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168화 (168/412)

【168회. 28 잊혀진 기억】

클루드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이번엔 쥬디스를 바라보았다. 제단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클루드는 순간 저것을 막아야 하나 아니면 바라만 봐야하나 고민에 빠져들었다.

"모든 악을 심판하겠다!"

쥬디스가 끌어오는 힘에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자 그의 검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클루드는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자 잔뜩 인상을 구기며 스태프의 힘을 쥬디스에게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제단 역시 자신에게 위험이 될 거대한 빛의 힘에 자연스레 막을 형성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으나. 쥬디스의 힘은 그것보다 더 웃도는 듯싶었다.

거대한 빛은 순식간에 동공을 가득 채워 폭사 되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사물들이 지워진 듯 온통 세상이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빛은 모든 어둠을 지워가고 있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 폭사 되어가던 빛이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동공을 가득 채운 빛이 점차 잠잠해지고 뿌연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안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감춰가자 곧 쥬디스를 비롯해 성기사들과 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도 거대한 폭발이 있을 때 성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성녀와 사제들을 잘 보호한 듯싶었다. 쥬디스는 자신도 예상치 못한 힘에 혹여나 성녀까지 이 힘에 휩쓸리지 않았을까 싶은 걱정을 했으나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쥬디스가 급히 성녀에게 묻자 성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곤 제단이 있던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게..."

제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애초에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흔한 돌무더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사라진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곳에 같이 있던 클루드를 비롯해 레이먼드의 시체까지 보이지 않았다.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쥬디스의 힘에 모두가 무로 돌아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흠.. 성기사단은 들어라."

쥬디스 역시 사라진 제단을 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놀라 하던 성기사들도 곧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쥬디스의 앞에 나란히 줄을 맞춰 섰다.

"이 동굴을 샅샅이 수색하거라! 이상이 있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아직 위험이 다 가셨는지 알 수 없으니 조를 이루어 행동하라!"

"네!"

쥬디스의 외침에 성기사단은 급히 일사불란하게 몇몇 조를 만들더니 동공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성기사가 급히 쥬디스와 성녀를 불렀다.

"단장! 이곳에! 누군가 있습니다!"

성기사의 말에 쥬디스와 성녀는 급히 걸음을 옮겨 성기사가 소리쳤던 곳으로 향했다.

"흠.."

감옥으로 보이는 곳, 한 남성과 여성이 누워있었다. 남성은 여기저기 심한 상처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아주 깨끗한 상태에 긴 흑발을 늘어뜨리고 새근거리며 잠들어있었는데 왠지 모를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여자이기에 성녀와 쥬디스는 한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혹시 무언가 느껴지십니까?"

쥬디스가 여전히 신원을 알수 없는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며 성녀에게 묻자 성녀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남성을 바라보았다. 혹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한 상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약하지만, 남성으로부터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숨소리는 끊길 듯 끊길 듯하지만 여전히 그 가느다란 숨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이 용하네요 이 남자는.."

크리스티나의 말에 쥬디스 역시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고개를 숙여 숨을 확인 하자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숨이 붙어있군요."

"일단... 치료를 해보도록 하지요."

크리스티나는 급히 손을 남성을 향해 손을 뻗어 기도문을 외어가자 곧 크리스티나의 손에 황금빛의 물결이 일렁이더니 남성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신성력은 남자의 몸을 감싸긴 했으나 쉽사리 치료가 되지 않았다. 마치 남성의 몸이 크리스티나의 신성력을 거부하 듯 크리스티나는 의아함을 표하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네요... 제힘이 이분에게 닿지 않아요."

"혹... 흑마법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 흔한 마나 조차... 평범한 사람이에요. 옆에 있는 여성분처럼요.. 일단 마흐무드로 데려가 봐야 겠어요."

"하지만 신분이 불분명한 자들입니다."

쥬디스의 말에 크리스티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쥬디스 괜찮을 거에요 악에 힘이든 뭐든 일단 마나 자체가 느껴지지 않아요 평생 마나를 배우지 못한 사람 같아요, 이 여인도 그렇구요. 그리고 이 자들을 깨운다면 그자들에 대해 무언가 더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흠.."

"어서요."

여전히 쓰러져 있는 둘을 보며 고민을 하던 쥬디스의 모습에 크리스티나가 닦달하자 이내 쥬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쥬디스가 동의하자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밝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 그럼 마흐무드로 돌아가요"

"예"

☆ ☆ ☆

한편 아스란가였다.

"아.."

오늘도 울다 지쳐 잠이 든 안느란테가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 여기저기 마치 무언가에 찢기고 베인 듯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안느란테는 계속해서 몰아치는 고통에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는 정신이 문제가 아닌 마음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연이어 밀려오자 안느란테는 불안한 마음을 고쳐잡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

말라버린 것 같은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이 고통의 주인, 이 고통이 어디서부터 전해져 오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눈을 감으면 루크의 모습이 떠올랐고 안느란테 자신조차 영혼의 피해가 갈 정도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루크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안느란테를 더 걱정시키는 것은 아주 가는 숨 때문이었다. 언제고 그 숨이 끊어지지 않을까 싶은 한 줌의 숨은 찰나의 불어오는 옅은 바람에도 끊어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루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