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회. 29 마흐무드】
"루시.. 아직도 라르문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응? 여기 있잖아. 루크가 라르문이잖아."
루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하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을 향해 광기를 보이던 루시, 라르문이 어떻게 죽었는지 얘기를 하며 타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그녀는 어느순간부터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루시가 혼자였을 때 기억은요?"
"음.. 글쎄.. 이상해 기억이 나질 않아... 굉장히 슬프고 무서웠다는 건 알겠는데. 잘은 모르겠는걸"
"그런가요..."
"응.. 그래서 기억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다보면 괜히 화가 나고 또 슬퍼지기도 해서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요 그럼.. 하지말아요."
"응."
루크의 대답에 루시는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아 루크의 품에 파묻혔다. 루크는 그런 루시를 보며 한편으론 다행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기억을 봉인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완전히 잊어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루크로서는 참으로 다행인 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한편 늦은 시각 한창 업무를 보던 크리스티나는 서서히 차오르는 피곤함에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대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동안 쉬질 못해서일까? 몸은 천근만근에 어깨며 허리까지 온몸이 아우성을 친다.
그런 크리스티나가 걱정되었는지 한참 전에 제미와 나이가 나와 크리스티나를 응원한답시고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나 이내 졸리다고 다시 귀걸이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렇게 혼자서 업무를 보던 그녀는 점차 지쳐오는 몸에 신성력이라도 사용해 치료를 할까도 싶었으나 괜히 신성력을 이렇게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며 풀어주고 있을 때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늙은 사제의 모습에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절로 밝아졌다.
"조셉 추기경님!"
"허허, 크리스티나 꽤 지쳐 보이는구나? 허허 어찌할꼬 곱던 피부가 푸석푸석해 졌어."
"하하.."
마치 어린애를 대하듯 추기경 조셉은 한달음에 달려가 크리스티나의 얼굴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크리스티나 눈을 가늘게 뜨며 조셉에게 일렀다.
"그럼 좀 도와주시던가요, 또 도시 밖으로 나가 놀러 다녔지요?"
"허허 크리스티나 내 나이를 알고도 그러는 게냐? 섭섭하구나"
조셉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하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 왔으니 피곤하실 텐데 말이에요?"
"허허 섭하게 말하는구나 자꾸? 오랜만에 나도 일 좀 하고 왔는데 그게 그리 못 마땅 하느냐?"
"일이요?"
조셉이 콧방귀를 뀌며 대답하자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꽤 놀라 커다란 눈이 더욱 커져 올랐다. 그러자 조셉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그려졌다.
"허허 조셉 추기경님이 일도 하시고? 정말 세상이 위험하긴 하나 보네요?"
"뭬야?! 너무 하구나! 우리 힘들어하는 크리스티나를 향해 신물의 정보를 얻어 왔는데 말이지"
조셉이 곧장 슬픈 표정을 짓고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가 급히 조셉의 팔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신물이요?!"
"그래! 내가 노는 줄 만 알았더냐? 가끔 앉아서 정보를 기다리는 것보단 나가서 직접 뛰어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다!"
조셉이 훈계를 하듯 크리스티나에게 말하자 크리스티나가 의외란 표정으로 여전히 조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조셉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튼, 당장 사자도로 가 보거라"
"사자..도요?"
"그래! 사자도"
"거긴 왜요?"
크리스티나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되묻자 조셉의 표정이 의기양양해지며 대답했다.
"허허헛! 나만의 정보가 있지!"
"도대체 그 정보의 출저가 어디에요?"
아까부터 자신만의 정보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조셉을 향해 크리스티나가 답답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조셉이 잠시 헛기침을 했다.
"그 정보력은 뭐.. 알 필요 없고, 일단 사자도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고 하더구나! 언제부터 그 물건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사자도 사람들은 그 물건으로부터 힘을 받고 그 척박한 섬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으로 변하게 했다는 전설이 있지! 이 정도면 충분히 가볼 만 하지 않느냐?"
"... 그게 다에요?"
크리스티나의 얼굴에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그러자 괜히 눈가에 잔뜩 껴있는 다크서클이 더 진해지는 듯싶고 머리가 어질어질 하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어 온 거에요? 사자도는 저도 잘 아는 섬인데..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요.."
"그,그건 알 필요 없다 나도! 하나 믿는 구석이 있어야지 아무튼 지금 아무런 정보도 없는 시기에 찾아볼 법한 이야기지 않느냐?"
"그렇긴 한데..도통 추기경님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크리스티나의 말에 조셉이 다시금 헛기침을한다. 그동안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업무는 놓고 이리저리 놀러 다니기 바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흠흠, 아무튼 가 보거라! 업무도 좀 쉴겸 말이야"
"휴.. 알았어요, 그럼 추기경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허허? 그게 무슨 말이냐?"
크리스티나의 물음에 조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추기경님께서 얻어오신 정보니깐 끝까지 책임을 지셔야지요?"
"그, 그러고 싶지만.. 아, 아이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삭신이 쑤셔, 무릎도 아프고!"
"..."
조셉이 갑작스레 허리와 무릎을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하자 크리스티나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안 속는다구요"
"아이고~ 나 죽는다, 다 늙은 노인네를 그렇게까지 데려가야 하는 게냐? 아고고고 서러워서"
"하, 알았다구요 알았어요! 여기 있으세요 대신 아스란가에 사람이 올 테니 잘 맞이해 주세요 그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허허 알겠느니라"
아파하던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조셉이 방긋 웃어 보이자 크리스티나의 한숨이 절로 길어졌다.
"그럼 이만 가보마!"
그 말을 끝으로 급히 업무실을 도망치듯 나온 조셉은 나오자마자 한 숨을 푹 내쉬었다.
"휴 설마 모르겠지? 술집에서 용병들이 하는 얘기를 훔쳐 들은 것이라곤 허헛 허헛 물론 지친 크리스티나에게 휴식을 주는거라 생각하면 되겠지 하하 암 그렇고 말고! 허헛"
조셉은 그렇게 자기위안을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내 업무실에서 멀어져갔다.
한편 다시 방안에 혼자 남겨진 크리스티나는 이내 조셉이 가져온 정보를 믿고 가봐야 하나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보에 믿기지가 않았으나. 신물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없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다. 자신 역시 마흐무드내로 들어오는 업무가 너무 많았기에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왜 교황님께서 매일을 업무를 보며 앓는 소리를 했는지 알 것만 같은 크리스티나는 이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