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166화 (166/412)

【166회. 28 잊혀진 기억】

"미..안해요."

"라르문.."

"저는... 저는 루크 아스란이에요.. 저는 라르문이.. 아니에요."

".."

루크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진실되게 말하자 다시 루시의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루시의 표정이 점차 불안해 지며 온몸이 떨려오는 듯 하다. 그러던 루시가 허공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저에게 내리는 벌이었습니까? 태초의 존재시여!"

그녀가 애절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 없이 오직 그녀의 외침만이 가득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이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왜 나에게 이런 벌을 내리는 거야! 난 인간들을 죽이지 않았어!! 않았다고!! 대답해주세요!!!"

그녀는 자신의 양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기다란 손톱에 의해 그녀의 몸에 생채기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루크가 한껏 당황했다. 안 그래도 이런 일이 적지 않았는지 그녀가 입고있는 검은 드레스에 살이 보이는 부분에는 도중도중 비슷한 생채기가 조금씩 엿보였다.

"저..저기."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왜!! 왜 나에게!!"

마치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이러할까 루크는 자해를 하는 그녀를 제지하려 양손을 잡았으나. 여전히 혼자 허공에 대고 연실 소리치는 루시였다.

"그.. 그러지 말아요!"

"제발.!!!!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 이 모든 게!! 내가 얼마나..얼마나 기다렸는데!!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당신은 그러면 안 됐어!! 난 그 어둠 속에 몇천 년을 혼자 있었다고!!!!!!"

그녀가 루크를 향해 소리쳤다. 루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는 다시금 자신의 몸을 자해하려 하자. 루크가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감싸 안아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발 그러지 마요.."

"흑..이럴 순..없어...이럴 순.없어.라르문! .제발....날 잊지 말아 준다 했잖아..제발.. 라르문."

루크의 품에 안겨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를 향해 루크는 자신이 라르문이 아니라는 말을 다신 할 수가 없었다. 점차 그녀를 향한 연민이 가득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혼자서 얼마나 외로히 라르문이란 자를 기다리며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루크는 쉽사리 그녀의 기대를 깨기가 쉽지가 않았다.

"라르문.. 제발... 제발 날 잊지 말아줘요 제발"

"..루시.."

"제발 다시 혼자가 되기 싫어요 너무 힘들어요 제발... 그래... 라르문을 죽인 사람들을 다 죽이는 거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이면!! 라르문도 분명 기뻐서 돌아올지도 몰라!! 그렇지!! 라르문!! 다 죽이는 거야!"

지독한 슬픔 뒤 끓어 넘치는 분노가 다시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루크는 다급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이런..안돼요!"

"아냐! 다 죽이면 되는 거야!! 그렇지!! 그러면 다시 돌아 올거지? 그렇지!! 하하핫!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그..그런."

"그래 생각났어!! 라르문이 죽은 것처럼 모두 불태워 죽일 거야! 모든 인간들을!!"

점차 그녀의 광기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루크는 그런 그녀를 더이상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그녀라면 진정으로 모든 이들을 불태워 죽일 지옥의 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루크는 무언가 결심했는지 그녀의 얼굴을 붙잡아 자신에 눈에 맞추며 대답했다.

"루시! 그러면 안 돼요!"

"라..르문.."

한참을 광기를 보이던 그녀가 다시금 멈춰섰다. 루크는 잠시 한숨을 길게 내쉬자. 뒤이어 그녀가 마치 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흑... 라르문 맞지? 맞는 거야? 그렇지!"

"루시."

"제발 날 다시 혼자 두지 말아요! 무서워요 .. 제발"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에 루크의 눈가에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싶었다.

"대답해줘요.. 라르문 제발요"

그녀의 지독히 차가운 슬픔 속에 루크는 다시 자신은 라르문이 아니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던 루크가 무언가 결심했는지 루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그래... 루시.. 걱정하지 마요.. 여기 있잖아요.."

"라르문... 라르문 맞는 거지?"

"맞아요... 루시.. 라르문이에요"

"라르문.."

그녀가 루크의 품에 꼭 안겨왔다. 그러자 그녀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루크는 그런 그녀를 더욱 강하게 끌어 안아주며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루시"

"응.."

☆ ☆ ☆

한편 동공안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레이먼드님! 마흐무드의 성기사들과 성녀까지 함께한듯합니다. 지금은 몸을 피신하는 것이.."

흑의를 입은 사내가 레이먼드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레이먼드는 잠시 고민을 하다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앞을 바라보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제단 위 꽤 지지한 붕대로 온몸이 감겨져있는 여인의 육체가 보였다. 그 여인에게 짙은 핏빛의 힘이 스며들고 있는 상황에서 발을 빼기가 꽤 어려웠다.

"아직 의식이 다 끝나지 못 했다."

"하지만.. 곧... 성기사들이 몰려올 겁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의식을 방해 받을 지도 모릅니다. 어서 메세츠데로 가야 합니다."

"...흠."

레이먼드가 깊은 고민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슬슬 의식의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곧 자신이 염원했던 거대한 신이 깨어날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즈문이든 마흐무드든 서쪽에 요르문간드든 자신의 발아래 두고 지난 핍박을 받던 흑마법사들이 다시 하늘 아래 떳떳이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의식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이내 못마땅 했다.

"젠장.. 클루드는 무엇을 하고 있지?"

"그것이.. 보이질 않습니다."

"망할 자식."

레이먼드가 인상을 구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때였다. 빛이 폭사 됨 동시에 들려오는 폭음 레이먼드의 시선이 절로 폭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멈춰라! 더러운 흑마법사들이어!"

백색의 갑옷을 입고, 몬스터들의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금발의 성기사 쥬디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뒤로 수많은 성기사들과 사제들 마지막으로 성녀의 모습이 보이자 레이먼드의 얼굴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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