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17화 (17/412)

【17회. 5장】

"정 싫다면 나 혼자 가보겠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도 아스란가에 대한 예의가 있지요."

"....그래.."

갈색의 머리칼을 깔끔하게 뒤로 쓸어넘기며 정갈한 예복을 입은 나서스 지아란은 자신과 같은 색의 머리칼과 어머니를 닮아 갸름한 턱선과 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딸 엘레니아 지아란을 보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엘레니아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아보였다. 그런 자신의 딸을 보며 나서스 지아란은 몇달 전 아스란가에서 있었던 일이 아른거렸다. 태중 약혼자인 루크 아스란을 만나고 다시 지아란으로 돌아온 그날 이후로 엘레니아는 매일을 눈물로 지내며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외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어릴땐 아스란가의 레이니와 친하기도 했고 루크도 착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였다 생각했것만 성인이 된 루크의 모습은 세간의 평대로 망나니 그 자체였다. 그러자 이제는 루크 아스란 보단 태중혼약을 한 자신의 아버지 지크문드 지아란이 원망스럽기 까지 한 나서스였다.

어릴적 마나의 저주를 받아 연약하고 소심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성인이 된 루크의 성격은 포악해졌으며 매일을 술과 도박, 여자에 둘러 쌓여 인생을 허비하는 나날에 비해 엘레니아는 매사에 신중하고 지혜로웠으며 마법적 재능도 뛰어났다. 그런 자신의 딸을 그 망나니에게 결혼 시켜야 한다는 것에 나서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느낌을 받아야했다. 그러면서도 엘레니아를 보며 나서스는 아쉬워했다.

'만약 여자가 아니였다면..'

그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그 재능과 명석함을 키워 가문의 후계자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훗날 지아란은 후작을 넘어 아스란, 무아란과 같이 공작의 자리에 올라 설 거라 생각했지만 엘레니아는 여자였다. 게다가 이미 자신의 뒤를 이을 남자아이 테온 지아란 까지 있었다. 아버지인 지크문드 역시 테온을 후계자로 정해 놓았기에 엘레니아가 가문의 후계가 될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낀 나서스였다.

"슬슬 가볼테냐."

"예.."

자주 웃으며 때론 애교도 부렸던 자신의 딸이 우울하게 변해버렸다. 루크를 만나고 나서 부터 변해버린 자신의 딸에 모습에 지아란 저택과 영지조차도 우울하게 변해버린듯 싶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 또한 병을 가지고 있어 우울함이 더욱 짙어진 듯 싶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늘을 보며 나서스가 속으로 외쳤다. 마치 하늘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듯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듯 우중충한 하늘에 나서스는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속 주머니에 넣어둔 지크문드의 편지를 매만졌다.

파혼을 결심한 뒤 나서스는 루크의 여태 알려진 행실에 살을 좀 더 보태어 지크문드에게 알렸다. 그리고 파혼을 하겠다고 적어 북방 분쟁지역인 윈랜드로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며칠 지나 받은 답장엔 그저 간결하게 네글자만이 적혀있었다.

-절대 불가-

자신의 속도 모르고 간결하게 써서 보낸 지크문드가 원망스러웠던 나서스였다. 그렇게도 루크의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써서 보냈것만 그 어떠한 말도 지크문드의 마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허탈하다못해 이재 분노까지 일었던 나서스는 금방이라도 윈래드로 달려가 자신의 아버지인 지크문드과 한 바탕 해보려했것만 엘레니아가 나서스를 막아섰다 그러곤 다시 한번 아스란가로 가보겠다고 한다. 마치 모든걸 포기한듯 그녀의 얼굴에 우울함이 더욱 짙어져내렸다.

"아버지.."

이미 마차에 올라탄 엘레니아가 나서스를 부르자 나서스도 곧장 상념에서 깨어나며 엘레니아를 바라보았다.

"어서 가요."

"그래.."

쓴 웃음을 지어보이며 나서스가 마차 안으로 올라타자. 곧 자신의 뒤에 있던 한 기사가 마부에게 신호를 주자. 곧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 안은 마치 아무도 타지 않은 것 처럼 조용하게 움직였다. 엘레니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서스는 그런 엘레니아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왔다. 한창 밝고 명량했던 아이가 이렇게 변한 것에 나서스의 마음이 차츰 결심이 서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말거라..아버지를 믿거라."

"네?"

엘레니아의 시선이 나서스로 향하자. 나서스는 따스하게 미소를 보일 뿐이였다. 여전히 엘레니아는 고개를 갸웃 하고 있었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

한편 아스란가에선 손님 맞이 준비로 바쁘게 하루가 돌아가고 있었다. 집을 관리하는 집사장과 하녀장은 라이아의 진두지휘하에 청소는 물론 음식 준비까지도 완벽을 더해가고있었고 따로 정원관리사 까지 불러 정원까지 손 본 라이아였다.

"세리스~ 잘 씼었니?"

"어머니도 참 어린애가 아니라구요!"

1층으로 내려와 라이아에게 다가간 세리스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라이아가 그 모습에도 세리스가 귀여운지 한차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서 품 속에 작은 향수병을 꺼네며 세리스에게 묻혀주기 시작했다.

"음~"

세리스는 미란디르 향이 가득 담긴 향수를 음미하며 기분이 좋아졌는지 크게 숨을 들이마쉬며 기뻐했다. 라이아역시 향기로운 향을 음미하며 자신의 목 뒤에 향수를 묻히자 곧 은은한 미란디르 향이 라이아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향기로움에 분주히 움직이던 하녀들도 잠시 걸음을 멈춰 향기를 맡았다. 그만큼 향수의 향이 은은하고도 향기롭다는 증거였다.

"세리스 레이니는?"

"하..하..그게.."

뒤이어 라이아가 세리스에게 레이니의 행방을 묻자 세리스의 표정이 잠시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라이아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레니아가 온다는 통보를 받고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레이니가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갔고 심지어는 눈물까지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연실 루크와 함께 있으려해 사무엘에게 혼난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루크가 달려가 달래주긴 했다만 엘레니아가 이 곳으로 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슬슬..도착할텐데..후.."

"그러게요..제가 가볼까요?"

라이아가 걱정스럽게 속삭이자 세리스 역시 그녀 따라 한 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라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