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회. 7장】
"레이니 누나.."
"레이니.."
냉담한 표정으로 레이니가 다가와 루크의 손을 잡아 챘다. 그러면서 엘레니아를 향해 쏘아 붙였다.
"이제와서? 이제와서 루크를 빼앗겠다고? 하.. 웃기지도 않아 엘리."
"..."
"왜? 아까처럼 말해봐! 넌 루크를 싫어했잖아. 왜 루크가 다시 변하니깐 마음이 동하나봐? 이제와서 루크를 빼앗아 가려는거야!"
레이니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점차 그의 주변에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현재의 감정을 말해주듯 레이니의 기운은 오직 엘레니아만을 향해 쏘아내고 있었다.
"빼앗는게 아니야."
".."
엘레니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레니아 역시 레이니의 기운을 받아내면서 자신의 기운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서로의 기운이 부딪쳐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서로의 옷들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기회를 바란다는거야."
"기회? 이제와서? 넌 충분히 기회를 얻었어. 이제 그 기회는 없어."
"네가 무슨 권리로?"
엘레니아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너에게 그런 권리는 없어. 너에게 미안하다 생각해 이기적이라 생각해도 괜찮아, 하지만 나도 이대로 지내고 싶지 않아. 루크가 변한 만큼 나도 변해가려 노력할거고 나도 달라질거야 이제.."
"..."
엘레니아의 말에 레이니가 인상을 구겼다. 그럼에도 더욱 기운을 뿜어대자. 엘레니아도 자신의 마나를 활성화 시켜 더욱 기운을 이끌어냈다. 그러자 허공에 책들은 물론 루크의 재료들까지 이리저리 소용돌이치며 떠다니기 시작했다.
"아..아이고 ...그..그만해요."
허공에 떠다니는 연구 자료들과 재료들을 보며 루크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외쳤지만 둘에겐 들리지 않나 보다.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기운을 뿜어낼 뿐이였다.
"절대 양보하지 않아 엘레니아."
"빼앗는다고 했지? 레이니? 잘 못 알고있어 되찾는거야. 태어나기전부터 내꺼였으니깐."
"너!"
결국 레이니의 허리춤에 찬 롱소드가 빛을 내뿜으며 뽑혀들었다. 엘레니아 역시 그녀의 주변 허공에 여러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왜 이제와서...이제서야 나와 루크가 서로 사랑하게 됬는데 하필 왜!!"
"미안해..레이니..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이 약혼을 해야 하는 이상 변한 루크처럼 나도 변해갈거야. 루크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말이야."
엘레니아의 말에 점차 레이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흘렀다. 어쩌면 레이니로서는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서로 파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터 하지만 막상 엘레니아에게 직접 들으니 마음이 깨질 것 만 같았다.
"미안해....레이니..매일 루크랑 같이있으면서 많이 알게 되었어 하녀들에게 대하는 모습이나 가족들에게 대하는 모습 그리고 오늘 너와 같이 있을때 그리고 지금 결정했어. 루크와 결혼 난 꼭 할거야."
-짝- 살과 살이 부딛치는 소리와 함께 엘레니아의 고개가 돌아갔다. 레이니는 눈물을 흘리며 엘레니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해 레이니..때려도 좋아 무슨 짓을 해도 좋아 너에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렇다고 그만두진 않을거야. 루크."
"예!"
엘레니아가 루크를 바라봤다. 놀란 루크가 급히 엘레니아를 향해 대답했다.
"지금 당장 날 좋아해달란 말은 아니야. 너도 날 알아야겠지. 그리고 지금 레이니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거니깐 하지만 나도 이제 부터 달라질거야."
".."
엘레니아가 루크에게 다가섰다. 루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엘레니아를 바라보자. 그녀에 눈가에 무언가 결심이 선듯 또렷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 엘레니아가 루크의 입가에 짧게 입을 맞추고 다시 멀어졌다. 그런 엘레니아의 모습에 레이니의 기운이 다시 뿜어져 나오려 했지만 엘레니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둘이 할 얘기가 많겠지, 있다가 저녁 식사때 봐."
그 말을 끝으로 엘레니아가 빠르게 도서실을 나섰다.
"..."
둘이 남게 된 도서실 루크가 먼저 레이니에게 말을 걸어야 하나 생각하며 안절부절 하고 있을때였다. 레이니가 천천히 루크에게 다가왔다.
"나도 뺏기지 않을거야. 루크.."
그 말을 뒤로 레이니도 도서실을 나선다. 결국 혼자가 된 도서실에 루크는 난장판이 된 실험재료와 연구 자료를 보며 한 숨을 내쉬어야했다.
☆ ☆ ☆
도망치듯 도서실에 나온 엘레니아는 자신의 방에 도착해서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킬수 있었다. 자신이 한 남자를 위해 다른 여자와 그것도 어릴 때부터 친했던 자신의 친한 친구와 싸우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루크에게 입까지 맞추다니. 엘레니아는 방금전의 생각을 되새기며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후..."
아직도 느껴지는듯 하다. 따뜻한 루크의 입술이 물론 아직도 뒷통수가 레이니의 시선에 따가운 것 같지만 이젠 그런 기분은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속도 시원했다. 언제부턴가 레이니와 루크가 서로 애정행각을 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매번 답답했던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확실하게 변한 루크에게 다시 어릴때 마음이 새록 피어나는 듯 싶었다. 지켜주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다. 루크의 관심을 받고싶었던 어릴 때처럼.
"훗훗.."
어릴 때를 생각하니 엘레니아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그렸다. 레이니와 함께 루크에게 관심을 얻으려 얼마나 그 앞에 재롱을 부렸던가. 매일 루크와 손을 잡고 다니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다. 그리고 지금와서 까지 루크에게 관심을 얻기위해 서로 싸운다는게 한편으론 우습기도 했다.
"미안해..레이니...."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엘레니아는 조용히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