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10화 (10/412)

【10회. 3장】

태중혼약, 이 곳은 아직 권력은 물론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태중혼약이 번번이 일어나는 세상이었다. 심지어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근친혼도 서슴치 않은 그러한 곳에 공작가의 장남인 루크 역시 평소 가문간에 친분이 깊었던 지아란 후작가에 여식과 태중혼약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였다. 남에 일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루크는 그 태중혼약이란 것에 자신이 엮이게 되자. 그러려니 하며 넘길 수 가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에 난감할 뿐이였다.

"루크.."

레이니의 표정이 다시 심상치가 않다. 슬픈 눈으로 루크를 바라보자. 루크로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때엔 왜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인지 엘레니아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루크였다.

"먼저 일어날게요.."

결국 레이니가 식사를 다 끝내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며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런 레이니의 모습에 세리스가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어보인다. 밝았던 식사 분위기를 망친 세리스여서 꿀밤이라도 한대 박아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루크였다.

어쩔줄 몰라하는 루크의 모습에 사무엘이 냅킨으로 입술을 닦아내며 루크를 불렀다.

"루크."

"예.."

"갑자기 엘레니아 얘기도 나오고 해서 분위기가 좀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너에게 제안 할 것이 하나 있단다."

"제안이요?"

사무엘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라이아도 알지 못하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네가 가문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레이니도 너도 좋게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떤 방법이죠?"

"이 방법이라면 네가 마음 편히 가문에 대를 이어 갈 수 있고 레이니 역시 너와 떨어지지 않는 방법이다. 아마 레이니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으니 하는 말이다."

사무엘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사무엘이 물로 입을 행구곤 루크를 바라보았다.

"근친혼이다."

"...예?"

루크가 잘 못 들었다는 듯이 다시 되물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루크로선 도저히 생각하지 않았 던 방법이었기에 지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사무엘은 거리낌 없이 제안해왔다.

"레이니가 싫은것이냐?"

"그..그건..아닌데.."

레이니가 싫은 건 아니였다. 오히려 과분할정도라 생각된다. 하지만 근친혼이라니 가족간의 결혼은 아직 지구에서의 생활을 했던 루크로서는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족간의 그 혼인이 가능한가요?"

루크가 다시 되 묻자 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근래에는 많이 없어진 일이기도 하다만 아직 남아있는 풍습이지 특히 너처럼 마나의 저주를 받은 남자아이가 장남일때 말이야. "

사무엘의 말은 이러했다. 가문의 비전이 있는 가문들은 그 대를 잇기 위함도 있었는데 특히 여성이 가문의 비전에 재능이 있으면 왠만해선 다른 가문에 보내지 않고 친척들이나 자신의 가족들과 결혼을 시켜 비전의 유출을 막는 일이 번번히 일어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사무엘은 가문의 비전검술에 재능이 있는 레이니를 출가 시키기엔 아까운 인재이기도 했다. 물론 레이니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요 근래의 레이니의 모습을 본 사무엘은 괜찮은 듯 싶다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으니 바로 지금 북방에 있을 자신의 할아버지인 데미아스 아스란이 자신의 친우와 맺은 태중혼약이었지만 지금 그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가문의 비전검술과 레이니와 루크의 행복이기도 한 사무엘이였다.

"부담스러워 할 필요도 없다 너와 레이니가 좋다고만 하면 난 언제든지 허락해 줄 수 있으니. 라이아 당신 생각은 어떻소?"

이번엔 라이아를 향해 사무엘이 묻자 라이아도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엘레니아가 많이 걸리네요... 아버님이 지크문드 지아란님과 했던 약속이 있잖아요."

그녀의 대답에 사무엘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다시 루크를 바라보았다.

"엘레니아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니 짧게 얘기 해주마. 엘레니아는 지아란후작 가문에 여식이란다. 레이니와 같은 나이 또래 아이지 내 아버지와 지크문드 지아란님은 어릴때 부터 꽤나 돈독한 사이셨다. 지금 북방에서도 같이 아즈문을 지키고 있지. 처음엔 데미아스님과 지크문드님이 나를 지아란 가문과 혼약시키려했지만 둘다 남자를 낳게 되어 어쩔수 없이 내 다음 세대로 가게 된거였지."

