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17장】
안느란테
잠시 서재에서 벗어난 사무엘은 루소의 안내를 따라 손님이 올때마다 사용하는 접견실로 향했다. 접견실은 보통의 방들보다 조금 더 컸으며 가운대에 탁자를 중심으로 양 옆에 길다란 소파가 들어선 방이었다. 그리고 손님에 환심을 사기 위해 벽에는 아스란가문의 문장과 함께 여러 장인들의 작품들이 걸려있어 아스란가의 품위를 보여줄 수 있는 방이었다. 이런 방 안에 꾀죄죄 했지만 그 고운자태만은 감출 수 없는 한 엘프여인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사무엘은 그런 엘프의 미모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내다가 괜시리 헛기침을 해보였다.
"이 분이 아스란 가문의 영주 사무엘 아스란입니다."
루소의 인사에 엘프여인이 몸을 일으키며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푸른 달빛의 숲 일족인 안느란테 에스카시요라고 합니다."
"반갑소 말했다시피 사무엘 아스란이오. 그런대 우리 레이니랑 엘레니아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하던데?"
"무례를 죄송합니다만 꼭 허락 받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허락?"
안느란테는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몇번의 대화와 행동이었지만 꽤나 예의가 있는 그녀의 모습에 사무엘은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루소에게 눈치를 주자. 곧 루소가 접견실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곧 올것이오 다행이오 엘레니아도 잠시 자신의 가문에 갔다가 엊그제 막 도착했으니 말이오."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녀 몇몇이 차를 대접했고 조용히 사무엘과 안느란테가 차를 음미하고 있을 때 였다. 훈련을 하다 왔는지 레더갑옷과 자신의 검을 들고온 레이니와 평소처럼 단정하게 차려입은 엘레니아 그리고 궁금함을 못이긴 라이아와 세리스까지 모두가 접견실에 모이게 되었다.
"라이아와 세리스까지 왔구려?"
"네 예쁜 엘프언니가 있다길래 한번 보러 왔어요!"
세리스가 당차게 외쳤다. 사무엘은 그런 세리스의 머리칼을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확실히 예쁘시네요"
"호홋 감사합니다."
세리스의 칭찬에 안느란테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자 여기 이 아이는 세리스고 여인은 나의 아내 라이아 그리고 갑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레이니 그 옆에 엘레니아입니다. 혹 셋이서만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라면 빠져드리지요."
사무엘의 말에 안느란테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는 안느란테 에스카시요라고 합니다."
그렇게 차례 차례 인사가 끝나고 안느란테가 엘레니아와 레이니를 바라보았다. 엘레니아와 레이니는 처음 보는 여인이 자신들에게 용무가 있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하며 궁금해했다.
"저는.."
잠깐의 침묵속에 다시금 안느란테의 목소리가 열렸다.
"저는 루크님을 사랑한답니다."
"...?"
갑작스런 안느란테의 이야기에 모두가 벙찐 얼굴이 되어갔다. 심지어 사무엘과 라이아역시 이게 무슨소린가 싶어 안느란테를 바라보았고 그 발랄하던 세리스까지 입을 떡 하니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엘레니아와 레이니는 두말할거 없이 안느란테를 쳐다볼 뿐이었다.
"예?"
너무 대놓고 직설적인 안느란테의 말에 레이니가 헛웃음을 지어보이며 다시 물어오자. 안느란테가 다시 레이니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루크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레이니님!"
"갑자기 그게 무슨.."
레이니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헛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지만 어느센가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검이 들썩일 정도로 손을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화를 낼듯한 레이니의 모습에 눈치가 빠른 세리스가 그 점을 알고는 급히 레이니의 손을 붙잡았다. 만약 세리스가 레이니의 팔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레이니의 칼이 번뜩일지도 몰랐다.
"잠시만요... 안느란테라고 했지요?"
엘레니아가 다가와 말을 했다.
"일단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갑자기 루크를 사랑한다고 하면 저희가 쉽게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할 순 없지 않나요?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부터 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
엘레니아가 조근조근하게 말을 해왔지만 얼굴이 약간 붉으락 푸르락 거렸다. 그 만큼 속에서 안느란테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듯 싶었지만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그럼..처음..루크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안느란테가 짧게 사과를 하고는 루크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부터 시작노예상인과의 일화 그리고 마지막 호수에서 나눴던 이야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꽤나 긴 내용에 루소가 다시금 비어있는 찻잔에 차를 채워 넣어야 했다. 안느란테는 차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갈수 있었다.
어느세 중천에 있던 해가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을때 안느란테의 이야기가 끝마치게 되었다. 안느란테의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침묵에 빠진 방안에서 먼저 입을 연건 레이니였다.
"그래서...자신을 도와준 루크에게 그때 부터 빠져들었다는건가요.."
"그렇습니다.
"무슨 연극공연도 아니고..."
당당한 엘레니아의 말에 레이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뒤이어 엘레니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모두의 시선이 엘레니아에게 향했다.
"엘리?"
레이니가 엘레니아를 불렀지만 엘레니아는 오직 안느란테만 바라보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뒤이어 엘레니아가 손을 휘둘렀다. 짝 소리와함께 안느란테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어느센가 엘레니아의 눈가엔 눈물 방울이 맺혀 있었다. 안느란테도 그저 아무말 없이 엘레니아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엘레니아.."
이런 엘레니아의 행동에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가 얼어붙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사무엘이나 라이아 조차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때 다시 엘레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때문에 루크가 그런 위험을 겪게된거였군요.."
"..."
엘레니아의 말에 안느란테가 대답이 없었다.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게 다 당신 때문이었어.. 만약 그 곳에서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루크가 괜히 노예상인들과 엮일 필요도 없었을테지요 괜히 흑마법을 사용하는 사람과 싸울 필요도 없을 테고 말이지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가요 당신은? 당신은 모르시지요? 루크가 다치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
엘레니아가 안느란테를 향해 쏘아 붙였다. 그럼에도 안느란테는 그저 가만히 엘레니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당신은 루크를 사랑할 자격이 없어요! 그리고 저도 인정하지 않을 거구요."
엘레니아는 그 말을 뒤로 방을 밖차고 나섰고 레이니는 놀란 얼굴로 급히 엘레니아를 뒤따라 갔다. 놀라 얼어붙은 사무엘은 괜시리 헛기침을 하고는 라이아에게 말했다.
"흠..루크녀석 윈랜드에가서 무엇을 하는것인지..라이아 여자들관한 일은 내 잘 알지 못하니 그대에게 부탁하겠소..."
"여보?"
그 말을 뒤로 사무엘이 고개를 내저으며 방을 나섰다. 라이아는 그런 사무엘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안느란테를 바라보았다. 세리스도 헛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레이니언니가 이럴줄알았는데 오히려 엘레니아 언니가..."
"나도 놀랐구나...일단 안느란테라고 했지요?"
"예.."
힘없이 축처진 어깨에 라이아는 왠지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작고 초라해보이고 안쓰럽게 보였다.
"일단 좀 씻구 쉬도록하세요 비어있는 방은 많으니깐요 그리고 모두가 진정이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를 나누지요."
"감사합니다.."
"세리스 안느란테님에게 욕실을 안내해주렴."
"네 어머니"
세리스는 다시금 밝게 웃어보이며 안느란테를 이끌고 욕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