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회. 23 로제스 다닐루】
"아스란 공작가의 루크 아스란님 레이니 아스란님 세리스 아스란님 입장하십니다. 지아란 후작가의 엘레니아 지아란님 입장하십니다."
로제스가 왔을 때에도 듣지 못했던 입장 콜을 받으며 등장하는 아스란 공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엘레니아 지아란과 레이니 아스란의 팔짱을 끼고 오는 루크 아스란이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자기보단 조금 어린 나이로 보였으나 의외로 소문과는 다르게 차분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생김새도 제이슨이 조금 남자답게 생겨 잘 생긴 축이었다면 루크는 조금 여리여리하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얼굴형이었다. 로제스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괜시리 질투가 흘러나왔다.
공작가의 힘인 것인가 그 도도하고 차갑기로 소문난 엘레니아까지 망나니로 소문난 루크 아스란에게 밝게 웃어보인다. 그와 레이니는 같은 남매사이인대도 이상할정도로 연인사이 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웃음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공작가라는 힘만으로 망나니에게 예의를 다해 대하는 귀족자제들을 보며 로제스는 괜시리 분노가 들끓는듯 싶었다. 그렇게 다시한번 와인을 들이키고는 로제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굴욕받은거 처음이나 두번이나 그게 그거지."
로제스는 씁쓸하게 웃어보이며 루크 아스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루크 아스란님"
"아!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가 견식이 짧아 이름을 잘 ..."
역시나 자신과 같은 급 낮은 백작가의 자제 따윈 알 필요도 없었던 걸까? 루크 아스란이 자신을 모른다는 말에 괜시리 심통이 났지만 최대한 표정을 숨기며 로제스가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저는 상인의 딸인 로제스 다닐루라고해요"
로제스는 생각했다. 과연 저 아름다운 얼굴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경멸? 더러움? 망나니라 소문이 자자한 루크이기에 혹여나 손찌검을 하지 않을까 내심 긴장까지 든다. 괜시리 마른침을 삼키며 로제스가 루크를 바라보았다.
'자 어디 해봐..날 더럽다고 여겨보라구..'
"그렇군요 로제스 다닐루님 처음 뵙겠습니다. 루크 아스란이라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지라"
"..."
로제스도 예상치 못한 말에 순간 로제스의 말문이 막혔다. 살아 생전 말문이 막혔던 적은 없었고 자신의 예측이 틀린적도 없었것만 오늘 난생 처음으로 로제스의 예측이 틀리고 그 특출난 언변 역시 막힌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저기..?"
루크는 남들과 달랐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얘기를 이어나갈때마다. 루크 아스란이란 사람의 진심이 느껴져 왔다. 로제스의 신분을 알고도 돈을 주고 귀족이 되었음을 알고도 유일하게 자신과 눈을 마주쳐 준다. 심지어 은은하게 지어주는 그의 미소에선 진심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겪는 일에 로제스는 혹여나 자신이 술에 취해 잠들어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자 루크의 대한 관심과 고마움이 커져가기 시작하자 곧 양 옆에서 자신을 째려보는 두쌍의 눈을 볼 수있었다. 허나 그 시선은 자신의 신분 때문이 아니란것은 확실했다. 자신을 깔보거나 또는 역겨워하는 눈이 아닌 루크라는 이 아이에 대한 질투심이었다. 그래서일까? 술로 얻게된 자신감에 로제스는 괜시리 그 둘을 도발을하기도 했다.
때론 살짝 자신의 몸매를 보이게 해 루크를 곤란하게 했고 곧 그는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린다. 그런 그의 모습에 오랜만에 크게 웃음이 터져나오려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얘기를 나누었을까? 루크의 양 옆에 있는 여인들이 참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얼굴은 어느센가 붉으락 푸르락 되어있자 슬슬 자신이 빠져야 할 타이밍임을 알 수 있었다. 이 것 역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상인에 대한 수업을 받으며 터득한 것이었다. 게다가 더이상 그 둘을 놀려주었다간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음에 로제스가 뒤로 한 발 빠지며 말을 이었다.
"뭐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깐요 루크 아스란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남은 연회 재밌게 즐기다 가시기를 그럼 레이니님 엘레니아님도 저는 이만 호홋"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살짝 몸매를 과시해 보이며 루크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번 더 레이니와 엘레니아를 놀린 로제스는 속이 후련하게 웃어보이며 마지막으로 루크를 바라보곤 급히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다시금 외로움과 질투심 또는 씁쓸함이 로제스의 마음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오를 수 없느 나무 딱 그 것이었다. 자신을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남자에겐 두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보면 어느정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마나의 저주는 유명한 이야기었고 레이니의 재능 역시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아마 아스란가는 레이니와 루크를 결혼시키려 할 것이다. 그리고 엘레니아는 예전부터 지아란과 아스란가의 사이가 좋은 걸 알기에 태중혼약을 맺었기로 유명했다. 두명의 아내 충분히 지금의 현 귀족들 사이에선 일부다처제가 유지되곤 했으니 법적으로 걸릴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둘이 억지로 루크 아스란과 결혼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제 삼자의 입장으로도 느낄수 있는 진실된 사랑 로제스는 씁쓸하게 웃어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확제 연회가 끝이 났다. 로제스는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복귀했으나. 자꾸 루크의 얼굴이 마음속과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상단에 도움을 받아 그의 정보를 찾아보았고 그가 예전과는 다르게 더이상 망나니 짓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그 배우기 힘들다는 연금술에 대한 것도 모든 것들이 하나 하나 로제스의 마음에 새겨졌고 루크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한번이라도 그를 보고싶어.."
루크의 정보를 읽어가며 로제스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한 쪽 마음엔 혹여나 자신도 루크의 첩이라도 좋으니 아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마져 들었다. 뒤이어 날라온 또 한통의 편지 루크가 윈랜드 북방으로 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로제스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그러고는 급히 마차를 이끌고 자신을 지켜줄 몇명의 가드와 유일하게 친구와 같은 제시와 함께 북방으로 가는 마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