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회. 29 마흐무드】
"어머니!"
기쁨과 환희에 찬 얼굴로 레이니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뒤이어 세리스와 엘레니아를 비롯해 모든 식구가 라이아의 방에 들어오자 라이아가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편지를 레이니에게 건네었다.
레이니는 라이아가 건넨 편지를 읽어가다 이내 놀란 토끼눈이 되어 다시 라이아를 보며 물었다.
"정말인가요? 정말 이게 루크가 보낸게 맞나요?"
편지를 받아들고 읽어가던 레이니가 묻자 라이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니의 표정에도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루크의 편지가 맞아. 난 알 수 있단다 루크의 글씨체라는 것을.."
라이아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한껏 상기되어 간다.
"마흐무드에 있었다니. .그래서 찾지 못했던 거군요.. 국경을 넘었을 줄이야.."
루미에르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경을 넘었으리라 생각은 하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아즈문이 아무리 힘이 있고 제국의 호칭을 가지고 있다해도 국경 밖을 이유 없이 마음대로 수색할 수 없었기에 찾기가 쉽지 않았었다. 게다가 지금 아즈문은 황제 제이서스가 없는 시점과 메세츠데의 침략이 서서히 본격화되어가는 시기에 주변 왕국으로 수색할 병력의 부제가 컸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행이에요! 그래도 오빠가 마흐무드에 있다면 치유가 되었던 것이 이해가 돼요!"
세리스가 기쁜 듯이 소리쳤다. 마나의 저주를 받아 평범한 신성력으로는 치료를 받지 못하는 루크였기에 그곳에 있을 성녀나 고위급 사제의 힘이라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세리스! 정말 다행이야! 바보같이 루크를 치료 할 수 있는 곳은 마흐무드 뿐이란걸 왜 몰랐는지!!"
로제스가 기쁜듯 세리스를 꼭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라이아는 그런 그들을 보며 모두에게 일렀다.
"당장 마흐무드로 가야 겠구나... 모두 같이 가겠니?"
라이아의 물음에 당연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아스란가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 건가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집사 루소가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라이아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이들 중에 이곳에 남으라 하면 남을 사람이 있을까 싶었으나. 그럴 사람은 전혀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라이아 역시 이번만큼은 루크를 보러 가고 싶었기에 라이아가 잠시 한차례 모두를 돌아보았다. 생각대로 모두의 얼굴엔 같이 따라가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아마 이곳에 남겨둔다 해도 몰래라도 따라올 사람들임을 알기에 라이아는 이내 결심했는지 루소에게 말했다.
"이번엔 제롬과 가문 기사 몇을 이끌고 갈테니 루소가 대신 저택을 부탁해요"
"황궁에서도 아스란가문을 지켜달라고 부탁해볼게요!"
조용히 있던 루미에르도 손을 들어 대답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루미에르에게 향하자. 엘레니아가 입을 열었다.
"루미에르님도 혹 같이 가시려는 건가요? 마흐무드로?"
"예! 저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꼭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모두에게 이리도 사랑받는 남자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루미에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에이리스는 조심스럽게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만약 또 습격을 받거나 하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괜찮아요 에이리스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이번엔 모두와 함께 가잖아요 그리고 편지에 나와 있는 데로 그들 역시 큰 피해를 입고 사라졌다 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 게다가 전 마흐무드 출생이에요 그 누구보다도 가는 길을 잘 알아요 정 믿기 힘들다면 라이아님이 편지를 보낼 때 저도 같이 가겠다는 말을 적어주세요 분명 마흐무드의 기사들이 마중 나와 줄 거에요!"
"그..런가요.?"
루미에르가 자신있게 대답하자 에이리스가 멋쩍게 웃으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라이아가 말을이었다.
"그렇다면 지크라엘님에게 말이라도 하고 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흠.. 그런다면.. 분명 못 가게 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이번에만 부탁드릴게요 라이아님 꼭 루크에게 직접 사과를 하고 싶군요"
루미에르가 양손을 모아 부탁을 해오자 라이아는 여전히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이내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만큼 루미에르도 절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신 제롬에게 좀더 많은 수의 기사들을 이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라이아였다.
"알겠습니다.."
결국 라이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미에르의 표정에 미소가 자연스레 그려졌다. 에이리스는 그런 루미에르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저어 보이자 옆에 있던 릴리가 의아함을 느끼고 에이리스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응?.. 아니란다. 아무것도."
여전히 에이리스의 눈이 루미에르에게 향했으나 에이리스는 이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보같이 한나라의 황후가 루크에게 관심을 가질 일이 없잖아.'
에이리스 역시 한 나라의 황후였다는 것을 잊은 듯 했다.
"그럼 마흐무드로 같이 가실분이 꽤 많으니 루소 마차 두 대분 하고 어서 제롬에게 말해주세요 같이 갈 기사 몇을 뽑아달라고요"
"알겠습니다."
라이아의 부탁을 들은 루소가 급히 방을 나서자 모두가 기대의 찬 눈과 겨우 루크를 만날 수 있을거란 기대감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마흐무드로 가기 위해 바빠진 하루였던 그 시각 윈랜드였다. 아즈문과 메세츠데의 국경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방벽 위 지평선 끝에 보이는 메세츠데의 방어선을 보며 사무엘이 낮게 일렀다.
"고요하군요?"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뒤이어 지크문드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메세츠데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아스 역시 지크문드의 말에 동의하는지 무게감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무언가 심상치가 않구나. 요즘에는 습격하는 수도 많이 줄었어. 무엇 때문일까..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데 말이야.."
"이제는 더이상 소모전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 같군요."
나서스 역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묻자 데미아스가 침을 성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고요함이.. 폭풍의 눈과도 같구나."
지크문드가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은 먹 구름 한 점 없는 푸르고 높은 하늘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겨울이 아닌 가을 하늘의 푸른 하늘 같았으나. 언제고 또 눈이 내릴지 몰랐다.
"크게 한바탕 몰아칠지도 몰라. 준비해야겠지"
지크문드의 말에 모두의 눈에 서서히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나저나 사무엘 루크에게 부탁할 일이 있구나"
"루크..에게요?"
데미아스의 물음에 긴장감이 서려있던 사무엘이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변하자 데미아스가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뭘 그리 당황하느냐? 그 녀석이 만든 폭탄 말이다. 그걸 대량으로 생산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구나, 분명 우리 군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
"그래.. 마법처럼 정신력과 마나 소비도 없고 누구나 사용 할 수 있으니 우리에게 그만큼 좋은 무기가 없을테니 말이야"
지크문드 역시 데미아스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무엘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옆에 있는 나서스도 덩달아 표정이 굳어지자 데미아스의 눈썹이 꿈틀하며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루크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나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 있나 보구나? 예전부터 너는 그랬지.. 거짓말을 잘하지 못했지 이번에도 너의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구나.. 말해보거라."
"그게.."
데미아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곤 사무엘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사무엘은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품속에서 한장의 서신을 꺼내 데미아스에게 전달하자 데미아스가 편지를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