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회. 29 마흐무드】
"전 라르문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요 혼자 두지 않을게요.. 정말이에요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 거에요 이 말은 진심이에요."
"정말이지?"
"그럼요.."
루시의 손이 다시 루크의 얼굴에 다가갔다. 천천히 루크의 얼굴을 만져보기도 또는 루크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하다 루시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상해 분명... 넌 라르문이 맞아.. 하지만.. 아니기도 해.. 그의 후인일까? 아니면 환생이라도 한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어.. 모든 차원의 인과율은 오직 그분만이 그분... 누구였지..아... 아 안 돼.. 기억이.. 나질 않아.."
루시가 갑작스레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루크는 설마 다시 루시에게서 저번에 보았던 광기가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루시에게 전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잔뜩 두려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몸에 떨림이 커져왔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태초의 존재시여! 다신 안 그럴게요 다신 절 가둬두지 말아 주세요 제발!!"
루시의 입에서 태초의 존재라는 자가 흘러나왔다. 루크 역시 그녀의 기억을 보며 보았던 그자가 떠올랐다. 신보다 더 큰 존재에 루시가 얼마나 그 존재를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에 대해 생각하기만 하면 이렇듯 광기에 빠지는 모습에 루크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더 광기를 내보이기 전에 진정시켜야 했다.
"루시! 괜찮아요! 그분은 지금 여기 없어요!"
"죄송해요! 태초의 존재시여! 죄송해요 제발.. 제발."
"루시!"
루크가 루시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러자 루시의 떨림이 자연스레 루크에게 전달되었고, 연이어 지독한 두려움까지 루크에게 전해지는 듯싶다.
"걱정 말아요! 이곳엔 아무도 없어요 오직 저뿐이에요! 그러니 루시!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지 않아! 그분은 어디에도 있어 그분은 피할 수 없는 존재야 또다시 널 잃게 할 거야! 그분은 그럴 거야 다시.. 또 다시 널 잃어버리게 할 거라고! 그때처럼.. 그래 그때처럼 말이야 기억났어. .그래! 인간들이.. 인간들이 널 죽였어! 그래 맞아!"
서서히 루시의 몸에서 진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이어 다시 시작된 광기는 이젠 라르문을 죽였던 모든 인간들에게 향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루크에게 전해져 루크의 등에 잔뜩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아니에요! 전 여기 살아있어요! 루시! 잘 봐요!! 절 보라구요!"
불안정한 루시를 보며 루크가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루시의 눈이 초점이 흐릿하다. 루크는 더욱 언성을 높이며 루시를 부르자. 그제서야 루시의 눈이 똑바로 루크에게 향했다.
"넌.. 도대체.. 누구인 거야... 분명 라르문과 다를 게 없는데 왜 ..왜 날 모르는거야"
"...루시."
"흑.."
루시의 얼굴이 루크의 가슴팍에 기대었다. 그러자 몸의 떨림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다시 안정을 되찾는 듯싶었다.
"아무 대도 가지 않을 거에요 제가 라르문이든 그의 환생이든 아니든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어요, 나 루크 아스란은 당신을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게요."
"정..말이야?"
"그럼요"
"루크..아스란. 넌 분명 라르문이 분명해.. 난 알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루크라고 한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게."
"그러세요.."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루시의 얼굴에 그제서야 조금씩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루크는 그런 그녀를 보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걱정말아요.. 그리고 인간을 죽인다는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루크만 곁에 있는 다면 아무런 상관없어.."
"그럴게요"
"그런데.."
루시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루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보자 루시의 표정이 조금 이상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루시의 손이 들리며 루크의 가슴 부분에 대며 루시가 말을 이었다.
"자꾸 누군가 루크의 마음속에 들어오려고 해.. 안느란테?.. 그년은 누구야?"
"...예?"
"누구냐고?"
"하하.. 그게."
루시의 표정이 조금은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다시 광기가 흘러나오지 않을까 루크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안느란테.. 아직 도야?"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몰랐다. 안느란테는 계속해서 루크를 찾기 위해 애를 썼으나 누군가의 방해에의해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안느란테가 불안함이 더욱 커져갔으며 그런 안느란테를 보며 다른 가족들까지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안느란테만이 루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모두가 안느란테에게 시선이 쏠려 있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루크님이 느끼던 고통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에요"
"그건 다행이지만..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에이리스가 되묻자 안느란테가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에이리스는 조금 당황하며 괜스레 양손을 저어 보였다. 뒤이어 엘레니아가 루미에르에게 물었다.
"혹시 황궁에서는 다른 소식은 없었습니까?"
".. 지크라엘도 여전히 아무런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답니다..후"
루미에르가 씁쓸하게 대답하자. 엘레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번처럼 그렇게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가 많이 다친 것은 알았으나 안느란테의 말로는 차차 치유가 되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루크를 찾을 수 없자 괜스레 답답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일단 오늘은 좀 쉬도록 해요 안느란테도 잘 쉬지 못했잖아."
로제스가 다가오며 말했다. 확실히 모두의 얼굴은 꽤 초췌해 보였다. 루미에르 역시 황후답지 않게 진심으로 루크를 걱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로제스는 처음에 루미에르에 의해 루크가 이러한 일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불만이 가득했으나 지금은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전 괜찮아요.. 루크에 비하면."
안느란테가 낮게 중얼거렸으나. 그녀의 안색은 여전히 파리했으며 눈가에도 진한 다크서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외 레이니와 엘레니아 그리고 루미에르와 에이리스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으니깐 일단 쉬어 루크는 점점 치유되고 있다며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니 그리고 또 쉬다 보면 루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거울을 봐 안느란테 지금 꼴이 말이 아니야 루크가 보면 못 알아볼지도 몰라."
".."
로제스의 말대로 안느란테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고마워요 로제스"
"천만에"
안느란테의 말에 로제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뒤이어 다른 이들 역시 한둘씩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때 에이리스가 잠시 루미에르를 불렀다.
"루미에르님은 아직 황궁에 돌아가시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아.. 예.. 지크라엘은 돌아오길 바라는 것 같지만.. 괜찮아요. 어차피 황궁에 있어 봤자.. 답답하기만 하고 루크가 저 때문에 그런 고난을 겪었는데.. 혼자 편안하게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이상하게 헤어질 때 봤던 루크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는걸요.."
"그렇군요."
루미에르의 말에 에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이만."
루미에르가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 역시 꽤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에이리스는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잡지 못하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곧 멀어지는 루미에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저도 처음엔 그러했는데..그 마음 뿐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