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회. 27 루미에르】
"움직여!"
레이니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으나 요지부동의 말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연실 풀을 뜯고 배를 채우고 있었다. 엘레니아는 그런 레이니 앞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레이니.. 말도 쉬어 야해... 벌써 일주일 동안 쉬질 못했어... 이러다가 말이 먼저 죽겠어. 그리고 너도 쉬지 못했잖아. 일단 아스란가로 돌아가자.지금 네 모습을 봐 걸어다니는 시체 같다니깐."
엘레니아의 목소리에 레이니가 무심히 엘레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니의 눈가가 붉어지며 자그마한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엘레니아는 힘겹게 말에서 내리는 레이니를 부축해주며 그녀를 어깨를 살며시 감싸주자 점차 레이니의 들썩임이 커져갔다.
"루크를 찾아야 해... 엘레니아... 제발.. 루크를 찾아야 해.."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레이니의 모습에 엘레니아가 씁쓸하게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루크는.. 강한 아이잖아.. 그러니 지금은 네 몸부터 챙겨. 그래야 싸울 수 있지.."
결국 며칠간 이어졌던 수색은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아스란으로 돌아옴에 저택에 남아 있던 가족들 역시 빈손으로 돌아온 엘레니아와 레이니를 보며 허탈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루크는.."
라이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왔다. 레이니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모두를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엘레니아 역시 고개를 저어 보이자. 라이아의 눈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 때문에.."
릴리가 다시 눈물을 지으며 자책했다. 루크가 그곳으로 간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며 에이리스를 끌어안으며 자책을 하자 에이리스가 떨리는 손으로 릴리의 뒷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안느란테 혹시나 느껴지는 게 없어?"
로제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안느란테에게 물어왔다. 안느란테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다. 모두의 표정에 감출 수 없는 짙은 슬픔이 서려있었다.
레이니의 방이었다.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던 레이니가 창문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도 레이니의 마음을 아는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어느새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레이니는 여전히 불안함을 지우지 못한체 낮게 중얼거렸다.
"루크.. 어디 있니.. 제발 무사해 줘.."
한편 루크의 방이었다. 안느란테가 쓰러지듯 침대 위에 털썩 눕자 더는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침대는 싸늘한 한기만이 가득 느껴졌다. 뒤이어 기억나는 그날의 밤 얼마나 행복했던가 안느란테의 가슴이 찌르듯 행복감이 찾아들었다가 그세 괴로움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혹여나 자신이 잠들지 않았더라면 지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루크를 막을 수 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안느란테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어디 있어요.."
안느란테는 이제 더는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루크의 베개를 손으로 쓸어 내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리스역시 울다 지쳐 쓰러진 릴리를 어루어 만져주며 걱정에 잠들지 못하고 있었고 로제스 역시 분주히 자신의 상단과 연락을 나누며 루크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윈랜드였다. 훈련을 마치고 들어온 사무엘의 방안에 한 통의 편지가 있었고 편지가 자신에게 온 것임을 안 사무엘이 거리낌 없이 편지를 뜯어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굳어지는 표정, 뒤이어 들어온 나서스는 굳어진 표정의 사무엘을 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무엘? 무슨 일이 있는가?"
나서스의 물음에도 사무엘의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과 커져 오른 눈동자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나서스가 사무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사무엘.. 무슨 일이야? 이건 라이아님의 편지인가? 혹시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나서스의 물음에 사무엘이 떨리는 손으로 나서스에게 편지를 건네었다. 얼떨결에 편지를 받아든 나서스가 잠시 고개를 갸웃해하며 편지를 받아들어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금세 표정이 경악을 변해 갔다.
"... 당장... 당장 가봐야 하는거 아닌가?"
"어찌해야 좋겠는가.."
사무엘이 나서스를 향해 물어왔다. 나서스는 그런 사무엘을 보며 말했다.
"당장...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루크와 황후님이 행방불명이 되다니!"
"하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잖는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북방, 여전히 몇 번의 자잘 자잘한 교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서 상급자이자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사무엘이 그들을 버리고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병사들 역시 사무엘처럼 잡안에 큰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 혹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행방불명이 되거나 그러나 그들 역시 전시 상황에선 이곳을 이탈 할 수가 없었다. 이것 역시 군법이었기에 사무엘이 아무리 상급자라 해도 군법을 어길 수가 없었다. 사무엘은 곧 절망과 걱정어린 표정으로 나서스에게 물었으나 나서스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한 병사가 다급하게 사무엘과 나서스를 찾았다.
"적들의 습격입니다!!! "
병사의 외침은 곧 온 병영에 퍼져 조용하던 병영이 다시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나서스는 급히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여전히 멈춰 서있는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루크에 대한 걱정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무엘을 보며 나서스는 사무엘에게 잠시 쉬도록 권유 하려 했으나 사무엘은 이내 고개를 저어 보이며 자신의 옆에 놓인 투구를 들어 보였다.
"자네.."
"..."
나서스가 사무엘을 부르려 했으나. 사무엘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저으며 투구를 착용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서스는 그런 사무엘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괜찮을거야.. 루크는 강한 아이니깐... 괜찮을거야..미안하다.. 루크"
사무엘은 낮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감정은 체 다 지울순 없었는지 나서스가 보기엔 사무엘의 모습은 꽤 위태롭게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