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5장】
"그래.. 네가 도서관에서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이 것 때문이었느냐?"
사무엘의 손에 들린 작은 병에든 투명한 액체를 보며 루크에게 묻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향수라? 향낭과 비슷한 것이냐?"
고위급 귀족이라면 너도나도 들고다니는 향낭이 있었다. 꽃잎을 말리거나 끓여 말린 뒤 넣어둔 작은 주머니를 일컬었다. 루크 역시 향낭의 존재를 알았지만 지구에서 현대적으로 만들어진 향낭에 비해 그 향과 지속성이 떨어졌기에 생각해 낸 것이였다. 물론 이 것 또한 지구에서 만들어진 향수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졌지만 이 곳에서의 향낭보단 더 깊은 향과 지속성이 뛰어났다.
사무엘은 곧장 병에 뚜껑을 열어 보이자 순식간에 사무엘도 잘 알고있는 익숙한 꽃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미란디르 꽃이구나?"
"예"
그저 뚜껑을 열기만 했을 뿐인데 진하게 풍겨오는 미란디르 꽃향에 사무엘도 짐짓 놀란듯 향기를 음미해갔다.
"향이 굉장히 진하구나."
"맞아요 그래서 조금만 살짝 손에 묻혀서 목 뒤에 바르시면 은은하고 오랫동안 향이 남을거에요 향이 사라진다 싶으면 다시 향수를 묻히면 되구요 향낭보다 사용하기도 편하고 지속성도 좋아서 더 인기가 좋을거에요"
"호오..."
사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루크의 말대로 손에 살짝 향수를 묻히고는 목 뒤에 살며시 바르자. 곧 사무엘의 몸에도 미란디르 꽃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꽤나 비싼 값에 팔리겠구나?"
"예 귀족들 대상으로 판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향낭도 고가의 물품인데 그것보다 더 좋은 향수는 더 비싸게 팔 수도 있겠지 다음에 상단이 오면 소개를 해 보마. 그나저나 대단하구나 연금술에 대해 배운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것도 만들어내고 말이야?"
"하하..그게... 향낭에서 많이 따온거에요 운이 좋았죠. "
루크가 멋쩍은듯 웃어보였다. 사실 처음 부터 향수를 만들 작정은 아니였다. 그저 여러 재료들을 보며 화학작용을 배워가던중 향낭의 재료가 되는 꽃잎들도 여러 있었는데 그 재료들을 보며 지구에서의 향수가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한번 만들어볼까 해서 따라 만든것이 지금의 향수였다.
지구에서처럼 완벽한 향수는 아니였지만 어느정도 비슷한 향과 느낌을 주며 지속성도 있는 향수를 만드는 것에 성공할 수 있게된 것도 지구에서 배웠던 공부와 함께 실험을 통해 발견해낸 행운 덕분이기도 했다.
특히 식물성 원료를 증류하는 방법은 지구에서 배웠던 공부가 꽤나 도움이 되어 나름 빠른 시일내에 향수를 만들어낼수 있게 된 것이었고 향낭의 재료들 역시 아버지인 사무엘과 상단에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향수를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물론 실험 도중 미약의 성분이 들어있는 재료가 들어가 당황스런 상황도 겪어보고 증류가 잘 되지 않아 금세 향이 날라가버리기를 여러번, 결국 여러 실패와 함께 운 좋게 지금에 향수를 만들 수 있었던 루크였다.
"그래도 재능이 있어보이는구나."
"감사합니다."
사무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루크가 크게 미소를 지어보이자. 뒤이어 사무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내려앉은 진중한 목소리에 루크는 끝까지 미소를 유지 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루크"
"네?"
한창 칭찬을 하던 사무엘의 표정이 어느세 굳어져있었다. 그러면서 서재의 서랍에서 한통의 편지를 꺼네보였다.
"편지 인가요?"
루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사무엘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일단 읽어보거라."
"제가요?"
"그래."
루크는 편지를 받아들며 봉투를 보자 루크로서는 처음 보는 독수리가 그려진 문장이 보였다.
뒤이어 천천히 봉투를 열자 그 안엔 하얀 종이에 꽤나 정갈하게 쓴 글자들이 보였다.
"...."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내려간 루크 역시 아버지 사무엘과 별반 다를게 없는 표정이 되어 굳어져내렸다. 그러면서 급히 사무엘을 바라보자 사무엘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무슨 생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일단 약혼에 관해서 얘기 할게 있다고 하니 곧 이 곳으로 오겠구나."
사무엘의 말에 루크는 다시금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루크에게 있어서 큰 고비가 될 지아란 가문에 방문을 알리는 편지였다.
"...어쩌지요?"
루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사무엘을 향해 묻자 사무엘이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모르겠구나 아버지에게도 편지를 보내긴 했다만. 아직 답장이 없었다. 그러니 일단 나서스와 엘레니아의 얘기도 들어보자꾸나."
"예."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하지 않더냐? 너도 이제 마음에 없는데 계속 질질 끌 필요는 없지 빠르게 해결하는게 낫다고 본다."
"그런가요..?"
사무엘의 말에 루크로서도 언젠가는 겪어야 될 일이었기에 잠시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다잡았다.
"그나저나 말 할 건가요? 레이니누나와 저의..그.."
루크가 이마를 긁적이며 뒷 말을 흐리자 사무엘이 미소를 그려보였다.
"그래 말 해야지 않겠느냐?"
"...꽤나.. 일이 시끄러워지겠지요?"
"그렇지."
"...에휴.."
한숨을 푹 내쉬는 루크의 모습에 사무엘도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어서 빨리 모든 일이 해결되고 마음 편히 집무만 보고 싶은 사무엘이였다.
평소에는 이 집무조차 하기 싫었것만 요즘에는 집무만 했던 것이 그리워졌다.
안그래도 가을 추수기에 접어들어 영지가 바빠져 이리저리 신경쓸 일도 많았 것만 루크와 레이니 그리고 엘레니아까지 집무를 제외하고도 생각해야 될 게 많아진 사무엘로서는 하루 하루가 지침에 연속이였다.
"후... 일단 가서 쉬거라. 난 해야 할 일이 많구나. 향수는 내가 상단에게 잘 소개해볼테니 걱정하지말고."
"하하 예."
사무엘은 다시금 책상위에 수북히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 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루크는 멋쩍은듯 웃어보이며 빠르게 서재를 나섰다.
손에 들린 향수병을 움켜쥐며 루크가 도착한 곳은 레이니의 방문 앞이였다.
저번에 실험실에서 보고 며칠이 지나도록 자신을 피해다닌 레이니의 모습이 생각나자. 괜시리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필..그 재료가 미약성분이있었다니..하하.."
실험실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기억하며 루크가 천천히 방문을 노크하자 레이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에요 루크 들어가도 되요?"
"뭐? 자..잠시만!! 들어오면 안되!!"
다급한 레이니의 목소리와 우당탕 하는 소리가 여러번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열린 문과 함께 빼곰히 고개를 내민 레이니의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도 되요?"
"으..응.."
아직 저번에 일을 기억에 남아 있는 걸까? 레이니의 얼굴에 부끄러움에 붉어져있었다. 하필 그때 증류를 하던 것이 미약 성분의 꽃이란걸 루크는 몰랐었다. 정말 우연이 나온 실수였고 그 실수에 하필 레이니가 걸렸던 것이었다.
그나마 루크로서는 다행이라 생각한 것이 만약 세리스나 라이아였으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사단이 날 뻔 한걸 레이니였기에 이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한 루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