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회. 25 에이리스】
"그렇지 않습니다. 전 엘레니아님을 사랑하듯 다른 분들도 똑같이 사랑한답니다. 누가 더 위냐 아래냐 따윈 없이 똑같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역시...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군요 그만 돌아가도록 해요 어쩔 수 없이 아버님과 데미아스님이 맺은 태중 혼약에 의해 둘이 결혼하게 되겠지만 전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다신 찾아오지 말아 주세요."
로아니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날카롭게 선 목소리로 루크에게 완전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오히려 테온과 엘레니아가 당황하며 로아니를 말리려 했으나. 로아니는 모습은 너무나 단호해 보였다.
"저는..."
"더 할 말이 남아있나요?"
이제는 아예 루크의 말조차 끊고 단호하게 얘기하는 로아니의 모습에 그제서야 엘레니아가 화가 터졌는지 언성을 높였다.
"어머니! 도대체 왜 그러세요!!! 이렇게 다짜고짜 나가라니요!"
"엘레니아 어디서 감히 언성을 높이는 거냐 내가 그리 가르쳤더냐. 조신하게 행동해라!"
엘레니아의 말에 로아니가 엘레니아에게 조차 불만이 가득한 시선으로 대답하자 뒤이어 테온이 로아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어머니.. 그래도 이제 막 온 손님에게 일방적인 축객령이라니요.. 게다가 저희 가문과도 친분이 있는 가문에서 온 손님이기도 한데... 이건 좀."
테온의 말에 로아니의 시선이 홱 하니 돌려지며 테온을 날카롭게 째려보자 순간 테온은 너무나 놀라 딸꾹질이 나올 법했다.
"테온 넌 아직 그이가 맡긴 일이 남아 있지 않더냐?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는 것이냐? 아버지가 없다면 네가 더 노력해야지! 어서 올라가거라"
"예?...하..하지만.."
"어서!"
병약해 보이고 여리여리해 보이는 그녀에게서 이러한 박력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지 그녀는 박력 있게 테온을 나무라며 혼내자 곧 테온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2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로아니는 그런 테온을 보며 만족스런운 표정을 지어 보이곤 다시 엘레니아를 바라보자 엘레니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제발요.."
"두번 말하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그럼 가는걸로 알고 배웅은 하지 않겠어요. 피차 좋을게 없으니깐요 루크.. 그럼 몸이 좋지 않아 이만 올라가 보지요. 메르헴."
로아니는 차갑게 자기 말만 하고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메르헴을 불렀고 뒤에 있던 메르헴이 황급히 로아니를 부축하며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잠자코 로아니의 말을 듣던 루크가 로아니를 불러세우며 말했다.
"로아니님 어떻게 절 인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루크의 말에 로아니가 잠시 고개를 돌려 루크를 바라보았다. 루크의 표정엔 단호함이 서려 있었으나 로아니는 그 모습조차 성에 차지 않은지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그 말을 뒤로 로아니는 잔인하게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겨갔고 엘레니아는 잔뜩 성이난체로 씩씩거리며 로아니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문밖에서까지 엘레니아의 고성이 들려왔다.
"..."
루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로아니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기에 지금으로서 루크는 로아니의 말대로 이 저택에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남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갈등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메르헴이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며 멍하니 서 있는 루크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루크님..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것이..."
집사 메르헴이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오자. 루크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메르헴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메르헴님... 죄송하지만 오늘 여기서 신세를 져도 되겠습니까?"
"하.. 하지만.."
"부탁드릴게요."
루크가 메르헴에 까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부탁하자 메르헴이 잠시 우물쭈물 했다. 그 역시 이 집의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알았고 분명 로아니의 축객령이 있었기에 쉽사리 들어와 있으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허나 그 상대가 자기보다 한참 윗급인 귀족이며 그 유명한 아스란가의 손님이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결국 메르헴이 무언가 결심을 했는지 잠시 헛 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2층 오른쪽 방이 비어있는데..누가 들어와도 모르겠지요.."
"하하..감사합니다."
메르헴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기에 루크는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여 보였고 메르헴은 오히려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짧게 말을 했다.
"전 그저 혼잣말한 것 뿐입니다. 그럼 이만."
☆ ☆ ☆
"어머니! 정말 이러실 건가요?"
로아니의 방으로 따라 들어온 엘레니아가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그러자 로아니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는지 인상을 썼고 조심스럽게 방 테이블에 놓인 찻잔에 차를 한 모금 했다.
"뭐라 말 좀 해보세요! 이건 좀 아니잖아요!"
"로아니.. 목소리가 너무 크구나! 내가 뭐라 했느냐?"
차로 목을 축이던 로아니가 잔뜩 인상을 쓰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지금 엘레니아에겐 예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다시금 소리쳤다.
"너무하세요 어머니! 오늘 어머니에게 너무 실망했어요! 루크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나가라니요!"
"그만 쉬고 싶구나..방을 나가다오."
점차 로아니의 안색이 창백해져 갔다. 이제 더이상 엘레니아의 목소리가 듣기 힘든지 로아니는 손으로 엘레니아를 향해 휘휘 내저으며 말했으나 잔뜩 성이 난 엘레니아는 그마저도 자신의 의견을 무시한다 생각했는지 나가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
"그만...콜록...콜록!!"
결국엔 로아니가 그만하라 소리쳤으나 곧 그것의 계기가 되어 마른 기침을 연이어서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