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회. 29 마흐무드】
루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크리스티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라우엘님을 잠시 현세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제물, 그 열두 개의 신물엔 각각 라우엘님의 힘의 파편이 들어있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요, 교황님도 그랬고요. 그저 그 열두 개의 신물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면 알 수 있다고 했어요."
크리스티나의 말에 루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물들의 힘은 평범한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으나 그것이 라우엘을 깨울 제물이 될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루크는 다시 크리스티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북쪽의 몰려온다는 적들은... 메세츠데를 말하는 건가요?"
"저희도 메세츠데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이 아즈문과 지금 대립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어요 만약 메세츠데가 뚫리게 된다면 저희는 물론 서쪽의 요르문간드로 향하는 건 불보 듯 뻔할 거에요"
크리스티나의 대답에 루크는 윈랜드에 있을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메세츠데 제국 내의 움직임도 지금 심상치가 않아요, 억지로 남성들을 전쟁에 강제징용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그리고 불어난 세금하며 전쟁 물자들을 모우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요 게다가 메세츠데에 있는 라우엘님의 신전들도 한둘 씩 강제로 철거 되기 시작했지요 아마 얼마지나지 않아 큰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그래서 지금 메세츠데에서 내려오는 난민들로 요르문간드부터 시작해 저희 까지 그 안건으로 꽤나 골머리를 썩고 있어요"
"그렇군요.. 아즈문도 난민을 받고 있나요?"
"아즈문 제국의 공작가의 후계자면서 이런 건 문외한인가 보네요?"
"하...하."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나랏일에 너무 문외한인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변명이 있다면 그동안 너무나 큰일을 여러 차례 겪어 지금 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귀족이기도 하고 그 가문이 특히 높으신! 공작가라면.. 아즈문과 메세츠데는 거진 원수지간이라 볼 수 있죠, 그건 아시지요?"
"그건...."
"그렇기에 아즈문은 웬만해선 메세츠데에 오는 난민을 받지도 않아요, 메세츠데 난민들 역시 아즈문으론 정 급하지 않는 이상 가지 않구요 그리고 윈랜드 양옆에 자리 잡은 숲 때문이기도 해요."
"숲이요?"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엔 그곳에 엘프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그 숲에는 엘프 뿐만 아니라 더 깊숙이 들어가면 몬스터들이 많이 서식 하고 있어요 아즈문으로 오기에는 전쟁지역을 건너거나 그 숲을 통과해야 하는데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그게 쉽진 않겠지요"
"그렇군요.."
루크의 기억에도 언뜻 윈랜드로 가는 도중 보았던 숲이 생각났다. 그 숲에서 안느란테를 만나게 되었고 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도 몬스터는 보지를 못했다. 아마 그리 숲 깊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크리스티나와 루크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차 방문쪽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들어오는 수녀복을 입은 한 여인이었다. 그 수녀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크리스티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말을 이었다.
"성녀님, 잠시 추기경님들께서 부르십니다."
"아.. 그런가요? 고마워요 메리 수녀님, 저는 이만 가볼게요, 편지는 곧 수녀님들에게 부탁할게요 다 적으시면 문 앞에 지나가시는 분들 아무에게나 전해주시면 될 거에요."
"아..네."
크리스티나는 그 말을 뒤로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몸을 돌려 나갔다. 조금 전과 조금은 다른 분위기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아마 난민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한 것일까? 아님 공작가의 자제라 오해하고 평민들의 삶 따위는 심이 없다고 오해를 해서 일까? 크리스티나의 눈매에 잠시 실망감이 언뜻 보였던 것 같았다.
"오해를 하셨나.. 에휴 모르겠다."
루크는 혹 자신에게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고민에 빠졌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보이며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한동안 있었던 많은 일 때문에 다른 주변일에 소홀히 했다고 생각은 했기에 이제는 좀 신경을 써야 할 듯 싶었다. 그렇게 또다른 고민이 생기려 하자
괜스레 상체에 아직 남아있는 상처가 조금씩 아려오자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침대 한 귀퉁이에 혼자 쭈그려 루크를 향해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붇던 루시가 살며시 루크에게 다가왔다.
".."
아무말 없이 루크를 바라보던 루시를 보며 루크가 너털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제 좀 화가 풀렸어요?"
"아니"
여전히 삐쳐 있는 것일까? 루시가 새초롬하게 대답했다. 루크는 괜스레 그녀를 보며 풋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다행이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고 했을 때 다시금 광기를 보이지 않을 까 싶었는데 그러진 않았다.
"어쩔 수 없어요... 전 진심으로 그분들을 사랑하니깐요."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잖아."
"...그렇긴하죠."
루크의 웃음이 곧 멋쩍게 변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렇게 많은 여자가 자신에게 생겨날지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도 있거니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저질러진 일인걸.
"너무해.."
"하하.. 미안해요."
"너무해"
"흠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려나요?"
"흠.."
루크의 물음에 루시가 잠시 고민을 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잠시 다른 곳을 향했다. 루크는 그런 루시를 보며 그 광기를 보이던 루시와 지금의 루시와는 전혀 딴판의 사람으로 느껴진다. 혹여나. 그 광기가 자신들의 여인들에게 향하면 어쩌나 햇것만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는 것에 조금 다행임을 느꼈다.
"일단 지금은 밖에 나가고 싶어. 답답해."
루시의 말에 루크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가 아직 제대로 아물지 못해 아려 왔으나 그렇다고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 역시 이 방에 계속 있다면 답답함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고 말이다.
"좋아요! 나가요 우리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요"
"정말?"
"그럼요! 이걸로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은근슬쩍 루크가 다른 이들의 관계를 넘기려 했으나 루시의 눈이 가늘어지며 흥하고 콧방귀를 꼈다.
"흥 고작 이걸로? 당연히 안돼! 이건 새 발의 피야! 그리고 나중에! 내가 그 사람들을 보고 직접 정할 거야!"
"하하.."
"일단 나가자!"
다시 루시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꽤 나가고 싶었는지 루크의 팔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