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회. 사자도】
만약 이대로 돌아갔다간 사자도와 마흐무드의 사이가 영영 좋아지지 않을 것임을 느낀 크리스티나는 이대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전히 멍한 눈으로 상황을 보던 메디니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루크.. 아스란이라 했던가?"
메디니아의 목소리에 걸음을 옮기려던 루크가 멈춰 서며 메디니아를 바라보자 다시 모두의 걸음이 멈춰 섰다. 레오니르는 다시금 멈춘 발걸음에 이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레오니르님에게 집착하는지 아는가? 자넨 모를 게야 "
메디니아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메디니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사자도에 옛날 이야기좀 하겠네 그래도 괜찮겠나?"
"네..해보세요"
메디니아의 말에 루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하자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메디니아를 바라봤다. 뒤이어 율랑케를 비롯해 다른 의원들은 갑작스런 메디니아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 보았으나 메디니아는 그런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사자도에 사람들이 정착한 지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였으니깐. 이곳에 자리를 튼 전대 원로들부터 주민들까지 모두 다 각자의 사정을 앉고 이 섬으로 도망치듯 온 사람들이라네..
사랑을 잃거나 돈을 잃거나, 범죄를 저질렀거나,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거나 해서 말이지 그렇게 각자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곳에 한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네 모든 게 녹록지 않았다는 말이야 이 울창한 숲 속에 육식을 하는 동물들 하며, 바다에선 몬스터들이 습격해 오기도 하고 말이야 그들은 생각했지 이 조그마한 섬조차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렇게 좌절에 좌절을 이어가고 있을 때 마침 레오니르님이 사자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네 선조들을 괴롭히는 동물을 막아내 주기도 했고 때론 바다에서 몰려온 몬스터들을 몰아내 주었지 레오니르님은 우리 선조들이 정착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네 "
메디니아가 레오니르를 향해 말하자 레오니르가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길게 하품을 하며 관심이 없는 듯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그래.. 그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 터를 잡는 일 부터 시작해 사냥을 하긴 힘든 날이나 며칠을 굶은 날에는 직접 동물을 구해다 주기도 하고 말이야...
우리가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 레오니르님의 도움 때문이라네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분이지.. 평생 우리가 모셔야 하고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실 줄 알았다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레오니르님의 말이 맞다고 느껴지네 우린 이제 레오니르님의 힘이 필요치 않아..
우리 스스로 이 섬을 지키고 우리의 가족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그러니 레오니르님의 힘이 필요한 곳으로 가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분이 계속 이곳에 남아있는다면. 정말이지 우리의 헛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메디니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잠시 멈추자 그런 메디니아를 보던 다른 원로들 역시 표정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메디니아!"
율랑케만이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어라 반박하려 했으나 메디니아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율랑케의 말을 막고는 이번엔 율랑케를 보며 말했다.
"율랑케, 인제 그만 저분을 보내주시게.. 저분 말대로 이제 우리 스스로 섬을 지켜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네.."
"그,그런!"
율랑케가 여전히 분개한 표정으로 소리치려 했으나 제미니를 비롯해 얀 마르크와 우드번이 합심해 율랑케를 제지했고 메디니아도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전사들을 향해 일렀다.
"그들에게 길을 터주거라."
메디니아의 말에 잠시 우물쭈물하며 어찌할 줄 몰라하던 사자도의 전사들이 마렉을 필두로 차츰 길을 터주기 시작하자 레오니르가 킁 하며 콧방귀를 뀌고는 차츰 몸을 일으켰다. 그런 레오니르를 향해 메디니아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주시겠습니까?"
레오니르가 잠시 고개를 돌려 메디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메디니아가 다시 한번 일렀다.
"모든 일이 끝나면 사자도를 위해 이곳에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레오니르님이 없어도 잘살고 있는 저희들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 메디니아.. 지금 무슨."
율랑케가 무어라 소리치려 했으나 메디니아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오직 레오니르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일 뿐이었다. 레오니르는 그런 메디니아를 보다 다시 루크를 바라봤다.
'몇 번 찾아오긴 하겠다고 전해줘.'
"네, 몇 번 찾아오겠다고 합니다."
완전히 레오니르의 전령이 된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메디니아를 향해 말하자 레오니르의 말을 전해 들은 메디니아가 나름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레오니르님 부디 이곳을 잊지 말아 주시길...그리고 마흐무드의 성녀여"
뒤이어 메디니아가 크리스티나를 바라보자 크리스티나가 메디니아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겠네, 이것 하나만 들어주면 마흐무드와 사자도의 관계는 언제나 지속 될 것이네."
메디니아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태 자신이 무엇에 걱정했는지 잘 안다는 듯 메디니아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자네가 말한 흑마법사들을 막아 사자도에 피해를 입게 하지 말아주게, 그렇다면 마흐무드와 사자도의 관계는 영원히 이어질거네"
"아..."
메디니아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잠시 멀뚱히 하다 이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자도의 원로님!"
그런 크리스티나의 모습에 메디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으로 레오니르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레오니르는 그런 메디니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루크에게 일렀다.
'어서 가자'
"아..예"
잠시 메디니아를 바라보던 루크가 급히 걸음을 옮기려 했다. 뒤이어 걱정이 해결 된 크리스티나도 안도의 숨을 푹 내쉬고는 레오니르를 따라 돌아서자 율랑케가 분개의 찬 얼굴로 무어라 소리치려 하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메디니아가 율랑케에게 조근조근 말을 이었다.
"율랑케, 인제 그만 보내주시게.. 그분의 말대로 이제 우리 스스로 섬을 지켜야 할 때야. 여기서 더 바란다는 것은 정말 욕심일지도 모른다네 예전의 우리들 처럼 이제 레오니르님의 힘이 필요한 곳에 가야하는 게 옳은 일 일 거라 생각하네 "
"..."
메디니아의 말에 율랑케가 인정하기 싫었으나 이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점차 멀어져가는 레오니르와 성녀 일행을 붙잡을 수 없었다.