"그랬군요.."

사무엘의 짧은 설명이 끝나고 루크를 바라보자. 루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그런대 절 싫어한다고..하지 않았나요? 엘레니아란 분도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건가요?"

"...그건.."

라이아와 사무엘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그러자 루크는 왠지 엘레니아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자신 탓이지 않을까 싶었다.

"저 때문인가요?"

"그렇지.."

"....하하..이 것참.."

루크가 괜시리 멋쩍게 웃자. 사무엘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가장 큰 계기로는 널 만나고나서 더 싫어했다는 거다."

"만난적도 있나요?"

"...그래.. 정말 기억나지 않는거냐?"

"예.."

사무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루크의 표정에 거짓은 없어보이자 사무엘은 깊게 한 숨을 내쉬었다.

"이 것 참..뭐 네가 한참 방탕하게 생활했으니 그 점 때문에 싫지 않을까 싶구나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모른단다 그저 넌 엘레니아에게 뺨을 맞고 씩씩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 만 알고있다."

"...하하.."

결국 루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의 루크로서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였다. 하필이면 이녀석의 몸에 자신이 들어와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겪게 하는지 마음 같았으면 루크를 향해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대 파혼을 허락해줄까요?"

"그것도 문제란다.."

루크의 물음에 이번엔 라이아가 대답했다. 사무엘도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에 너를 낳고 지아란도 엘레니아를 낳았을때. 마나의 약속을 나눴단다."

"마나의 약속이요?"

"그렇단다. 마나를 걸고 약속하는거지.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 지아란 가문에 있는 나서스 지아란과 너의 아버지의 마나를 잃게 된다는 것 말이다."

"..예? 마나의 약속은 뭐에요 또?"

루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라이아가 차분히 말해주었다. 마나에게 언약을 거는 일로 만약 언약을 지키지 못하면 마나를 잃게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금 데미아스와 지크문드가 자신의 아들들인 사무엘 아스란과 나서스 지아란에게 걸었다는 것이였다.

"이런...말도 안되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너 때문에 마나를 잃게 생겼구나? 허허."

사무엘은 이 심각한 이야기에도 아무렇지 않은지 껄껄대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파혼은 그럼 안된다는거 잖아요?"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

"방법이요?"

사무엘이 오랜 이야기에 목이 타는지 물을 한 컵 마시며 다시 대답했다.

"마나의 약속을 나눴던 지크문드님과 나의 아버지가 약속을 다시 파기하는 것이다. 물론 대가가 있겠지만 마나를 잃거나 하진 않겠지."

"그 대가란게 무엇이죠?"

"내가 어찌 알겠느냐? 마나의 약속을 할때 아버지와 지크문드님이 걸었던 대가가 있겠지. "

"...그런가요?"

사무엘의 말에 루크가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금으로선 레이니와의 일과 엘레니아의 일도 하나 같이 머리만 아파오고 재대로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였다.

"후..어쩌죠?"

루크도 입맛이 사라졌는지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한 숨만 푹 내쉬며 묻자. 사무엘도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네녀석이 평소 행실만 좋았다면 이렇지 않았을거 아니냐 "

"...제 업이지요..예..다 저의 업보입니다..에휴.."

"일단 아버지와 잘 얘기해보겠다. 북방으로 편지라도 한 통 보내 보마. 일단 넌 내 제안에 대해서 레이니와 생각해보거라."

"예.."

결국 사무엘은 한 숨을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났고 라이아 역시 자리에 일어나려 할때였다. 세리스가 루크를 보며 말했다.

"오빠도 언니가 좋아?"

"누구?"

"레이니 언니."

세리스의 말에 루크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라이아도 식당에 나서기전 루크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루크에 생각이 궁금한듯 싶었다.

"글쎄...나한테 너무 과분하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칫..그게 뭐야?"

"하하하.."

세리스가 재미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라이아를 따라 식당을 나서자. 루크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1층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자 저 만치 루크의 방 앞에 서있는 레이니의 모습이 보였다. 루크는 급히 발걸음을 놀려 레이니에게 다가갔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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