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회. 29 마흐무드】
회색빛이 만연한 거대한 홀, 용과 검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은 클루드가 연신 이를 갈고 있었다. 그의 기분을 대변해주듯 지리적 특성상 햇빛 보다는 우중충한 날씨가 많은 메세츠데에 날씨는 회색빛의 성을 더욱 음산하고 우울하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황제 폐하."
그런 클루드를 향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실려있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고 아무도 없었던 클루드의 앞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래.. 맡긴 일은 어떻게 되었나?"
"예.. 모두 폐하의 아래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렇지.. 이 스태프에 레이먼드의 힘을 흡수했으니. 그의 꼭두각시들이 뭘 어쩌겠어 큭큭 스완 안 그런가?"
클루드가 낮게 일렀다. 그러자 사내의 옆에 익숙한 엘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엘프의 시선은 옆에 있는 사내와는 다르게 초점이 없는 눈을 가지고 있진 않으나 레이먼드 대신 클루드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어 보이고 있었다.
"레이먼드의 개가 나에게 충성을 다짐하다니.. 그래 네놈의 일족에 영혼은 내 이 스태프 안에 있으니, 내 말을 잘 들어야 할 거야. 큭큭."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클루드의 모습에 스완의 무심한 눈동자가 작은 파문이 일었으나 금세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스완의 모습에 클루드의 미소가 더욱 잔인하게 일그러졌다.
"좋다. 로아크, 넌 윈랜드로 가 병사들을 진두지휘해라. 네가 나의 전령이 되는 거다. 그리고 스완 너에겐 수하 몇을 붙여 줄 테니 사라진 마신의 행방을 찾아보아라."
"예"
스완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빠르게 몸을 날려 모습을 감췄다. 뒤이어 로아크라 불린 사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모습을 감추자. 다시 거대한 홀에 클루드만이 남게 되었다. 클루드는 자신의 손에 들린 아귀의 스태프를 들어 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불쾌하고도 끈적한 힘을 연실 내뿜고 있는 스태프를 보며 클루드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작게 속삭였다.
"아직.. 힘이 부족해.. 이 정도론 마리에테의 신물에 대항할 수가 없으니.. 결국 그 방법뿐이겠지.."
클루드의 눈이 불안한 감정이 잠시 맴돌았다. 자신 역시 확신할 수 없는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불안감을 떨치고는 결심을 끝냈는지 자신의 스태프를 힘껏 쥐어 보이자 서서히 클루드의 주변에 진득한 마계의 힘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거대한 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 ☆
"크흠.. 저분은 왜 ..저러고 있는 거죠?"
크리스티나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였고 한쪽에 쭈그려 앉아 루크를 향해 원망에 눈빛을 보내고 있는 루시가 낮게 중얼거렸다.
"바람둥이."
"하..하하.. 그게."
루크가 채 말을 다 끝내기도전에 루시의 말이 더 빠르자 괜스레 루크의 등에 작은 땀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리곤 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급히 루크가 말을 돌려 넘겼다.
"그나저나.. 편지 같은 걸 보낼 수 없겠습니까?"
"편지요?"
"예.. 아마도 집에서 꽤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편지라도 한 통 보내놔야 할 것 같아서.."
"아! 그렇군요! 루크님은 아스란가의 후계자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른 분에게 부탁해 편지를 붙일 수 있게 말해볼게요"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나의 호의에 루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크리스티나도 마주 보며 고개를 숙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마리에테님의 신물에 대해 말씀을 같이 나누고 싶어요"
"아.. 말씀하세요"
루크의 대답에 크리스티나의 얼굴에 웃음기가 지워졌다.
"정말 아스란가에 세 개나 되는 신물이 있다는 건가요?"
크리스티나의 물음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에게 첫 번째 별 인 아리스를 비롯해 에이리스님에게 아쿠아리우스 그리고 릴리에게 파이시스 이렇게 세 개가 있어요"
"그렇군요... 한동안 신물을 찾고 싶어 이리저리 정보를 구했는데.. 이 또한 운명처럼 한번에 세 개를 발견했군요.. 다행이에요 저에겐 제미나이와 그리고 쥬디스님에게 라이브라가 있으니. 총 다섯개.. 그나저나 아직 일곱개나 남은 신물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크리스티나는 기뻐하다가도 금세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크 역시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는 신물들을 고민하다 이내 아리스가 했던 말이 떠올라 시무룩해 있는 크리스티나에게 대답했다.
"아리스가 했던 말이 있어요 인연과 운명이 시간이 찾아온다면 자연스레 빛에 이끌려 만날 수 있을 거라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찾으려 노력은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리스의 말대로 지금 성녀님과 쥬디스님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물론 저의 무모함이 계기가 되었지만."
"하하. 꽤 무모했지요! 어떻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단신으로 그곳에 갈 생각을 했어요? 빠져 나올 계획은 했나요? 목숨이 몇 개라도 되나요?"
크리스티나의 타박에 루크가 멋쩍게 생각했다. 그때만큼은 이 머리로 황후와 공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자신의 가족들만 속인다면 어떻게든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았다. 지금으로선 참으로 무모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안 루크는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행동으로 자신은 루시를 만날 수 있었고 황후와 공주를 구할 수 있었으며 성녀와 쥬디스를 만날 수 있었다. 나름 이득이 없던 행동은 아니었던 것이라 좋게 생각 하려 했으나.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진 않을생각이었다.
"다음부터는 좀 계획을 짜고 행동하도록 해요 물론 그런 무모한 행동에 저희를 만날 순 있었으니"
"네.. 하하."
왠지 성녀에게 혼나는 듯 루크가 멋쩍게 대답하자. 이내 크리스티나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도 다행이에요, 적어도 신물 다섯 개의 행방은 알 수 있으니깐요.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죠"
"그런가요?"
"예. 교황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곧 북쪽에 모든 것을 삼키는 아귀가 몰려온다 했거든요 그래서 열두개의 신물을 빠른 시일 내에 모아, 라우엘님을 깨워야 한다고 했거든요."
"라우엘님을 깨운다고요?"
"그래요."
크리스티나가 대답했다. 그의 눈엔 교황에 대한 생각으로 한차례 씁쓸함이 스쳐 지났으나. 이내 밝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신물들은 각자 강한 힘이 있지만, 그들은 곧 하나의 제물이라 했거든요"
"제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