루크는 서늘한 가을에 초입인대도 이마에서 땀이 흘러나오는 듯 싶었다.
"흠.."
잠시간의 정적이 끝나고 사무엘이 다시 한번 차로 목을 적셨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네가 했던 모든 행동들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느냐?"
짐짓 호통치듯 말하는 사무엘의 말에 루크는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근 한달여간 사무엘은 루크를 봐도 모른척 무시했다. 마치 없는 아들 처럼 호통한번 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였다. 예전 루크의 기억으론 호통도 많이치고 대화도 많이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루크가 자라나고 그의 과오가 도를 넘어서기 시작할때 부터 사무엘은 오히려 무관심을 택했다. 어쩌면 루크로서 그 것을 원했는지 모르겠지만 속마음은 타는듯 아팠을거라 생각한 강인이였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변하겠다는 것이냐? 또 말로만인 것이냐?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느냐?"
물꼬가 트인듯 사무엘의 말이 많아졌다. 강인은 루크의 몸에 들어온 후로 이렇게 아버지인 사무엘의 말을 많이 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만큼 사무엘은 루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실망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아스란 가문의 검으로 다져진 대장군의 가문이지요."
"그렇다."
루크의 말에 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아스란가의 검술을 배울수가 없지요..그렇다고 마법을 배울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지요. 대장군이든 장군이든 심지어 일반 병사든 이 약한 몸으로는 이 아스란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버지."
"..."
사무엘이 침묵했다. 루크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였다. 뒤이어 사무엘은 찻주전자에 차를 다시 딸곤 다른 컵을 루크에게 주며 차를 따르자. 루크는 차를 한모금 마시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기 대문에 이 가문을 이어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오히려 레이니 누나가 더 어울리는 적정자라 생각해요 세간에 들려오는 소문으론 천재라면서요 그리고 저와는 다르게 성품도 뛰어나고 사교계에서도 좋게 평가 받기도 하고 저보단 더 어울리는 재목이지요."
"그렇지.. 하지만 레이니는 안타깝게도 여자다 언젠가 출가하게 될 몸이야."
사무엘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게 아니였다. 루크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아즈문 제국의 두개의 공작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아란가 그리고 저희 아스란 가이지요."
"그렇다."
"이정도의 위치에서 데릴사위 하나 얻지 못하겠습니까? "
루크의 말에 사무엘의 표정임 심각해져갔다. 루크의 말은 곧 이 가문을 이어받길 포기한다는 소리였고 그 말은 곧 가문을 떠나겠다는 소리도 같았다.
사무엘은 한껏 굳어진 표정으로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탐이나지 않더냐?"
진중한 사무엘의 말에 루크로서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강인으로서는 이 좋은 집안이 탐이났다. 이어받을 수 만 있다면 평생을 떵떵 거리고 살수 있는 금은보화가 잔뜩이였고 명예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 루크로서는 과연 그게 맞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그러자 씁쓸히 미소를 지은 루크였다.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전.."
괜시리 목이 메여온다. 예전 루크가 생각해왔던 말 들, 꽁꽁 숨기고 사고를 치며 다니며 사무엘이 대화의 문을 열게되면 하려던 말을 강인이 대신 말하려 했 것 만 루크의 감정이 다시 강인에게 이입 된 것일까? 알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듯 싶었다.
"..."
사무엘도 눈물을 흘리는 루크를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울음이 그칠때까지 기다려주고 기다려줄 뿐이였다.
"원하신다면 떠나겠습니다."
잠시 목을 가다듬고 루크가 입을 열었다. 사무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조용히 찻잔으로 향하는 손이 떨리는 듯 싶다.
"루크!!"
그때였다. 누군가 서재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미쳤어!"
놀란 루크가 뒤를 돌아보자 뒤엔 레이니가 흙 먼지를 뒤짚어 쓴체 씩씩 거리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화가 난 것일까? 그녀의 표정이 꽤나 무섭게 느껴졌다.
"누나..?"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떠나겠다니! 어딜가! 말했잖아 널 버리지 않겠다고! 그런데 넌 왜!! 자꾸 나에게서 떠나려는 거야!!"
레이아의 외침에 루크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서재로 들어올때만해도 강인은 그저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연금술이라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며 그렇게 넘기려했것 만 전 주인인 루크의 감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 듯 싶었다. 점차 전 루크의 기억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동화 되는 듯 강인으로서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내가 진짜 루크가 나고 강인이였던 생활은 꿈이 아니였을까? 하는 혼란까지 오는 듯 싶었다.
뒤이어 갑작스런 소란에 어머니인 라이아와 동생 세리스까지 서재 앞으로 모이게 되자. 루크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