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5장】
루크는 멋쩍은듯 웃어보였다. 사실 엘레니아를 찾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 나온 말이였다.
"..."
여전히 엘레니아는 아무말도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루크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아 괜시리 이마를 긁적이며 엘레니아의 눈을 피했다.
"저기..음.."
오랜 정적에 결국 루크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사..과를 하고 싶어요."
"사과?"
반응이 없던 엘레니아의 표정이 조금 변해갔다. 그러면서 되 묻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기억도 나지 않는다 했잖아?"
"그게.."
엘레니아의 말에 루크가 당황해했다.
"무엇에 대해 사과 하려는거지?"
"..."
할말이 없었다.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 이 곳에 대한 정보나 가족들의 정보 같은건 시간이 지나자 마치 강인에게 흡수되듯 떠올랐것만 어쩐지 엘레니아에 대한 기억은 짙은 안개로 가로막혀 있는 듯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루크의 입이 닫히자. 엘레니아가 코웃음을 쳤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나보네?"
"....네.."
점차 엘레니아의 신형이 떨려왔다. 다시금 분노가 차올라서일까? 그녀의 눈가에도 점차 눈물이 맺혀가며 루크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지 못하지?... 어떻게?..넌 날 강간하려 했다는걸..어떻게 잊을 수 있지?"
"...예..?"
"그리고 난 아직도 그때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
순간 루크는 자신이 잘 못들었나 생각하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곧 의심은 현실이 되어갔고 엘레니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노의 흐르는 눈물인가 아니면 변해버린 루크의 모습에 슬퍼한 눈물일까 엘레니아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그제서야 루크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도 이렇게 늦은시간 몰래 엘레니아의 뒤를 밟은 루크는 엘레니아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꺼가 될꺼라며? 크흐흑 어때 창녀처럼 벌벌 기어서 가랑이 좀 벌려보라고 왜? 파혼이라도 하게 마나의 언약을 깨기라도 하게? 크하핫 자 빨리 '
"미친..."
짙었던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둘씩 지난 기억이 떠오르자. 루크역시 분노에 쌓여 몸을 떨려왔다. 그리고 보였다. 그때의 엘레니아의 얼굴을 슬픔과 충격에 빠져 울고있던 그녀의 손에 빛이 일렁이더니 곧 루크의 기억이 끊켰다. 마법을 사용했으리라.
뒤이어 기억은 더욱 옛날로 돌아갔다. 어릴적 아주 어릴적이었다. 레이니와 엘레니아가 보였다. 서로 이 화원에서 놀고있었다. 천진난만하던 둘과 그 옆에 울며 보채는 루크의 모습이 보였다. 엘레니아와 레이니가 서로 달려와 루크를 끌어 안아주며 등을 토닥이거나 또는 서로 재미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울던 루크를 웃기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우는 루크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뒤로 다시금 현재의 엘레니아의 모습이 보였다.
"....."
한 순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루크아니 강인으로서 엘레니아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이젠 루크가 강인이였다. 강인이 루크였고 이 것또한 자신이 짊어져야할 짐이였지만. 강인으로서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였다.
"...죄송해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여전히 엘레니아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흐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루크의 뇌가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돌아갔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결국 루크의 무릎이 굽혀졌다. 차디찬 바닥에 루크의 무릎이 꿇어졌다. 엘레니아의 시선이 보였다. 조금은 당황한 것일까? 눈물을 훔치면서도 루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야...화가 풀리실까요? 죄송해요...제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죄송해요. 엘레니아 기억이 나요...누난 절 믿었었는데...그 믿음을 걷어차버렸네요..죄송해요..평생 갚을게요 평생..죄송해요 누나."
루크의 눈가에도 점점 눈물방울이 굵어졌다. 엘레니아와의 기억이 떠오르고 빌어야했다. 후작가의 영애를 모욕하고 강간을 하려했다. 이건 귀족을 넘어 사람대 사람으로서도 너무나 치욕적인 행위였다.
이런 루크의 행위에 엘레니아가 오열했다. 그대로 주저 앉아 서로 오열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목소리가 울음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엘레니아도 곧장 몸을 일으키며 남은 눈물을 훔쳤다.
"그만..일어나."
울음에 목이 잠긴 엘레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루크로서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용서를 빌고 죄값을 갚아야했다.
"일어나 루크.."
여전히 요지부동이였다. 루크가 차츰 고개를 들어 엘레니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해야..누나에게 사과를 받을 수 있죠?...제가 어떻게해야.."
"..."
일어나는대신 물어왔다. 답답한 마음에 루크는 엘레니아에게 호소했다. 이대로 넘기고 다시 흐지부지 되버린다면 그렇게 엘레니아가 다시 지아란으로 간다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루크로서는 답을 듣고 싶어했다.
"어떻게하면..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죄송해요...너무 죄송해요 누나.."
"난..."
서서히 엘레니아의 입이 열리려 할때였다.
"못난놈..둘이 평생 같이 생활하면서 갚아가거라 못난 녀석아."
화원의 뒷편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풍채가 꽤나 큰 남성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며 달빛을 받아 그 모습을 드리우자 곧 루크의 기억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어떻게 이 곳에..?"
"데..데미아스님."
현 아즈문 제국의 대장군이자 아스란가의 최고어른인 데미아스 아스란이었다.
"얘기 다 들었다.아주 가관이더구나 루크?"
"그게.."
데미아스의 주름 많은 얼굴이 점차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풍채가 서서히 다가오며 루크를 한손으로 일으켰다.
"내 한창 전쟁에 바뻐 널 신경쓰지 못했것만 이렇게 망나니가 되어있구나?"
데미아스가 분노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공기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차갑게 주변을 흐르던 바람과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오직 데미아스와 루크만이 존재하는듯 루크를 압박했다. 루크로서는 마치 야생의 맹수를 바라보는듯 순간 숨을 쉴수가 없을 정도로 강한 압박을 받아야했다. 이 것이 현 대장군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할아버지.."
간신히 입을 열었것만 그 것만으로 땀이 삐질 흘러나온다. 점차 숨이 가파오르기 시작했고 얼굴 색이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데미아스는 화를 삮히지 못하고 루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된 것에 네 아비 탓이더냐? 어찌 아스란가에 너같은 망나니가 나온 것이냐? 마나의 저주 그것때문이더냐? 고작? "
"그..그것이..컥.."
더이상 말을 이을수가 없을때였다.
"데..데미아스님!"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엘레니아의 목소리에 순간 숨 통이 트인듯 루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그만하세요..더이상 했다간..루크가.."
엘레니아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데미아스는 여전히 탐탁치 않아했지만 엘레니아를 보며 힘을 거둬야 했다.
"일단 둘다 들어오거라. 얘기를 좀 나눠야겠구나 다같이 말이다. 엘레니아. 너에게 미안하구나 하지만 좀 더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구나."
"...예..루크.."
엘레니아가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루크를 일으켜 세웠다. 그럼에도 연약한 루크의 몸은 후유증이 남아 있는지 몸이 떨려왔고 숨쉬기도 여전히 힘들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