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회. 28 잊혀진 기억】
그러나 다음에 드는 느낌은 그래도 살아있다는 안도감, 안느란테는 이것이 걱정인지 아님 기쁨인지 모를 눈물을 쏟아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루크와 이어져 있음에 느껴지는 영혼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왔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쉽지가 않았다.
루크를 찾기 위해 루크와 이어져 있던 영혼의 끈을 좀 더 강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영혼의 끈을 끊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고 또 루크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사..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점점더 심해지는 고통은 그만큼 루크가 받는 고통은 이것보다 더하다는 소리였다. 안느란테는 한시라도 빨리 루크가 살아있고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후들후들 떨려오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로웠고 온 몸은 마치 천근만근이다. 고작 한 걸음을 움직이는 것 조차 쉽지가 않았다.
"참아야 해... 후...후우.."
루크와 영혼의 끈을 유지한 체 안느란테가 힘겹게 걸음을 옮겨 방 밖으로 나섰다. 혹 지금이라도 고통을 잠깐 잊기 위해 인연의 끈을 잠시 막아둘까 생각했으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그가 어떠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누...누구 없어요?"
힘겹게 방문을 열었다. 안느란테는 간신히 얼굴을 밖에다 빼 소리치려 했으나. 텁텁한 입에서는 쇳소리가 흘러나와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점점 더 루크와 연결된 영혼의 끈이 짙어지자 안느란테에게 다가오는 고통은 더욱 짙어져 갔다.
"하아......"
뒤이어 강해진 영혼의 끈은 그동안 루크가 겪었던 모든 아픔들에 대한 장면이 안느란테의 머릿속에 지나쳐갔다. 안느란테는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잔인하게 당한 고문의 흔적 이대로 있다간 안느란테의 몸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질 듯싶었다.
"제..제발.. 누..누구 없어요!!"
어두운 복도를 향해 안느란테가 힘겹게 소리쳤다. 며칠째 이 어두운 복도는 불이 켜질 생각이 없었다. 루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저택 자체가 죽어버린듯 저택은 고요하기만 했다.
"누가... 누가 좀 나와줘요!!"
계속해서 몰아치는 루크의 대한 기억, 안느란테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간신히 힘을 쥐어짜네 외치고 또 외쳤을까? 어디선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도와줘요."
저만치서 복도에 쓰러져 애타게 누군가를 찾는 안느란테의 모습이 본 금발의 여인은 급히 안느란테를 향해 달려갔다.
"무슨 일인가요? 안느란테?"
그제서야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방 여기저기서 불빛이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루..루크가 느껴져요... 루크가."
☆ ☆ ☆
아스란가에 자리한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한시라도 황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재상에게 간신히 부탁해 며칠간 이곳에 머물러 루크를 찾아보겠다 했던 루미에르였다. 얼마나 반대했는지 재상은 처음으로 루미에르에게 화를 내기도 했으나. 이대로 혼자 황궁으로 가기엔 너무나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루미에르였다. 그렇기에 그나마 공주만 데려가고 혼자 아스란가에 남았던 루미에르는 매일을 루크가 돌아오길 기도하며 황궁의 로열나이트에게 부탁해 아스란가의 사람들과 같이 수색을 부탁했다. 그리고 오늘도 신인 라우엘을 향해 그가 제발 살아 돌아와 달라고 기도를 하던 시간이었다.
"없..어...요?"
기도를 하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루미에르에 귓가를 괴롭혔다. 루미에르는 혹여나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구..없.."
그러나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는 곧 루미에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란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저만치 안느란테의 방문이 열리며 안느란테가 힘겹게 누군가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안느란테! 무슨 일이에요?! 안느란테!"
루미에르가 급히 달려가 안느란테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안느란테의 입술 사이로 루크가 느껴진다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루미에르의 얼굴이 놀람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다른 아스란가의 식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어두운 밤 아스란가의 저택은 오랜만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레이니가 안느란테를 번쩍 들어 침대 위에 눕혔다. 뒤이어 모두가 안느란테의 방에 모여 안느란테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얼굴에 안느란테를 향한 걱정이 스며있었으나. 루크에 대한 소식을 바라는 눈치 역시 가득했다.
"어서.. 말해 봐 안느란테. 루크는 지금 어딨는 거야? 루크는 지금 괜찮기는 한 거야?"
참을성이 없는 레이니가 급히 안느란테를 향해 물었다. 안느란테는 잠시 레이니를 바라보다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다가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런데.. 너무 고통스러워해요 너무 많은 고문을 당한 것 같아요 온몸이 피투성이로.."
루크에 대해 묘사를 하던 안느란테가 이내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다시금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런 안느란테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
"살아... 있는거지?"
엘레니아가 조심스럽게 묻자 안느란테가 간신히 눈물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숨이 굉장히 가늘어요..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건 확실해요"
"그렇다면.... 당장 루크에게 가야겠어! 말해줘! 루크는 지금 어딨는 거야?"
"좀 더.. 확인해볼게요."
안느란테의 눈이 차츰 감겨졌다. 그러자 만신창이가 된 루크의 모습이 보이자 안느란테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루크에 대해 영혼의 끈을 놓치 않으려 했다. 그러자 서서히 루크의 주변이 보이는 듯싶었다. 그때였을까
"넌 누구야?"
흑발의 여인, 하얀 피부와 흑색의 커다란 눈동자는 안느란테를 한껏 째려보고 있었다. 안느란테로서는 처음 보는 여인이 갑작스레 나타나자 안느란테는 꽤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당..신은 누구시죠?"
"내가 먼저 물었잖아! 넌 누구야?"
"전... 루크의 연인이에요"
"연인? 그게 뭐지?"
흑발의 여인이 고개를 갸웃해하며 물어왔다.
"그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요.. 저와 그는 이어져 있지요. 그래서 그의 심상에 제가 들어올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사랑한 사이는 안 돼! 라르문은 오직 내꺼야!"
"예?"
갑작스레 돌변한 여인은 안느란테를 째려보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