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170화 (170/412)

【170회. 28 잊혀진 기억】

"그..그게무슨?"

"라르문은 내 것이라고! 그러니 당장 꺼져! 이곳에 오지 마! 여긴 나와 그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니깐!"

그녀는 안느란테를 향해 한 손을 들어 휘저어 보이자. 곧 거센 강풍이 안느란테를 덮쳤다.

"꺄악"

눈을 뜰 수조차 없는 거대한 강풍은 곧 안느란테와 루크와 연결되어있는 영혼의 끈을 끊어버리기에 충분했고 곧 안느란테의 정신은 다시 아스란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안느란테 괜찮아?"

레이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오자 안느란테의 눈이 차츰 떠졌다.

"이상해요.."

"무슨 일이에요?"

연실 땀을 흘리는 안느란테의 모습에 레이니가 급히 안느란테의 땀을 닦아내 주며 물었다.

"그의 마음속에 누군가 한 명이 더 있어요 그녀가 절 쫓아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르겠어요.. 저도 누군가가 제가 그를 찾는데 방해하는 것 같아요."

"... 도대체 그게.."

안느란테의 말을 듣던 레이니가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으나 안느란테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 ☆

한편 성녀와 성기사들이 만들어낸 긴 행렬이었다. 각자의 말 위에 탄 성기사들은 여러대의 마차를 중심으로 진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말 위에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쥬디스가 3대의 마차중 가장 위쪽에 있는 마차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곧 마흐무드 입니다. 성녀님"

쥬디스의 말에 마차에 탄 크리스티나가 마차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살짝 고개를 내밀자. 차가운 바람이 크리스티나의 붉은 머리칼을 훑어 지나가자 크리스티나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그러고 보이는 아름다운 백색의 도시, 그중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거대한 라우엘의 동상과 그 뒤로 커다란 성 같은 모습이 눈에 띄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크리스티나~ 도착 한 거야?"

눈을 비비며 언제 나왔는지 제미나이가 크리스티나의 양어깨에 앉아 그 작은 일을 조잘거리자 크리스티나가 대답했다.

"응.."

왠지 크리스티나의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다. 제미와 나이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다시 크리스티나에게 물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는걸?"

"맞아! "

"아냐. .그냥.. 교황님이 생각나서.."

점차 가까워지는 교황청을 보며 크리스티나는 씁쓸하게 대답하자. 제미와 나이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크리스티나는 교황을 무척이나 좋아했구나?"

제미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 내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인걸! 나와 언니에겐 단 하나뿐인 아버지나 다름없으셨지.."

"그렇구나."

나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크리스티나는 다시금 마차의 창문을 닫고는 제미와 나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잠시 침울해 있어서 그런가 재미나이가 어떻게든 크리스티나의 기분을 풀기 위해 연실 재잘거리자 잠시 침울했던 크리스티나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흐무드를 통과하고 교황청에 들어선 크리스티나는 마차에 내리면서 쥬디스를 불렀다.

"일단 저분들을 치료해요 쥬디스. 전 잠시 추기경님들께 보고를 드리러 갈게요"

"그러시겠습니까? 같이 보고를 드려도 될 텐데 말이지요?"

"아니에요 저혼자도 충분해요."

"알겠습니다."

크리스티나의 말에 쥬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 다른 성기사들에게 명령하며 자리를 떠났다. 크리스티나는 그런 쥬디스를 보다 다시 걸음을 옮겨 교황청 앞에 들어섰다.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아치형으로 된 지붕과 그 지붕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기둥들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꽤 높이와 크기를 자랑하는 건물은 옛 신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크리스티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서자. 곧 자신을 반겨주는 추기경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붉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사제복을 입은 인자해 보이는 노인이 곧 크리스티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조셉 추기경님!"

"호호 크리스티나! 무사히 돌아왔어! 기다리고 있었다!"

"네! 돌아왔어요."

"그래 일단 어서 안으로 들어오거라 많이 춥구나!"

조셉은 급히 크리스티나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 ☆ ☆

"..흠.."

강한 빛이 루크의 눈가에 쏟아져 내렸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푹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몸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간신히 눈을 뜨자. 루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흰색과 금색으로 꾸며진 방안이었다. 뒤이어 커다란 창문 사이로 오랜만에 느끼는 햇빛이 들어와 루크의 얼굴을 내리쬐고 있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여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 물을 먹지 않아서 일까? 탁한 목소리엔 쇳소리가 묻어 나왔다. 그리고 이제서야 목이 텁텁해지며 심한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루크는 타는 듯한 갈증에 몸을 일으키려 하자. 몸 여기저기서 극심한 고통으로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결국 몸을 일으키는 것을 멈춰야 했다.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누인 루크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려 하자 곧 자신의 옆에서 누군가의 살결이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지?"

간신히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흑발의 긴 머리카락 하얀 피부 앵두와 같은 붉은 입술 루크의 머릿속에 한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여인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상태로 흰색의 얇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루크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루시...구나."

서서히 돌아오는 기억 그녀가 루시라는 것을 알아챈 루크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같이 누워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루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을 향해 라르문이라 하며 오해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뒤로 지난 억겁의 세월 혼자 쓸쓸히 있었을 그녀의 모습과 인간들을 증오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마지막엔 루크가 라르문을 행세를 하며 그녀를 진정시켜주었던 일이 떠오르자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리며 온몸에 느껴지는 고통보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지끈거림이 커져 왔다.

"이걸 어쩌나.."

라르문이란 사람을 기다리며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고독감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거라 생각한 루크는 괜스레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불쌍해 보이기도 하다. 루크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자 그녀가 잠시 몸을 뒤척이는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셨나요?"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루크는 다시 힘겹게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앞에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자신 또래로 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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