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회. 29 마흐무드】
"루크 재밌었다. 그치?"
슬슬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다시 교황청으로 돌아오는 루시는 오랜만에 한 바깥 구경 때문인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연실 조잘대고 있었다. 루크 역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슬슬 머물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즈음이었다.
"돌아오셨나요? 마흐무드는 어땠나요?"
루크와 루시를 붙잡은 음성에 루크가 고개를 돌리자 뒤편에 조금은 초췌해진 모습의 크리스티나를 볼 수 있었다.
"아..성녀님! 도시도 멋있고 맛있는 것도 많았어요 사람들도 친절했고요 좋은 도시라고 생각해요."
"다행이에요 그렇게 느끼셨다니 그나저나 아스란가로 보내는 편지는 잘 보냈다고 해요 아마 며칠 내로 아스란가에 닿을 거에요."
"아 여러모로 정말 감사합니다. 성녀님"
루크는 고마움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크리스티나도 멋쩍게 웃으며 양손을 휘저어 보였다.
"그런데 꽤 지쳐 보이시는데.. 무슨 일이라도?"
"그런가요?"
"예 얼굴이 꽤 초췌해 보여요"
루크의 물음에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푸석푸석해진 피부 꽤나 오랜시간 업무를 보고 밥도 먹지 않고 기도를 해서 일까? 아직 자신의 얼굴을 보진 못했으나 분명 엉망진창이 되었을걸 생각한 크리스티나가 얼굴을 조금 붉히며 말했다.
"그게.. 메세츠데 잠입한 분들이 돌아왔어요.. 결국, 몇분은 라우엘님의 곁으로 가셔서.. 마음이 조금 심란해서 기도를 드리고 왔거든요."
"그랬군요.."
크리스티나의 표정에 씁쓸함이 맴돌았다. 그만큼 죽음을 맞이한 성기사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나저나. 메세츠데의 상황이 그리 좋지많은 안아요."
"..그런가요?"
"잠입했던 분들의 보고에 의하면 몬스터들까지 끌어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요, 게다가 메세츠데의 귀족들은 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수하로 만들어 메세츠데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클루드.."
크리스티나의 말에 루크는 한 사내가 떠올랐다. 클루드, 그의 흑마법은 기괴하기 짝이 없고 남을 현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국의 두 개의 공작 중 한 가문인 무아란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고 왕국에 제 일 근위기사단인 황금사자단을 자신의 손아귀로 넣어 아즈문을 한번 휘청이게 했었다. 그러한 방법으로 메세츠데 역시 클루드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저번에 들었던 에이리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아마 클루드 혼자가 아닌 몇명 더 그를 도와 메세츠데를 집어 삼킨 것이리라.
"무언가 아시는게 있나요?"
상념에 빠져있던 루크를 향해 다급히 크리스티나가 물어왔다. 루크는 잠시 상념에서 빠져나와 크리스티나를 보며 말했다.
"예.. 제가 그곳에서 봤던 한 사내는 흑마법중 현혹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었어요."
"역시!"
"이름은 클루드.. 그가 아즈문의 무아란 공작가와 황금사자단을 자신의 손아귀로 넣었거든요.. 어쩌면 메세츠데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어요. 잘은 모르지만 아직 그가 얼마나 강한 힘을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혹마법과 사람의 생명력과 힘을 흡수 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그것 말고도 다른 마법도 사용을 할 수 있을 거에요"
루크의 대답에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현혹 마법이라... 그 마법은 시전자를 처치하면 간단하게 풀 마법이기도 하지만..."
"시전자를 잡지 못하면."
"그래요. 풀기 힘든 마법이기도 해요."
"아무튼 좋은 정보 감사해요, 오늘은 늦었으니 푹 쉬도록 하세요 저도 좀 쉬어야겠어요. 이미 루시는 서서 졸고 있네요."
크리스티나가 루크의 뒤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루크의 시선이 절로 뒤로 향했다. 그곳엔 피곤했는지 루시의 눈에 잔뜩 졸음이 낀 상태였다.
"그렇네요. 그럼! 다음에 또 얘기를 나누죠"
"예. 그러도록 해요."
그말을 뒤로 루크가 루시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크리스티나도 종종걸음으로 방에서 멀어져갔다.
"저 여자랑 얘기하는게 좋아?"
"응?"
어느새 다시 잠에서 깨어난 루시가 침대 앉아 루크를 째려보며 물어왔다. 루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루시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지며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루크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기 시작했다.
"아얏.. 왜그래요?"
"흥! "
루크의 물음에도 루시가 콧방귀를 낀다. 아마 크리스티나와 대화를 나눈 것에 샘을 부리는 듯 싶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크리스티나와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이제 곧 레이니 말고도 다른 여인들을 볼 텐데 과연 루시가 어떻게 행동할지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
한편 아스란가였다. 여전히 고요하던 저택에 갑작스래 라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편지..라니요?"
아스란가에 전해진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집사 루소가 허겁지겁 달려와 라이아에게 건네었다. 라이아는 초췌해진 얼굴로 루소의 편지를 받아 들자, 그 편지에 붙어있는 십자가 문장이 마흐무드를 말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흐무드에서 온 편지군요?"
라이아가 묻자 루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소는 혹여나 이 편지가 도련님에게 온 편지가 아닌가 싶었다. 라이아가 편지를 조심스레 뜯어 펼쳐 들자 곧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아.."
천천히 편지를 읽어가던 라이아의 얼굴에 점차 습기가 차올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뒤이어 안도의 숨이 내뱉어진다. 루소는 그런 라이아의 모습에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몰라 했으나 이내 라이아가 눈물을 닦아내고는 루소에게 말했다.
"라이아님..?"
"루크가.. 마흐무드에 있다는 소식이에요.. 루소.. 다행이에요...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어서 모두를 불러 주세요. 어서요"
라이아가 다급히 말하자 루소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다 이내 고개를 숙이며 급히 라이아의 방을 나섰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구나."
편지 내용은 지난 루크가 겪은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적혀 있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글씨가 참으로 괴발개발이었으나 라이아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 글씨체가 루크의 글씨체라는 것을 라이아는 기쁜 마음에 천천히 편지를 읽어나갔다.
성기사와 성녀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잘 빠져나왔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고 지금 마흐무드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라이아는 편지를 읽어 가며 그제야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듯싶었다. 마지막으로는 라이아를 비롯해 모두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으로 끝이 나자 라이아는 급히 팬을 들어 답장을 작성하고 싶어졌다.
급히 고풍스런 책상 서랍 속에 종이와 잉크와 펜을 꺼네 편지를 작성하자 뒤이어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다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