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회. 25 에이리스】
"충분히 멋지니깐 들어가자 언제까지 문 앞에 서 있을 거야?"
"하하하..그러네요.. 네! 들어가요"
"그럼 문 연다?"
"네!"
엘레니아는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루크를 한 차례 바라보고는 천천히 저택의 문을 열어내자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이 저택의 집사인 메르헴이란 노신사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단정하게 뒤로 넘긴 사내는 그의 옷 역시 단정하게 차려입었으며 행동 하나하나가 훈련이 잘된 집사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메르헴은 곧장 저택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엘레니아를 향해 놀란 얼굴로 다가왔고 엘레니아도 메르헴을 향해 방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가갔다.
"아가씨?"
"메르헴 잘 있었어?"
"그럼요...그나저나 아가씨가 여길 어떻게? 뒤에 계신 분은 혹시 루크 아스란님 아닙니까?"
그제서야 메르헴이 엘레니아의 뒤에 쭈뼛대며 서 있는 루크의 모습을 본 것일까? 여전히 꽤 놀란 표정으로 엘레니아에게 묻자 엘레니아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러자 메르헴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으나 금세 표정을 풀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루크 아스란님 저는 이곳에 집사 메르헴이라 합니다."
"아..아! 예! 반갑습니다. 루크아스란이라고 합니다."
루크 역시 메르헴을 따라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며 대답하자 메르헴이 웃어보이며 말했다.
"하하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답니다. 아 그렇지! 너무 놀란 나머지 손님을 너무 세워 두었군요! 엘레니아님! 곧 마님과 테온 도련님을 모셔오겠습니다. "
"응 부탁해 메르헴"
메르헴은 곧장 저택의 2층으로 올라갔고 뒤이어 분주히 발걸음을 놀려 움직이자. 곧 2층 복도의 오른쪽 방에서부터 엘레니아와 비슷하지만 좀 더 남자답게 생긴 테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나!"
"테온"
테온은 다급히 걸음을 옮겨 1층으로 내려오자 곧 엘레니아와 루크의 모습을 보았고 테온은 급히 루크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루크님 그때 아버지와 같이 황성으로 간 이후로 오랜만이네요! 죄송해요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먼저 가버려서."
"하하 괜찮아 테온 그리고 말 편히 해 어차피 나이 차이도 그렇게 많이 나지 않으니깐"
"그..그래도 될까요?"
"그럼!"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테온이 멋쩍은 듯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니아는 그런 둘이 다행이도 금세 친해지는 것 같아 다시 기분이 좋아지려 할 때였다. 2층에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구나 루크."
2층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는 중년 여성의 모습은 꽤나 여리여리해 혹여나 톡 건들이면 넘어질 것 같이 불안해 보였고 얼굴에는 핏기가 보이지 않아 잘못하다간 혹 시체가 걸어다니는 것이아닌가 싶은 인상을 주었다. 허나 그렇게 병약해 보인다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날카로운 인상이 었다. 엘레니아와는 다른 날이 선 듯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위태롭게 집사 메르헴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왔고 곧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걸어 루크의 앞에서 멈추어 서자 급히 루크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루크 아스란입니다 로아니님!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보자마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던 루크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무엇을 잘 부탁드린다는 것일까 엘레니아는 잔뜩 긴장한 루크의 모습이 웃겼는지 미소를 지어보였고 테온 역시 숨죽여 키득거려왔다. 허나 로아니의 핏기 없는 표정은 여전히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요 ...루크 아스란....어릴때 보았는데 이렇게 큰 상태에서 본 적은 처음이군요."
"그렇습니다. 로아니님..."
로아니는 잠시 옛일을 떠올리는 듯이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으나 그 미소는 금세 사라져갔다.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온 로아니는 다시 루크를 보며 낮게 얘기했다.
"그때는 참으로 귀여웠었지...허나 지금은 딱히...그대가 반갑지 않군요...루크.."
"아.."
로아니의 목소리에 섞인 냉기가 순간 루크의 가슴을 얼려버리듯 했다. 그 파장은 곧 주변으로 퍼져 밝았던 모두의 표정들이 삽시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루크 역시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몰랐기에 순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다른 이들 역시 로아니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지 몰라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렇게 잠시간 이어진 정적 속에 다시 로아니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반갑지 않아요. 루크, "
"그....죄..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루크가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렇지요 당신은 엘레니아에게 너무나 부족하답니다. 나서스와 아버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있게 했지만 전 지금 당장이라도 엘레니아와 당신 사이를 때어내고 싶답니다."
차가운 로아니의 말투에 루크가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어..어머니...손님 앞에서 갑자기 너무.."
"맞아요 어머니..."
뒤이어 잠시 상황을 이해하려던 테온과 엘레니아가 급히 로아니를 제지해왔으나 로아니는 그 날카로운 눈으로 테온과 엘레니아를 째려봄으로 입을 멈추게 하고는 다시 루크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진정으로 엘레니아를 사랑하는가요?"
로아니의 뜬금없는 말에도 루크는 고민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저는 누나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대의 곁엔 다른 여인들도 많이 있지요. 그들도 사랑하는 건가요? 아님 그 여인들의 재능과 가문의 재력이 탐나 데리고 있는 건가요?"
"어머니!"
남을 배려하지 않은 로아니의 직설적인 말에 엘레니아가 황급히 로아니의 팔을 붙잡고 제지 하려했다. 허나 로아니의 표정은 오직 루크에게만 쏠려있었다. 루크는 그런 로아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일말의 고민 없이 로아니의 말에 부정하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