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회. 사자도】
크리스티나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하자 쥬디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둘을 보며 루크가 입을 열었다.
"크리스티나는 여행을 다니기가 힘든가 보군요?"
"그렇지요.. 나름 성녀라는 직책을 받아서 매일 기도를 드리고 신학에 관해 공부를 하고 시간이 남으면 마흐무드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나가기도 하거든요 때론 치료소에 가 치료를 돕기도 하구요 저도 꽤 할 일이 많답니다. 게다가 지금 교황님이 돌아가셔서 업무도 저와 추기경님들이 나눠서 같이 보는지라. "
"성녀라는 직책이 참으로 만만치 않은 직책이네요.."
"그렇지요..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는.."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대답했으나. 그 말 속에 왠지 씁쓸함이 담겨있는 듯하자 루크가 같이 웃어 줄 수가 없었다.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크리스티나를 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일 때문에 왔지만 조금은 즐기면서 가요!"
루크가 대답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되는 걸까요?"
"네?"
"메세츠데의 백성들이 흑마법사들에 의해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걸 알면서도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 자신이 참으로 안타까움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되는 걸까요?"
갑작스레 크리스티나가 진지하게 루크에게 물어오자 루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흠.. 어쩔수 없잖아요. 저희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나름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데 저희가 신도 아니고 인간이 이상 할수 있는 건 꽤 제한이 되어있지요 그러니 그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니 울상으로 매일을 걱정스럽게 보내는 것보다 나름 즐기면서 이렇게 여유를 조금 부릴 수 있을 때.. 물론 몬스터도 만났지만 잘 이겨냈잖아요. 하하. 아무튼! 여유를 부릴 수 있다면 부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인이상 쉬고 싶을 때도 있고 꼭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에요 너무 모든 아픔을 다 떠안으려 하지 마세요 그렇게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크리스티나님을 보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지금은 성녀님의 몸을 먼저 챙기는게 어떨가 싶어요! 자신이 평안해야 남을 도울 수 있는거 아닐까요?.. 하핫. 안그런가요?"
루크가 멋쩍게 대답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언변으로 나름 생각해서 대답했지만 억지스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기에 괜히 크리스티나에게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크리스티나를 비롯해 쥬디스까지 따로 말이 없어졌다. 무언가 고민에 빠진듯 말이 없자 루크가 조심스럽게 루시를 바라보며 점차 가까워지는 섬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배가 사자도에 정박 할 수 있었다.
"자 다 왔습니다 내리면 됩니다!"
선장이 소리쳤다. 선장의 말에 루크와 루시는 기분 좋게 섬으로 내려가려 할 찰나였다.
"루크님"
"네?"
자신을 부르는 크리스티나의 목소리에 루크가 뒤를 돌아보자 크리스티나가 왠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그냥 고마워요"
"네?"
갑작스런 크리스티나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갸웃해하자 크리스티나가 한차례 웃어 보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해준 말 고마웠어요."
"그런가요? 제가 주제넘게 필요 없는 말을 하진 않았나 걱정했거든요. 혹여나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러려니 해주세요 제가 언변이 좋지 못해서.."
루크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루크님의 말대로 저희는 신이 아닌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 뿐이지요..루크님이 옳아요! 그리고 처음이에요 저 자신을 먼저 챙기라는 말은 왠지 힘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가요?"
"네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준 분은 처음이었거든요. 역시 루크님과 이곳에 같이 오길 잘한 것 같네요."
"하하! 그럼 다행이네요"
크리스티나의 말에 루크가 쑥스러워 하며 대답하자 루시가 다시금 루크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러고는 곧장 루크의 손을 붙잡고 섬으로 내려가자 크리스티나가 웃어 보이며 그 뒤를 따랐다.
"성녀님 저희도 어서 내려가지요."
"네."
뒤이어 쥬디스가 성녀를 따라 내려가며 다사다난하게 섬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 ☆ ☆
"꽤 숲이 우거진 곳이군요?"
사자도 입구에 멈춰 선 루크가 감탄을 자아내며 말했다. 사자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마치 거대한 숲이 아가리를 튼 것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높이 들어선 나무들을 보면 높이 뜬 태양조차 숲 안을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연이어 도중 도중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새 소리와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루크가 이마를 긁적이며 크리스티나에게 물었다.
"혹시.. 몬스터나.. 위험한 동물들은 없겠죠?"
"흠.. 글쎄요? 이곳에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위험한 동물들은 모르겠으나 몬스터들은 없음이 확실해요"
"하하.. 그런가요?"
루크의 이마에 괜스레 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한참을 숲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엘프들의 숲 같네요.."
"이분들은 엘프 들과도 자주 교류를 했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엘프들이 사는 방식을 보고 배우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가끔 엘프들의 전유물인 정령소환도 당대에 한둘씩 가능한 분들도 있었지요."
크리스티나의 설명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루시를 바라보자 루시는 처음 보는 울창한 숲에 정신이 팔린 듯 연실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자 그럼 어서 가도록 해요!"
크리스티나가 자신 있게 외치자. 쥬디스와 성기사들이 걸음을 옮겨갔다. 루크도 루시에 옆에 서서 걸음을 옮겨 숲 안으로 들어섰다.
숲안에 들어서자. 이내 찌는 듯한 더위와 푹푹 찌는 습기가 가장 먼저 일행을 맞이했다. 고작 몇 걸음 옮겼다고 땀이 삐질 삐질 나기 시작했고 옷도 땀에 절여져 찝찝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그럼에도 루시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여기저기 시끄럽게 울어 대는 새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이제는 앞 뒤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울창한 숲에 가로막혀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높이 솟은 나무들에 시야까지 어두컴컴해 자칫 잘못 하다간 멋대로 자라난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가득 차오른 습기와 더불어 발이 푹푹 빠지는 늪까지 만나자 루크는 가빠져 오는 숨을 고르며 자신과 비슷하게 숨을 헐떡이는 크리스티나를 향해 말했다.
"꽤.. 걷기가 힘든 곳이네요.."
크리스티나 역시 힘들어서 그런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므로 대답을 대신했다.그나마 다행인 점으로 쥬디스가 길을 잘 안다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몰랐더라면 이미 길을 잃고 헤맸을 것이 분명했다. 루크는 그런 쥬디스와 성기사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성기사들은 아직 지치지도 않았는지 거리낌 없이 걸음을 옮겨 가고 있는 모습에 확실히 성기사들이 보통에 사람들과는 다른 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 그들과 똑같이 루시도 지친 기색 없이 여기저기 꽃 구경을 하던 새를 구경하며 걸음을 옮겨가다 숨을 헐떡이는 크리스티나와 루크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힘들어? 루크?"
"아.. 하하 ..조금요, 루시는 괜찮아요?"
"응! 난 괜찮은걸!"
아무리 힘을 잃고 기억을 잃어 인간과 별 다를 게 없어진 루시라 해도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가보다. 그녀의 걸음은 루크나 크리스티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경쾌했고 표정에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자. 루크와 크리스티나는 괜스레 부러움에 찬 눈으로 루시를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체력이 좋던 성기사들도 차츰 걸음이 느려져 갔고 그 경쾌하던 루시 역시 조금은 피로한 기색을 보이려 할 때였다. 크리스티나와 루크의 안색은 더욱 파리해져가며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쉬자 그제야 그들을 살리는 쥬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