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회. 사자도】
찻물로 목을 축이던 루크가 다시 말을이었다.
"무모하고 생각 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과정이야 어떻게 되든 결과는 결국 좋게 되었잖아요,"
"하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으리라고는 단정 지을수는 없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그 동굴을 찾은 건 순전히 천운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쥬디스의 말에 루크가 잠시 상념에 빠졌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어찌 보면 정말 운이 좋아서였기에 언제고 매번 이러한 운이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상념에 빠진 루크를 보며 쥬디스가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 같은 상황이 온다면 이번엔 죽을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저야 루크님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피할 때는 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루크님의 행동은 착하고 영웅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그저 멍청했던 겁니다."
쥬디스의 목소리에 평소와 같은 배려는 없었다. 잔인하리만치 직설적이고 진지했기에 루크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던 루크를 향해 쥬디스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돌아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제 말을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저는 가보겠습니다. 차도 다 마셔버렸군요"
"예.."
그말을 뒤로 쥬디스가 루크에게서 멀어져갔다. 루크는 멍하니 쥬디스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루미에르가 납치되었던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자신이 했던 무모한 행동이 진심으로 잘못된 행동이었을까 싶은 루크는 이내 의자에 몸을 푹 누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요... 쥬디스님.. 만약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라면.. 저는 똑같이 행동할지도 몰라요"
역시나 자신의 부족한 머리로는 무엇이 최선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때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루크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역시나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자신의 행동에는 후회는 없었다. 목숨이 수십 개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후회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그날, 거울을 보며 무어라 했던가. 후회하며 살지 말자 했으니 루크는 그 말 그대로 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쥬디스와 나름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 시간이 꽤 흘렀는지 어느덧 루시와 크리스티나가 돌아왔다.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좋지 않은 시선임에도 그들은 괘념치 않은듯 손에 한 아름 가득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산물들을 들고 온 모습이 보였다. 그러한 루크는 이내 쥬디스와 했던 이야기를 잠시 한켠에 접어두고는 밝은 모습으로 루시와 크리스티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었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 쥬디스와 했던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하던 루크에 곁에 크리스티나가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예?"
크리스티나의 질문에 루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크리스티나가 키득 거리며 웃어 보였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걸요?"
"아.. 그랬나요?"
"예 저녁 먹을 때도 그렇고 무슨 고민이 있나요?"
크리스티나의 물음에 루크가 잠시 고민을 하다 다시 쥬디스의 말이 떠올랐다.
"크리스티나님.. 크리스티나님도 제가 생각 없이 멍청했다고 생각하나요?"
"예?"
뜬금없이 물어오는 루크의 물음에 크리스티나가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루크의 표정은 한없이 진중해 보이자 크리스티나가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루크의 앞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지요?"
"제가 루미에르님을 구하러 갔던 일.. 오늘 아침에 쥬디스님이 그랬어요. 그러한 행동은 영웅적인 모습이 아닌 무모하고 멍청했던 일이라구요."
"그랬군요."
루크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름 진지해진 표정을 지어 보이자 다시 루크가 물어왔다.
"만약 크리스티나님이 저였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흠..글쎄요.."
크리스티나도 딱히 어떻게 해야 했는지 생각나지 않은 걸까? 꽤 깊게 고민에 빠진듯싶다 그러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휴. .저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루크님에 행동은 너무 무모했지요 쥬디스의 말이 사실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만약 그 상황을 제가 겪었더라면 저도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요"
"그런가요?"
크리스티나의 대답에 루크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서리자 크리스티나가 풋하고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옳은 행동은 아니에요! 루크님은 루크님을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에 기분을 생각무시한건 다름 없으니깐요!"
"하하.."
크리스티나의 말에 루크가 이마를 긁적였다.
"루크님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같이 의견을 나누고 계획을 짰어야 했어요."
"그렇지요..."
"하지만.. 그때는 정황상 정신이 없었다고 했으니.. 뭐 혼내는 건 여기까지 할게요. 대신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되죠 요번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세요"
"하하.."
크리스티나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루크에게 물었다.
"루크님 그때의 행동에 후회하시나요?"
"아니요"
루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크리스티나가 밝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 됐어요 후회하지 않는다면 만약 그렇게 죽게 된다고 해도 정말 후회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루크님이 옳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가요... 감사해요!"
"때론 바보 같아도 무모할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했어요. 그 행동에 후회하지 않고 다행히도 일이 잘 해결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지요 너무 근심을 같지 마세요. 그저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루크님을 걱정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행동을 해주면 돼요"
크리스티나의 대답에 루크는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제가 나름 루크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크리스티나님"
"그럼 다행이구요, 그나저나 루시가 다 씻고 나왔나 보네요 저도 이제 씻으러 가야겠어요."
"네!"
"그럼 푹 쉬세요"
그렇게 멀어지는 크리스티나를 보며 루크는 조금은 근심을 덜 수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생각했다. 쥬디스가 뭐라 해도 자신의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다 생각한 루크였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얼마나 걱정할 것임을 생각해보라.. 일단.. 마흐무드에 돌아가면 정말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해야겠구나.."
크리스티나의 말을 곱씹던 루크는 자신을 걱정할 가족들이 생각나자 미안한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