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146화 (146/412)

【146회. 27 루미에르】

"루미에르님.."

급히 재상이 무릎을 꿇고 말을 하자 아직 힘이 없는 루미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세요 재상."

"어머니!"

한편 하기 싫은 공부에 도망치고 싶었던 루이서스에게 루미에르의 모습을 보자 그새를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나와 오랜만에 방 밖으로 나온 루미에르를 향해 달려갔다. 루미에르는 그런 루이서스를 보며 한차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공부 중이었군요 황자"

"네.. 그런데 너무 어려워요!"

루이서스의 칭얼거림에 루미에르가 살짝 고개를 틀어 책상 위를 바라보자 척 보기에도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두 권의 책을 보자 루미에르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아즈문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황제의 덕목이라.. 저도 참 많이 읽었던 책이었지요. 루이서스 처음엔 무엇이든 다 힘든 법이랍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배워가다 보면 언젠간 술술 읽힐 겁니다. 그러니 힘내 보도록 해요"

루미에르가 허리를 굽혀 루이서스의 눈높이에 맞게 얘기를 해주자 루이서스가 잠시 입술을 삐죽 내밀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 황자에게 어려운 책 이기는 분명하나 지크라엘이 시켰음을 알기에 믿는 것이었다. 루미에르는 다시 한번 루이서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고 책상 앞으로 가자 루이서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책상 위에 앉아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루미에르가 옆에 있는 재상을 향해 말을 이었다.

"재상 내일 밖에 나가보려 해요."

"그게.... 무슨?"

루미에르의 말에 지크라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루미에르가 한 장의 편지를 그에게 건네었다.

"이 편지는?"

"돌아가신 마흐무드의 교황님께서 보내신 편지랍니다."

"... 아, 제가 읽어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개인적인 편지는 이미 저한테 있답니다."

"네 그럼.."

루미에르의 말에 지크라엘이 편지 봉투 속에 편지를 꺼내며 읽어가기 시작하자 편지를 읽던 지크라엘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지크라엘도 아시겠지요? 황궁으로 잠입해왔던 그 아이"

".... 예. 아스란가의 아이였죠. 그나저나 또 큰 위기가 있을 거라니..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시는 것보다 더 큰 일일까요?

지크라엘의 말에 루미에르가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저도 잘 알지 못해요 저는 더이상 성녀가 아니니깐요... 하지만 교황님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주신 편지니깐. 무언가 더 큰 일 있음이 분명해요, 그렇기에 마리에테님의 신물을 모으고 신물이 가리키는 자를 도우라 했으니깐요..."

"혹 루미에르님이 말 하신 신물들이 가리키는 자를 그 아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맞을 수도 또는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아이에게 하나 이상의 신물이 있다는 거에요."

루미에르의 말에 지크라엘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저도 같이 아스란가로 가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재상, 황자를 가르치는 일과 정무도 보아야 하잖아요? 제가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으나. 저 역시 재상보다 더 잘 알지 못하니 재상에게 부탁하는 거에요"

".... 하지만 위험하실지도.."

재상의 말에 루미에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히려 거창하게 가면 오히려 황궁을 노리는 자들에게 눈에 띄어 위험할지도 모르니, 나와 공주 세이실 그리고 근위 기사 두명 정도만 해서 몰래 다녀 올게요 어차피 아스란가는 가깝잖아요."

"... 그러시겠습니까?"

"네 그러도록 하죠."

루미에르의 말에 지크라엘이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론 루미에르가 슬픔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루미에르는 재상과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루이서스에게 다가가며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저도 가면 안 돼요?"

루이서스의 말에 오히려 지크라엘이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루이서스가 놀라 급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미에르는 그런 자신의 아들을 보며 오랜만에 밝게 웃어 보이는 듯싶었다.

"힘내렴 루이서스.. 넌 잘할 수 있어."

"네.. 어머니"

☆ ☆ ☆

"루미에르가 움직인단 소리군.."

"그렇습니다."

얼굴 가득 붕대를 칭칭 둘러 싸맨 클루드가 턱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비비며 흥미로운 시선을 보였다.

"지금 시기에? 어디로 가려는 거지?"

"지크라엘의 편지가 아스란가로 향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아스란가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스란...이라.."

자신의 앞에 부복한 사내의 말을 듣던 클루드가 아스란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순간적으로 살심이 튀어 올라 자기도 모른 세 어둠의 마나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꽉 쥐어진 주먹에 핏방울이 살짝 맺혀 흘렀다.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아스란 녀석들... 잘했다. 아즈문에 첩자를 빼지 않은 것이 다행이구나. 멍청한 녀석들 아직도 첩자가 있는지 모르다니 쯧쯧"

클루드가 비릿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혀를 찼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겠다. 부하들을 소집해라. 다시 아즈문으로 향한다."

클루드는 뒤이어 자신의 품 안에 있던 흙빛이 도는 스태프를 꺼내 들어 보이며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스태프를 바라 보았다.

"직접 가려는 것인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레이먼드가 무심한 표정으로 클루드에게 일렀다. 클루드는 급히 자신의 품 안에 스태프를 숨겨 넣으며 레이먼드를 바라보았다. 지난 연이은 실패에 레이먼드의 심기가 많이 불편한 듯 그의 표정에는 무심하면서도 그 속엔 클루드를 향한 무시가 묻어나왔다. 클루드는 그런 레이먼드의 모습을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래, 지고는 못 살지 이번에 내가 직접 나서서 끝낼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의식이 진행되어야 할 시기에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우릴 추격하는 자들도 생겼어. 지금 네 행동은 그렇게 좋은 행동으로 보이진 않는군."

"하! 마흐무드의 성 기사들 따위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난 아스란가로 가 복수를 할 테니깐."

"..."

레이먼드의 말에도 클루드의 머릿속엔 이미 의식을 진행하는 것 보다 아스란가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레이먼드 역시 클루드의 분노를 잘 알기에 더는 입을 열지 않았으나. 괜스레 또 클루드가 지고 와 의식의 제단이 들켜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들었다. 클루드는 대답 없이 자신을 향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레이먼드를 보며 괜스레 짜증이 일었고 홱 하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레이먼드는 잠시 클루드를 불러세웠다.

"교황이 죽었다. 교황이 죽고 자신의 힘을 한 성 기사와 성녀에게 마리에테의 신물을 주었다. 어쩌면 그들이 이곳을 찾는 것도 시간문제일지도 몰라.. 꼭 가야하는 가?"

마지막이었다. 레이먼드는 마지막으로 클루드를 불러 세웠으나 클루드는 비릿하게 웃어보 이며 차츰 레이먼드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클루드에게도 지금의 기회가 아스란에 복수할 최고의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금방이다. 3일 단 3일 만에 해결하고 돌아오지."

".... 3일.."

점차 멀어지는 클루드를 향해 레이먼드가 중얼거렸다. 뒤이어 그 역시 반대쪽으로 난 길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자 레이먼드의 뒤편에 그림자가 꿈틀거리더니 곧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의 인들과 같은 검은 복장에 다른 점이 있다면 얼굴을 전부 드러냈다는 것이었는데 다른 이들과 특이하게 귀가 길고 뾰족한 것이 그가 엘프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사내는 멀어져간 클루드를 한 차례 바라보고는 레이먼드에게 입을 열었다.

"스완, 클루드를 감시해라. 만약 그가 잡히면 죽여,"

"네."

스완이라 불린 엘프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급히 클루드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리자 레이먼드가 다시 묵묵히 동공 안 깊숙이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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