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회. 26 습격】
루크가 되묻자 메르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요즘 사제들의 수가 많아지고 치료받는 것도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는 답니다. 물론 그러한 비용조차 못내는 사람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이 만들어냈던 약품들에 비해 너무나 싼 가격이었지요 연금술사들이 만들어낸 약들은 보통 비싸기도 비싸거니와 구하기도 쉽지 않아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방법이었지요. 그나마 황성에서나마 남은 약들이 있을지 몰라도 보통의 곳에선 물약과 단약은 구하기 꽤나 힘들 겁니다."
".. 그랬군요."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쩐지 자신이 이곳에 온 뒤로 아픈 사람들을 보거나 할 땐 주로 사제의 신성력만을 이용했다. 물론 신성력이 어찌 보면 만능의 치료방법으로 보일지 몰랐으나 루크의 생각은 조금은 달랐다. 보통 신성력이라 함은 기운을 북돋아 주며 인간의 재생능력을 비이상적으로 늘려주고 고통을 잦아들게 해주었다. 그러한 방법은 병의 초기 단계에선 충분히 자가재생을 높인 힘으로 치료가 될지 몰라도 로아니처럼 오랜 시간 병에 걸려 커졌더라면 말이 달라졌다. 특히 결핵같은 잠복기가 긴 병들은 말이다 더이상 자가 재생으론 병을 잡아낼 수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흠...사제들이 성행함으로 오히려 연금술사들이 잊혀갔던 거군요."
"그렇기도 하지요 하지만 연금술사들이 잊혀 진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
메르헴이 씁쓸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의 짙은 폐쇄성 덕분이지요. 물론 그들이 만들어낸 건 충분히 위대하고 역사책의 한 줄이라도 적힐법한 위대한 발견이긴 하지만 폐쇄성 때문에 제대로 후계자를 두지 않아 결국 그들의 지식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아 홀로 가져가다 사라지길 일 수였지요, 그러니 루크님에게도 말해두고 싶습니다. 혹여나 나중에 제대로 된 후계자가 있다면 루크님의 지식을 나눠주길 바랍니다. 그래야 루크님의 위대한 업적들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메르헴의 충고 섞인 말에 루크는 두말할 거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엘레니아 역시 칭찬을 듣는 루크를 보며 절로 미소가 그려지며 다시 루크의 품 안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며칠 간 로아니의 증상을 보며 지아란가에 남아있던 루크는 충분히 자신의 약이 로아니의 병세를 완화시켜가자 만족할만한 웃음을 보일 수 있었다. 로아니 역시 자신을 도와준 루크를 향해 내색은 하지 않았다만 고마워하는 기색을 조금씩 표출해 보곤 했다.
"어머니 괜찮죠 루크?"
방에서 씁쓸한 단약을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던 로아니에게 엘레니아가 말했다. 로아니는 그런 엘레니아를 한참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가 좋은 거니?"
나름 걱정이 섞인 그녀의 말에 엘레니아가 고민할 거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여인들도 좋아한단다. 오직 너만을 바라볼 순 없을거야. 어쩌면 그것이 너에게 큰 아픔이 될지도 모른단다."
".....알아요. 하지만 루크가 저에게 주는 사랑은 진심인걸요 저도 진심이구요."
"..."
다시 로아니가 침묵했다. 평소보다 훨씬 밝아진 얼굴엔 생기가 맴돌았고 더이상 기침을 하는 일도 없어졌다. 물론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쇳소리가 섞인 마른기침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결 편해진 로아니가 다시 한번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엘레니아가 갑작스레 껴들었다.
"그 차도 루크가 만든 거에요."
"..."
엘레니아의 말에 로아니가 잠시 자신이 마시던 차를 바라보았다. 짙게 우려낸 차의 꽃향이 가득했다. 게다가 타기 편안하게 티백으로 되어있음에 확실히 괜찮은 발명이었다. 로아니는 잠시 차를 바라보다 말했다.
"나도 그렇다면 노력해보겠다."
"..네?"
로아니의 말에 엘레니아가 의아함을 보이며 되물었다.
"루크에대해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거야."
"...어머니!"
"잠시! 그렇게 감동받은 표정은 지우거라 아직 그가 괜찮다는 건 아니야! 나에겐 아직 딸을 훔쳐간 난봉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깐 말이야"
"나..난봉꾼은 또 뭐에요?"
엘레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이며 묻자 그 딱딱한 로아니의 표정에 조금은 웃음기가 섞이며 말했다.
"그 녀석의 주위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않느냐? 나에겐 난봉꾼으로 밖에 안 보이는 구나!"
"어머니도 참! 하핫."
그래도 자신의 딸을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아니의 말에 엘레니아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천천히 로아니를 끌어안았다. 예전과 다르게 로아니에게서 한기보단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고마워요"
"아직 고마워하긴 일러 만약 루크가 너에게 안 좋은 소리나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당장 나서스에게 말해 병사들을 이끌고 아스란가로 올 테니 말이야!"
"하핫 네 네 알겠어요."
☆ ☆ ☆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다. 완전히 로아니의 모습은 생기를 되찾았고 더이상 루크가 필요 없음에 슬슬 다시 아스란가로 돌아가야 할 시기였다. 엘레니아는 좀 더 로아니와 있겠다고 했지만 로아니가 자신은 충분하다며 억지로 엘레니아를 아스란가로 보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엘레니아와 루크가 다시 아스란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엘레니아가 잔뜩 심술 궂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루크의 방안에 있었고 그런 루크의 옆에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에이리스가 있었다. 뒤이어 들어온 레이니와 로제스 그리고 안느란테의 모습이 보였고 방문 밖으론 릴리와 세리스가 서로 키득거리고 있었다. 루크는 잠시 세리스를 바라보며 분명 세리스가 에이리스와 시작된 관계를 말했을 거라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으나 곧 엘레니아가 루크를 불러세웠다.
"루크...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그게.."
루크가 우물쭈물하자 에이리스가 급히 나서며 말했다.
"미..미안하구나 엘레니아..그게.."
에이리스역시 불만 가득한 엘레니아의 표정에 자기도 모르게 움추러 들었다. 그러면서 괜스레 루크의 손을 잡아보이자 엘레니아의 눈빛이 가늘게 뜨며 이마에 핏줄이 조금 쏟아나는듯 싶었다.
"하하..이게 어떻게 된거냐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