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157화 (157/412)

【157회. 27 루미에르】

스산한 바람이 부는 들판, 한차례 빛이 토해졌다. 순간 들판을 환하게 밝혀주던 빛이 잦아들고 안에서 루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으... 익숙해지지 않네.."

두번째로 이용한 파이시스에 텔레포트에 루크는 여전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리자 괜스레 파이시스를 보며 핀잔을 준다. 그러자 파이시스가 한차례 진동을 한다 마치 버티지 못하는 내 잘못이라는 듯이 루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밤이라 그런지 그닥 시야가 어둠에 방해받는 일은 없었다. 그저 여전히 남아 있는 부서진 마차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들판이었다.

"아리스 주변에 누군가 있나요?"

'아직 느껴지는건 없다.'

"그렇군요.. 분명 이곳으로 오라 했으니.. 어디선가 지켜볼 텐데 말이지요.."

루크가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자 저번에도 보았던 부서진 마차가 눈에 들어와 그 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조심해라!'

다급한 아리스의 외침이 루크의 머릿속에 울렸으나 둔한 루크의 움직임으로는 어찌 할 수 없어 곧 둔탁한 음과 함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충격으로 루크의 시야가 점차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아리스의 음성이 계속해서 들려왔으나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루크였다.

☆ ☆ ☆

루크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아릿한 뒤통수에 루크의 인상이 절로 일그러졌고 서서히 먹먹했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정신이 드는가?'

걱정한 것일까? 서서히 정신이 드는 루크를 향해 다급히 아리스가 말을 걸어 왔다.

'네.. 괜찮아요.'

입안이 텁텁하고 삐쩍 말라 대신 생각으로 대답한 루크가 정상으로 돌아온 시야를 들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의 앞에 줄줄이 이어진 쇠창살이 보였고 문으로 보이는 곳엔 자물쇠가 잠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니 자그맣게 나 있는 동굴에 쇠창살을 임의로 이어붙인 듯한 감옥임을 알 수 있었다.

'아리스.. 여긴 어디죠?'

'널 습격한 자가 이곳에 데려왔다. 그러곤 아쿠아리우스랑 파이시스를 가져갔지.'

'그런가요.. 그래도 다행히네요 아리스는 가져가지 않아서.'

루크가 자신의 손목에 차여있는 특색 없는 팔찌를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얼마나 지난 거죠?'

'며칠을 잠들어 있었다. 몸이 너무 허약하군'

'하..하..'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쇠창살이 있는 쪽으로 다가섰다. 문으로 보이는 곳을 흔들어 보니 역시나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클루드가 있는 아지트일까요?'

'그럴지도.'

그때였다. 한동안 특별한 거 없는 감옥을 구경하던 루크에 귓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루크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가?"

일렁이는 횃불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 여전히 붕대를 칭칭 감싸고 있었으나 루크는 알 수 있었다. 흑색의 로브를 입고 익숙한 목소리를 내는 중년의 남성 클루드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루크.. 아스란.. 오랜만이구나."

클루드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이군요"

"그래 날 기억하는군! 크흐흐 나 역시 널 잊지 못하고 있었다. 널 잊으려 할 때마다 이 상처가 어찌나 욱신거리던지"

비릿하게 웃으며 소리치는 클루드가 손을 들어 자신의 화상으로 그을려진 얼굴을 가리켰다. 그러자 루크의 시선도 자연스레 흉측하게 변한 클루드의 상처 쪽을 향해 시선이 돌아갔다. 여전히 핏물과 노란 진물이 세어 나오는 붕대는 한동안 갈아주지 않은 것일까? 꽤, 꽤지지하다. 루크의 인상이 자연스레 일그러지며 다시 시선을 떼려 했다.

"눈을 돌리지 마라!"

갑작스레 클루드가 노성을 띄며 소리쳤다. 그의 눈엔 분노와 증오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네 녀석이 만들어낸 상처니깐! 그나저나 분명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세 개의 신물이라 했는데... 왜 두개뿐이지? 아리스는 어디 있는 것이냐?"

노성을 띄던 클루드가 다시금 차분해진 모습으로 루크에게 일렀다. 그러면서 자신의 품 안에 파이시스와 아쿠아리우스를 꺼내 보이며 말을 하자 루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먼저, 황후님과 공주님은 어디 계시죠?"

"호오. 그래! 루미에르...아주 잘 있지. 네 녀석이 나름의 약속을 잘 지켜 아직 무사하게 있다. 허나 마지막 아리스를 넘겨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텐데 말이지. 다시 묻도록 하지 아리스는 어디 있느냐?"

"하!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고! 먼저 황후님과 공주님이 잘 있는지 보여줘 이쪽으로 데려오던가 그렇지 않으면 아리스를 건네지 않겠어"

루크로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루크가 이곳에 모두의 반대를 무릅 쓰고 몰래 온 이유가 루미에르와 세이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클루드는 그런 루크를 보며 잠시 입을 열지 않다가 서서히 입가에 섬뜩한 웃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진득한 살기가 루크를 향해 스며들기 시작했으나 루크의 모습은 꽤 당당하게 보였다. 마치 잃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좋다... 데리고 와라."

클루드가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클루드의 뒤편에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그가 왔던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한 사내가 루미에르와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세이실을 데리고 왔다.

"루미에르님!"

"당신은..."

루미에르의 눈이 커져 올랐다. 황궁에서 봤던 아이가 이곳에 있다는 것에 놀란 듯 싶었으나 곧 쇠창살이 즐비한 감옥에 갇혀있다는 것에 불안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황성도 발칵 뒤집혔구요! 혹 다친 곳이라도 있습니까?"

루크가 황급히 소리치자 루미에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대가.. 이곳에.."

루미에르의 말에 루크가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아끼자 클루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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