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회. 사자도】
"그래도 가는 길에 빛의 부름을 받고 갔으니 편안하게 갔을 게다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예.. 전 괜찮아요.."
"그래, 그나저나 그 영감탱이가 가기 전에 말을 남겼던데 너에게도 곧 새로운 인연이 있어 그렇게 걱정하진 않는다고 말이야 그게 저 손님들과 관련이 되어있는게야?"
"예? 그게 무슨?"
수잔의 말에 루미에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묻자 수잔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지면서 얼굴에 나있는 자글자글한 주름도 같이 일그러졌다.
"흠 아직 만나지 못한 건가? 아님 그 영감탱이가 죽기 전에 치매라도 걸리기라도 했나? 금방 만날 거라 하던데, 뭐 인연은 알아서 찾아오는 법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 어찌 됐든 인연이 찾아온다면 놓치지 말거라 교황 그 영감탱이가 그렇게 말하고 떠난거면 그리 나쁜 인연은 아닐 테니 말이야."
수잔의 말에 루미에르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수잔과 조셉을 보았으나 그들도 대충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자 그만하면 됐고 어서 들어가 쉬거라 루미에르, 수잔 우리가 또 말이 많아졌네 그려"
"그런가 끌끌 오랜만에 루미에르를 만나서 또 정신 못차리고 수다를 떨었네! 자 어서 들어가 쉬거라 맞아! 네가 전에 쓰던 방은 여전히 남겨 두었으니 그 방으로 가면 될 거야."
"제가 쓰던 방이 아직 남아 있어요?"
시무룩하던 루미에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그러자 수잔과 조셉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연히 남겨두었지! 네가 좋아하는 인형들까지 그대로 있으니 또 끌어안고 인형놀이라도 할 테냐? 끌끌 어릴 땐 심심하다고 곧장 우리를 데리고 소꿉놀이도 하고 그랬는데 말이야."
"이씨.. 전 이제 다 큰 성인이라고요! 애도 둘이나 있단 말이에요"
"껄껄 이거 다 컸다고 이젠 우리에게 목소리도 버럭버럭 지르는 것 좀 보게 "
"그건.."
수잔의 농에 루미에르가 볼을 부풀리며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계속 대꾸를 하다 보면 오히려 수잔의 장난에 더 수렁으로 빠지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게 수잔과 조셉은 나이가 들 수록 장난이 더 심해진것 같다고 생각한 루미에르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자 조셉과 수잔이 끌끌 거리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웃어 보인다.
"자 그만하면 됐네! 어서 들어가거라 남은 얘기는 나중에 이어 하자꾸나."
"네! 수잔 조셉 있다가 봬요!"
"그래 가 보거라."
수잔의 말에 루미에르는 급히 자신이 사용하던 방으로 올라갔다. 교황청 내부 사제들이 사용하는 방중 맨 끝 방 루미에르는 한달음에 달려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어릴 때 사용하던 방 그대로 모습을 유지한 체 루미에르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아.."
왠지 눈물이 나려 했다. 근래 자신이 사용하던 방과는 하늘과 땅 차이 정도로 방도 작고 안에 있는 침대며 책상까지 그리 좋은 가구는 아니었으나 루미에르에게는 너무나 정답게 느껴지는 가구들이었다.
루미에르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방안에 들어서며 천천히 방을 훑어 봤다. 왠지 모를 그때의 향수가 풍겨 오는 듯싶다. 루미에르는 아련한 옜기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 더 앞으로 가자 이제는 조금 작아 보이는 침대가 보였다 그 위에 매일 인형을 끌어안고 잠들 던 어린 루미에르가 보인다. 그 옆에 자리한 책상, 공부를 하며 하기싫다고 투정부리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자 루미에르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하핫..."
이번엔 책상 서랍을 열어 보였다. 여전히 남아있는 그림들, 어릴 적 크리스티나와 함께 그렸던 그림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삐뚤빼뚤한 그림들 루미에르는 조심스럽게 그림들을 꺼내 바라보자 조금씩 크리스티나와 함께 나눈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했다.
☆ ☆ ☆
"후.. 슬슬 보일 겁니다."
쥬디스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크리스티나는 헐떡이는 숨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느새 튀어나왔는지 제미나이가 크리스티나의 주위를 돌며 그 작은 손바닥으로 연실 바람을 불어 주곤 했다.
한편 크리스티나의 뒤에 있던 루크와 루시도 숨이차는지 가쁜 숨을 연실 헐떡이고 있었다. 사자도 내부에 깊이 들어갈수록 땅은 더이상 마른 땅이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늪으로 가득 차 있어 걸음이 힘들었다. 심지어 늪 아래에는 멋대로 자라난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일 수였기에 일행의 걸음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졌음은 물론 걸음을 옮기는데 힘이 더 들어 갔기에 마른 땅을 걷는 것 보다 두세배 이상은 힘들었다.
"후. .조금만..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거에요 루시! 좀 더 참아봐요"
"힝 축축하고 땀 때문에 끈적해.."
"시..신성력을 좀 불어 넣어줄까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칭얼거리는 루시를 향해 크리스티나가 힘겹게 물어봤으나 루시도 크리스티나의 상황을 알기에 이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분명 신성력에 도움을 받으면 금세 피로에 절은 몸은 금방 풀리긴 했으나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신성력도 만능은 아니기에 신성력에 대한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크리스티나도 그렇고 성기사들 역시 지친다 해도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였다.
"자. 좀만 힘내세요"
쥬디스가 모두를 보며 외쳤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겨갔고 일행들도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서서히 늪지대가 사라지고 평평한 땅이 보이자 모두의 표정에 한결 풀리기 시작한 때였다. 일행을 막아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멈추시지요"
앞에서부터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에 모두에 걸음이 멈추었고 곧 커다란 나무 뒤편에 온몸에 알 수 없는 문신이 가득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갑습니다. 마흐무드의 손님들이여."
사내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루크는 그런 사내를 보며 등에 찬 활과 옆에 차있는 검을 보며 쥬디스가 말한 전사들 중 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척 보기에도 성기사들과 다를 바 없이 건장한 체구는 구릿빛으로 빛났으면 꽤 우락부락한 근육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절로 위엄이 흘러나올 정도로 강인해 보이는 사내였다.
"반갑습니다. 사자도의 전사여"
쥬디스가 대답하자 사내가 말을 받았다.
"그래 이 험한 곳까지 무엇 때문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사내의 물음에 쥬디스 대신 크리스티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반가워요 사자도의 전사님, 저는 마흐무드의 성녀 크리스티나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크리스티나님 저는 사자도의 전사 마렉이라 합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자도에 있는 성물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크리스티나의 말에 자신을 마렉이라 소개한 사내의 표정이 급히 굳어지며 크리스티나를 향해 짙은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쥬디스가 크리스티나 앞을 막으며 살기를 허공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성물은 이곳 사자도에서도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신성시한답니다.. 당신들이 쥬신 라우엘을 섬기듯이 말이지요 그런데 그 성물이 궁금해서 왔다라..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