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회. 28 잊혀진 기억】
'놔주세요! 제발...태초의 존재시여!! 제발! 저는 그를 사랑한단 말입니다! 제발! 신의 힘을 포기하라면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애절하게 애원하는 루시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 묵묵히 서 있는 의문의 존재 뒤이어 다급히 달려오는 라르문의 모습이 보였다.
"루시!"
"라르문!"
"루.. 루시를 놓아줘!"
라르문이란 남자의 손에 기다란 롱소드가 한 자루 들려있었다. 그러나 검을 사용하지를 않았는지 그의 폼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 엉성한 폼으로 힘겹게 검을 들어 보이며 의문의 존재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루시가 급히 소리치며 그를 제지했다.
"그러지 말아요!! 라르문! 제발!"
라르문은 루시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문의 존재 앞에 다가섰다. 그러고는 들려진 검이 빠르게 아래로 내려 쳐지며 존재를 베어내려 했다. 그러나 마치 투명한 벽에 막힌듯 라르문의 검이 그대로 멈춰 서자. 라르문의 표정이 깊은 당혹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태초의 존재는 손쉽게 라르문의 검을 막아내고는 점차 아무것도 없이 검은색의 실루엣으로 된 몸이 일렁이더니 곧 평범한 사람처럼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한 존재의 변화에 라르문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으나 결국 털끝 하나 그를 베지 못했다.
"방해하지 말거라."
천천히 열리는 존재의 음성, 그 음성은 범접할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었고 평범한 라르문의 몸에 항거 할 수 없는 위압감을 주기엔 너무나 충분했다. 라르문은 그대로 굳어버린 몸으로 원망스럽게 존재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도를 넘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태초의 존재시여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대신..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 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답니다."
"너희들이 자아낸 무분별한 살생과 인간들이 충분히 누려야 할 륜에 간섭한 죄 내 친히 이차원에 왔으니. 너희에 모든걸 빼앗아 갈터이니."
"제발.. 죄송합니다.. 전 그러지 않았어요 제발... 그러니 제발"
루시가 애절한 표정으로 애원했으나 존재의 표정은 너무나 무심했다. 북풍의 한기보다 더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라르문도 같이 무릎을 꿇며 외쳤다.
"제발 루시를 살려주세요 저는 어떻게든 되어도 좋으니 루시만은 살려주세요!"
라르문의 목소리에 루시가 급히 고개를 저었으나 태초의 존재가 손을 들어 둘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나에게 자비를 바라지 말지 어니."
"아.. 안돼!! 안돼! 라르문!! "
존재의 목소리 뒤 세상이 멈춰 버렸다. 루시는 급히 몸을 일으켜 라르문을 향해 달려 가려 했으나. 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힌 듯 다가갈 수가 없었다.
"너희들에 모든 감정, 욕망, 그리고 자유를 빼앗아 평생 차원을 관리하는 벌을 내리겠다."
존재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뒤이어 멈췄던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라르문의 시야에 곧 루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 루시.."
마치 모래가 날리듯 몸이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리는 루시의 모습을 보던 라르문이 어찌할 줄 몰라하며 루시를 바라보고 소리쳤다.
"루시..안돼... 안돼!"
떨리는 손으로 루시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모래를 잡는 것 마냥 가루가 되어 사라져간다.
"떠나지 말아줘.. 제발 .. 루시!"
"라르문.."
"루시. .제발"
"날.. 잊지 말아줘.."
힘겹게 열린 루시의 목소리를 들으며 라르문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안돼..제발.. 제발 루시."
"사랑해.. 다시... 만나는.. 날까지.. 기다릴게..."
"안돼.. 제발 제발"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모래가 되어 바람에 날리는 루시를 향해 라르문이 허우적거리며 잡으려 했으나 그저 애꿎은 허공만 붙잡을 뿐이었다. 그 장면을 끝으로 다시금 세상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루크의 시야가 순간 빙빙 돌며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기까지 했다가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이는 장면 수많은 사람들이 제라드를 향해 칼을 빼 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라르문의 눈은 공허할 뿐이었다.
"신들과 내통한 자들을 죽여라! 인간들을 배신하고 신들과 내통한 자들을 모두 죽여!"
사람들의 외침 속에도 라르문은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뒤이어 강제로 라르문과 몇몇 사제들을 끌어다 커다란 나무 틀 위에 묶어 놓고는 그 아래 많은 장작들을 하늘 높이 쌓기 시작했다.
"불태워라!!"
"신들의 하수인들을 모두 불태워라!"
신들에 의한 배신에 광기의 찬 사람들은 잔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소리쳤다. 몇몇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한껏 굉소를 보이고 있었다. 라르문은 그러한 그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나. 겁을 먹어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다. 오직 그녀를 향한 슬픔이 가시지 않고 눈물이 되어 흐를 뿐이었다.
뒤이어 한 사내가 횃불을 장작 위에 던져 넣자 여러 사람들이 하나 같이 들고 있는 횃불들을 장작 위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작은 불씨는 마른 장작을 만나자마자 거대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커져오른 화마는 곧 커다란 아가리를 벌려 라르문을 단번에 삼켜가자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끄윽."
화마로 인한 고통이었을까? 아님 그녀를 잃은 슬픔에 대한 고통이었을까 라르문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도 간신히 고통을 참아내려 했으나 그것이 마음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꾹 참아낸 신음은 완전히 새카맣게 그을린 상태가 되어서도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되어 갈 때까지 별다른 신음 없이 죽음을 맞이할 때 갑작스레 하늘에서 거대한 천둥이 여러번 내리 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한 태양이 비추고 있었것만 어느새 우중충해진 하늘은 곧 폭풍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하늘에 그려지는 의문에 얼굴에 사람들의 모습에 짙은 불안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신들에 의해 고통을 받은 너희들을 잘 알고 있다. 허나 도를 넘는구나...너희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살인자들 너희 역시 죄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차원들의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신들과 같은 크기에 벌을 내릴지니.!"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가 지나가고 세상은 마치 고요하게 쥐죽은 듯 잠잠해졌다. 내려치던 천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고 비는 더이상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어..어.. 이게 뭐야!!"
"끄아악"
몇몇 사람들의 모습에 주름이 잔뜩 생겨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목소리고 늙은 노인의 목소리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병에 걸린 듯 안색이 파리해지고 꽤나 심각한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버..벌이야... 신벌이야!!"
한 사내의 외침은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곧 그 자리를 벗어나려 혼비백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장면을 끝으로 모든 장면이 막을 내렸다. 루크는 지금의 장면들과 기억들이 혹 꿈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뒤이어 루크가 다시 주변을 깨닫자 자신의 뒤에 한 여인이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익숙한 모습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 루크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루..시?"
".."
그러나 그녀에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루크는 왜인지 모르게 그녀에게서 지독한 슬픔이 느껴져 왔다. 그러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