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회. 25 에이리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 날뻔했어요."
메르헴의 말에 모두가 로아니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점차 기침이 잦아들기 시작했고 열도 서서히 식어가는지 로아니의 모습이 평온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크는 이러한 모습이 병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 그저 잠깐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거라는 것을 알고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로아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사제의 치료가 끝나고 그의 손에서 빛나던 황금색의 빛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테온이 급히 사제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수잔 사제님"
"아닙니다. 그저 신의 축복을 나눠드린 것뿐입니다. 허나! 예전보다 더욱 병세가 악화가 된 듯싶습니다. "
"그런가요.."
테온이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수잔이라 불린 사제도 그런 테온의 모습에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 속에서도 루크는 여전히 잠든 로아니의 모습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핵이야 틀림없어...그렇다면..."
루크가 로아니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나 결핵이라면 전이되는 병이었다. 그 속도가 엄청 느리고 잠복기가 길어 모르는 것 일지도 몰랐다. 결국 이들 역시 결핵의 걸릴 확률이 높았다.
'약이 필요해...'
그때였다. 엘레니아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루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그게..."
엘레니아의 말에 루크가 자신의 생각을 엘레니아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루크가 의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유명한 치료사도 아니었지만 결핵이란 병은 지구에서부터 잘 알던 병이었긴 했다. 로아니의 증상은 이 세계로 오기 전 지구에서 자신이 어릴 때 앓던 증상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구에선 진작에 알게 되어 치료해서 다행이었지만 이곳은 특별한 결핵약도 또는 결핵을 알아봐 주고 치료해줄 의사가 없는 곳이기에 결핵은 결국 로아니를 서서히 죽여가는 병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문제점은 이 병은 로아니를 넘어 테온을 비롯해 메르헴 집안 하녀들과 마지막으로 엘레니아 까지 그 마수가 뻗어 나갈 것임이 분명했기에 루크의 마음이 더더욱 조급해져 갔다.
"내가 먹었던 약들이.. 아이나 리팜핀 피라지나마이드...미친 그 약들을 여기서 어떻게 구해!"
"루크?"
혼자 중얼거리는 루크의 모습에 엘레니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재차 불러오자 루크가 다급히 엘레니아를 보며 얘기했다.
"누나 저 아스란가로 가봐야겠어요!"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작스런 루크의 말에 엘레니아가 더욱 알 수 없다는 듯이 루크를 보며 얘기했다.
"금방 다시 돌아올게!"
"무슨 일이냐니깐?"
루크의 목소리가 좀 컸을까? 모두의 시선이 루크로 향했다. 특히 테온과 메르헴의 시선이 이러한 상황에 급히 집으로 돌아간다는 루크의 말이 탐탁지 않아 보인 듯 싶었다. 혹여나 로아니가 걸린 병에 자기도 옮을까 봐 저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오해까지 둘에게 들기 시작하자 더욱 루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루크는 꼭 돌아온다는 말 만을 남기고 급히 방을 나서 마차를 타고 아스란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루크는 급히 실험실로 향하자 아스란가에있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루크를 불러세웠다.
"루크...왜 혼자 돌아온거니?"
라이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중에 얘기해 준다는 말만 남기고 루크는 한달음에 실험실로 들어가자 그 뒤를 따라 안느란테와 레이니 그리고 로제스와 에이리스까지 실험실로 들어섰다.
"항생제. 비슷한 효능이나 약초들을 조합해봐야 해! 결핵균을 잡을 수 있을 "
루크는 그간 실험실에서 약초나 여러 가지 재료들을 보며 적어둔 노트를 꺼내 보이며 천천히 하나하나 살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에 레이니가 다가와 물었다.
"루크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누나.. 잠시만요! 바빠서 나중에 얘기해줄게요!"
레이니의 물음에도 루크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대충 말을 넘기고는 여전히 자신이 적어놓은 노트에게만 시선이 가 있었다.
☆ ☆ ☆
"나서스.."
집에서부터 온 편지를 읽던 나서스가 급히 편지를 접어 품속에 넣고는 사무엘을 바라보자 사무엘이 천천히 나서스에게 다가왔다.
"사무엘...무슨 일인가?"
평소보다 표정이 더욱 좋지 않아 보이는 나서스의 모습에 사무엘은 잠시 나서스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아니님의 상태가 좋지 않은가?"
"그걸.."
사무엘의 말에 나서스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나서스를 향해 사무엘이 씁쓸하게 웃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와 함께 한 생활이 몇 년인데 자네 표정 하나 못 읽을까? 그 편지도 집에서 온 거겠지?"
"....후...그렇네..각혈하는 주기와 점점 잦아졌고 열도 더욱 높아져 가는 소식이야."
"그랬군.."
"그리고 루크가 지아란가엘 들렸다네."
"루크가?"
뜬금없는 말에 사무엘이 다시 되묻자 나서스가 괜스레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로아니가 꽤나 못 마땅했나 봐."
"그렇겠지..자네 정 힘들면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잠시 가문에 다녀오지 그런가?"
진심으로 걱정스럽게 말하는 사무엘의 말에 순간 나서스는 가문으로 돌아갈까 하는 유혹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자신만을 바라보는 병사들과 언제고 쳐들어올지 모르는 메세츠데의 적군들이 생각나자 쉽사리 가문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은 나서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되네.."
"그런가?"
"그래..지금은 전투가 더 중요해. 이리도 중요한 순간에 내가 가문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병사들에게 논란이 일어날 거야. 혹 내가 질 것 같아 도망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들에게 난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할 존재가 되었어."
나서스가 씁쓸하게 말을 이어오자 사무엘은 차마 그에게 다시 가문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서스에게 그만큼 로아니도 중요했다만 어느샌가 이곳에 남아 있을 병사들도 중요해졌기 때문이었다.
수십 수백 수천의 병사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사무엘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만 쉬러가게나...내일 또 적군들이 쳐들어 올지 모르니 말이야."
"알겠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사무엘의 모습에 나서스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결국 사무엘은 더는 그에게 어떠한 조언도 해주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혼자가 된 방 나서스가 다시 품속에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로아니...미안하네..이럴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