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회. 25 에이리스】
"음..."
조심스럽게 루크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에이리스는 혹여나 샌드위치가 맛이 없을까 봐 걱정 스런 표정으로 루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물우물 하며 샌드위치를 씹어간 루크가 목울대가 움직이며 천천히 목 안으로 넘어 가자 에이리스의 눈도 같이 루크의 목울대를 따라 움직였다.
"어..때?"
에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평소 음식을 잘 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음식솜씨를 모른 에이리스였기에 루크의 평가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루크가 슬쩍 에이리스의 모습을 보고는 괜스레 장난기가 도는듯싶자.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자 에이리스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맛없어? 미..미안해 내가..요리는 처음이라..어..어..어쩌지? 다..다시 해올까?"
꽤나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으며 에이리스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그런 에이리스의 모습에 루크는 괜시리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보다 10살 이상으로 더 많은 나이임에도 하는 행동이 자신 또래와 다름이 없다는 것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자 에이리스가 고개를 갸웃해하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서..설마?"
"하하하핫! 장난이에요 맛있어요!"
"뭐야! 난 정말 맛이 없는 줄 알고..."
"하하하 죄송해요 정말 맛있어요! 음식솜씨가 예사롭지 않은걸요?"
"그러니?"
루크는 여전히 자신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에이리스의 모습에 손을 들어 보이며 자신이 먹던 샌드위치를 건네자 에이리스가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어때요 맛있죠?"
"..응...맜있네.."
릴리때문에 맛을 보지 못하고 황급히 가져왔기에 자신의 음식을 먹는 것이 처음인 에이리스가 의외로 샌드위치가 맛이 있음을 알고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리 잘하시네요!"
그저 슬라이스한 햄과 야채 그리고 쉽게 계란을 이용한 샌드위치였지만 에이리스의 요리를 칭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지금 지어 보이는 표정을 보면 말이다. 누가 에이리스를 30대 중반의 여인이라 하겠는가? 애까지 있는 유부녀가 볼에 빵가루 까지 묻혀가며 먹는 모습에 루크는 자기도 모르게 로아니에 의해 잃었던 웃음을 되찾는 기분이 들었다.
"묻었어요 "
"어디?"
"여기요 잠시만요"
잠시 볼에 묻은 빵가루를 루크가 직접 손으로 훑어내 주자 에이리스의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마워.."
"아니에요 하하. 그나저나 고마워요 에이리스님 늦은 시간에 이런 부탁을 해서."
"아니야...좋았는걸."
"아..하핫.."
에이리스의 말에 루크 역시 멋쩍은 듯 웃어 보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그들의 주위에 순간 적막감이 휩싸였다. 갑작스레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루크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우물쭈물 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했는지 말을 하려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저기.."
"저.."
둘이 동시에 입을 열며 목소리가 겹치자. 둘 다 당황한 표정으로 급히 말을 이어갔다.
"먼저해요!"
"아..아냐 먼저해 루크 부터.."
"아니에요 먼저하세요 별거 아닌 말이었어요."
"그..그래?...나..나도야..그..그냥 힘내라구.."
에이리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크 역시 멋쩍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루크가 생각했다.
'바보야 상대는 유부녀야 왜 이러냐. 난 이미 내 아내가 될 사람도 여러 명인데 "
한편 에이리스 역시 루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으로 연실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바보 내가 왜 이러는 거야. 난 애도 있는 유부년데 루크가 이런 유부녀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서로 자신의 감정을 비난하며 있었고 다시 주위에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자 이번에 먼저 침묵을 깬건 에이리스였다.
"루..루크.."
"네?"
"아...아까 말하려고 했던 거.."
"아..그거..."
루크는 이마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왜 이러는지 모르기보단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에이리스의 모습에 기뻐하고 그의 행동을 보며 설렌다. 너무나 당연했다. 허나 지금은 자신의 주위에 이미 여러 여자가 있음은 물론 심지어 상대는 유부녀였기에 쉽사리 자신의 마음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결국 자신의 마음을 숨긴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별..별거 아니에요 그저...고마워서요....이거 샌드위치..하핫.."
"그렇구나.."
에이리스의 표정이 조금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루크는 순간 그녀의 표정을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너지는듯한 아픔이 느껴져 왔고 심장이 강하게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
"아..."
에이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루크가 아쉬운 탄성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어떠한 말도 꺼낼수가 없는 루크는 답답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국 에이리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루크는 혼자가 된 실험실에서 아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실험에 몰두하기 시작했으나. 쉽사리 실험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편 에이리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방안에 있는 거울 앞에 마주 섰다.
"이 멍청이...뭐하는거야.."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보며 에이리스가 중얼거렸다.
"상대는 젊은 남자애라고 나 같은 유부녀 따윈 안중에도 없다고 이 바보야! 하아....이곳을 나가야 하나.. 그럼 잊을 수 있을까?"
한참을 자신을 자책하던 에이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이곳을 나갈 생각까지 했다. 허나. 이곳을 나간다 한들 갈 곳이 마땅히 없었다. 게다가 릴리는 이미 이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곳에서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릴리를 위해서라도 이 곳에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한 선택임을 알기에 에이리스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검은 흑발 다행이게도 아직 남아있는 백옥의 피부 푸른색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커다란 가슴과 둔부, 유부녀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농익은 여인의 모습이었으나 에이리스는 그런 자신보다 아직 젊음이 느껴지는 레이니나 엘레니아 또는 로제스와 안느란테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밤잠을 못이루고 있을 때였다.
"여기군.."
아스란가의 정문 앞 열 댓 명의 붉은 안광을 내뿜는 흑의 인들과 그 앞에 그들을 이끄는 황금색 갑옷을 입은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는 아스란가의 정문 앞에 멈춰서며 저택을 바라보았고 곧 비릿하게 웃어보이며 흑의 인들에게 일렀다.
"가라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다 씨를 말려버리는 거다."
황급 갑옷의 사내 자이로스가 명하자. 흑의 인들이 몸을 날려 저택 안으로 잠복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